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홍광호·김준수, 작품을 바꿔놓다…'데스노트'

정선아·박혜나,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

2015-06-24     이재훈 기자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음

배우들이 바뀌니 작품도 업그레이드됐다. 한국에서 라이선스로 초연 중인 뮤지컬 '데스노트'는 지난 4월 일본에서 세계 초연한 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배우들의 출중한 가창과 연기로 2.0버전을 보는 듯했다. 특히 뮤지컬 넘버의 전달력이 분명해졌으니, 관객들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명불허전 홍광호·김준수

호소력 짙은 목소리인 '꿀성대'로 통하는 클래식 발성의 홍광호, 쇳소리가 단단한 박힌 고음의 메탈적인 창법을 선보이는 한류그룹 'JYJ' 멤버 김준수.

프로듀서를 맡은 백창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자회사인 공연제작사 씨제스컬쳐의 첫 작품으로 '남자 투 톱'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바랐는데 두 사람으로 인해 현실화됐다.

일본 동명 만화'(원작 오바 츠구미·작화 오바타 타케시)가 원작인 '데스노트'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살인을 할 수 있는 '데스노트'로 악인들을 처단하는 천재고교생 '라이토', 그에 맞서는 탐정 '엘'의 대결을 그린다.

고급스러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일품인 홍광호는 방어하는 라이토, 가슴을 찌르는 파고드는 가창인 김준수는 공격하는 엘 역에 안성맞춤이다.

23일 오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언론에 공개된 '데스노트'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맞붙으며 불꽃이 튀기보다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두 사람이 기존 창법에 변화를 주면서 더욱 호흡이 잘맞았다. 홍광호는 기존 창법에 날을 세웠다. 정의감에 가득차 있다 점점 권력에 취해 광기로 변하는 라이토의 공격적인 성향에 맞춰 음색이 세졌다. 본래 강렬한 창법의 김준수는 들숨과 날숨이 더 가빠졌는데 범인을 잡고자 하는 엘의 간절한 욕망이 자연스레 반영됐다.

김준수가 앞서 간담회에서 밝히 것처럼 남자로서 좀 독특한 김준수의 금속성 고음은 클래식 한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루브(리듬)도 겸비한 홍광호의 목소리를 만나 '놈의 마음 속으로' 등 듀엣곡에서 화력이 세졌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사람의 연기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점이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악역인 '투이'역을 맡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던 홍광호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라이토의 감정의 결을 잘 살렸고, 송스루 뮤지컬에서 강점을 보인 김준수는 기괴하고 선하면서도 내면에는 또 다른 욕망이 꿈틀대는 엘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정선아·박혜나, 존재감 뚜렷

홍광호와 김준수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음에도 톱 여성 뮤지컬배우인 정선아와 박혜나는 자신들의 몫을 단단히 한다. 정선아는 라이토의 여자친구 '아마네 미사', 박혜나는 여자사신(死神) '렘'을 연기하는데 2막에서 이들의 조합은 빛을 발한다.

미사를 사랑한 이유로 한줌 모래로 변한 사신 '질러스' 대신에 미사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렘은 '위키드'에서 엘파바(박혜나)가 글린다(정선아)를 위하는 모습도 겹쳐진다. '위키드'에서 글린다와 엘파바를 맡아 '절친'이 된 두 배우는 캐릭터 이야기를 하다 서로 눈물 흘리는 등 평소 모습을 가감 없이 녹여내며 라이토와 엘이 만드는 긴장감과는 다른 여운을 안긴다.

10대 아이돌 같았던 일본 버전 미사는 출중한 가창력의 디바 정선아를 만나 좀 더 성숙해졌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들

이번 작품은 넘버 '지금 이 순간'으로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의 신작이다.

킬링 넘버가 없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테마 음악 격인 '정의는 어디에'를 비롯해 곳곳에 와일드혼의 인장이 박혀 있었다. 특히 엘의 솔로곡 '게임의 시작'은 김준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는데 힘 입어 강력함을 선사한다.

배우들과 와일드혼의 호흡은 대체로 좋았다. 홍광호는 '지킬 앤 하이드', 김준수는 '천국의 눈물'과 '드라큘라', 정선아도 '드라큘라'로 와일드혼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모두 넘버를 드라마틱하게 소화하는 능력과 서정적인 음색을 지니고 있어 와일드혼과 비교적 잘 어울렸다. 박혜나는 와일드혼과 이번이 첫 작업인데, 그녀 역시 넘버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총평

홍광호, 김준수, 정선아, 박혜나 등 스타 뮤지컬배우들의 존재감에 밀리지 않고 묵묵히 제몫을 한 사신 '류크 ' 역의 강홍석도 칭찬할 만하다. 일본 초연에서 류크는 좀 더 나이가 들고 능글 맞았는데 강홍석의 류크는 좀 더 장난꾸러기 같다. 그래서 지루함에 치를 떠는 그가 잔인하게 돌변하는 순간이 더 섬뜩하다.

류크는 인물들을 지켜보는 역이다. 모두 죽는데 그만 살아남는다. 그가 좋아하는 사과는 마치 선악과를 의미하는 듯하다.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한 일본의 거장 구리야마 다미야는 연극적인 색채가 강한 뮤지컬 '데스노트' 역시 이러한 부분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다. 선악을 대비시키기 보다는 인간의 선악이 뒤섞여 있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는 노력이 보인다.

이로 인해 넘버들이 계속되면서 밀어붙이는 뮤지컬 특유의 파괴력은 다소 떨어졌다. 권당 200쪽 안팎의 12권 짜리 만화를 러닝타임 2시간45분(인터미션 20분)으로 압축하다 보니 엘 등의 캐릭터가 비약이 됐다.

하지만 배우들의 실력과 에너지가 이를 상쇄한다. 씨제스컬쳐는 첫 작품으로 창작 등의 큰 욕심을 내기 보다 자신들이 우선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는 점에서 인정하고 싶다.

인기에 힘 입어 애초 8월 9일까지였던 공연 일정이 같은 달 15일까지 5회 연장됐다. 오픈 회차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5~14만원. 씨제스컬쳐·클립서비스.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