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불청객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해법 없나
지난 10일 오후 3시15분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대형 관광버스 6대가 1개 차로를 가득 메우며 들어섰다. 차로에 주차된 버스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버스 탓에 백화점 앞 버스정류장도 가로막혔다. 시내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차도 위에 정차했다.
시민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차도까지 뛰어나와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뒤따라오던 차량과 부딪힐 수도 있는 아찔한 광경이 연출됐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승객 이모(24·여)씨는 "저런 식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혹시 사고라도 날까 가슴이 철렁한다"며 "왜 주차장에 차를 안 대는 건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최근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에서는 외국인을 태운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로 인한 인근 주민과 상인들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자체 주차 공간이 마련된 경우도 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불법 주차 문제에서 자유로운 서울 시내 관광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모범운전자회 주차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날 백화점 앞에서 현장을 정리하던 강모(55)씨는 "그래도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었다"면서도 "주차공간이 너무 부족해 교통정리 없이는 감당이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불법 주·정차를 하는 관광 버스기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버스기사들은 관광버스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버스기사 김모(47)씨는 "서울시에서 마련해 준 경복궁 옆 주차장도 고작 7~8대가 들어갈까말까한 수준"이라며 "일부러 대로변에 주차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주차할 곳이 없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기사 한모(55)씨는 "손님은 있고 일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매일 같이 먼 곳으로 주차를 하러 가겠나"라며 "과태료를 감수하면서 일하다보니 월급에서 제하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한탄했다.
외국의 경우 주·정차 위반에 대한 과태료가 우리나라 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은 51만원 상당(400유로), 대만은 30만원 상당(8300여 대만달러)이다.
서울시내에서는 주·정차 단속에 걸리면 5만원 정도가 부과된다. 관광버스의 경우 버스기사가 없어도 견인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라 5만원 과태료에 걸리더라도 외국인 관광객을 한번이라도 더 모시는(?) 게 이득인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인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민원 등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주·정차 단속에도 애로사항이 있다"며 "단속을 한다고 하면 도망치는 관광버스들 때문에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과태료를 높게 부과하면 관광객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사실 이부분은 여행사가 지켜주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우리나라 국민은 외국에서 불편하게 관광하고 정작 자국 안에서는 시민들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관광버스 주차장은 총 638면이다. 이에 비해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대형 관광버스는 하루 평균 1047대 수준이다. 버스 통행량에 비해 주차면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인근 상인들과 시민들의 몫이다.
상인 김모(67)씨는 "최근에는 주차요원들이 정리를 해줘서 도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면서도 "버스들이 2시간 가량 대기하는 경우도 있어 소음·매연으로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고충을 밝혔다.
택시기사 홍모(66)씨도 "관광버스들이 한 차로를 다 차지하고 있는 시간은 교통 체증도 심해진다"며 "메르스 유행 당시에는 관광객이 줄어 체증이 좀 덜했는데 원상 복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시 주차계획과 관계자는 "우리도 부지만 있으면 충분히 주차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신규 주차장 건설, 노상 주차장 확보, 서울 시내 주차장 정보를 기사에게 전달해주는 앱 개발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주차 공간 확보, 대중교통 사용 활성화 등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산대 교통공학과 이시복 교수는 "관광산업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만큼 관광명소에는 관광버스가 체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특정 시간과 구간은 주차가 가능하도록 양성화시켜주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녹색교통운동 송상석 사무처장은 "단속을 하게 되면 결국 차주, 즉 관광버스 운전자들만 과태료를 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이러한 관행을 지속시키고 있는 관광회사들도 같이 처벌해 이 같은 문제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연말부터는 서울 도심에 신규 면세점 5곳이 차례로 문을 연다. 내년 5월 신세계와 두산이 남대문과 동대문에 준비 중인 면세점까지 개장하면 관광객 수요는 더욱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