그룹 명운 달린 고강도 쇄신책…속내 들여다보니
지난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롯데그룹이 경영 정상화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앞서 100일 넘게 이어진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당초 수사의 명분이 됐던 '신동빈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구체적 증거를 찾지 못해 기소 혐의에서 제외됐다. 수사과정에서 각종 비난과 의심을 받아야만 했던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이번 검찰 조사를 통해 분명해진 점도 있다. '구(舊)시대적 경영 시스템'과 '투명하지 못한 지분구조'가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외형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무게를 둔 '뉴(New) 롯데'를 약속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는 롯데그룹을 집중 조명하는 [신동빈의 New 롯데]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②롯데 구습 다 버린다… 신동빈 회장의 5대 개혁 키(Key)는 ③새로운 롯데, 호텔롯데 상장이 선결 과제 ④오너家 리스크, 경영권 분쟁 불씨… 신동빈에게 남겨진 과제는)
신동빈號 New 롯데, 향후 2~3년이 그룹의 미래 결정
외형보다 질적 성장에 무게 둔 새로운 경영기조 제시
경영 혁신·정상화,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 선결돼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계열사 사장단과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자신이 직접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발표문을 통해 "롯데에 대한 국민들의 지적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국민의 기대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거듭 약속했다. 아울러 그는 롯데그룹의 경영계획과 고강도 쇄신책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하며 향후 롯데그룹의 긍정적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보였다.
신 회장이 최근 1년간 경영권 분쟁, 국적 논란, 권력형 비리 의혹, 검찰 수사 등 기업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위기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롯데에 가장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발표문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 회장이 발표한 경영 혁신안에는 그룹의 도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경영 패러다임을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두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도 "롯데는 당장의 매출, 영업이익보다 앞으로 2~3년 동안 신격호 총괄회장 시대의 구태와 구습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가 향후 그룹의 명운을 결정 지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 회장의 고강도 쇄신안은 그룹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롯데는 최근 10년 동안 그룹의 외연을 키워왔다. 특히 그룹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케미컬 부문에서 영국과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해외 업체와 더불어 3조원 규모의 삼성 SDI 화학부문 및 삼성정밀화학까지 인수하며 롯데그룹이 재계 5위로 등극하는 밑바탕이 됐다.
하지만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지난해 초부터 기업 명성이 크게 하락했고 결국 검찰수사까지 받게 됐다. 검찰수사과정에서도 횡령, 배임, 오너가 일감 몰아주기 등 과거의 구습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제가 그룹 내에 산적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로 인해 수년간 추진해온 미국 액시올사 인수 계획, 호텔롯데 상장 계획이 모두 무산됐고 그룹 시가총액이 5조원 이상 증발하는 등 막대한 손해를 봤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 회장은 '기업 외형만을 키우는 것이 아닌 질적 성장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롯데는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도덕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회장 직속 상설 조직 준법경영위원회(Compliance committee)를 설치하고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경영 투명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또 정책본부를 축소 개편하는 등 기업문화를 혁신하고, 5년간 40조원을 국내 곳곳에 투자하는 한편 7만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늘린다는 내용의 투자 고용 확대 방안도 함께 밝히는 등 기업의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5대 쇄신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신동빈표 'New 롯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들이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일본 국적논란'을 불식시키는 작업도 필수 사항이다.
롯데그룹은 무기한 연기됐던 호텔롯데 상장을 재추진해 일본 기업이라는 오해를 떨쳐내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에 더해 코리아세븐, 롯데리아, 롯데정보통신 등 우량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조속히 진행해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한국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회사 대표가 분식회계,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처벌 받게되면 해당 기업은 3년간 상장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은 오는 15일 열리는 신 회장의 1심 판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 회장도 "재판 진행 경과를 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 IPO를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강도 높은 쇄신안에 대한 업계 안팎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최근 조선, 중공업, 휴대폰 등 대표 제조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통 서비스 산업'의 대표주자 롯데그룹의 부진은 내부 직원, 재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체로서도 큰 부담"이라며 분발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