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철수 구해주세요"
모텔(motel)은 원래 자동차 여행자 숙박시설을 일컫는 용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러브호텔'로 불리는 일부 모텔에서의 남녀 불륜은 종종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 일반인들 역시 대개 모텔을 비교육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공간이 막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생의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서울 동대문구 한 모텔에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제보를 입수해 직접 현장을 찾아 나섰다.
뽀얀 입김 탓에 시야가 가릴 정도로 추웠던 지난 5일. 아침 9시께 대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모텔 앞에 도착했다. 올해 13살이 된 철수(가명)가 어머니(55)와 함께 살고 있는 바로 그 곳.
아침이라 그런지 인기척을 했는데도 모텔 주인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기니 어느덧 맨 안쪽 106호에 다다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그랗게 귀여운 얼굴에 안경을 걸친 남자아이가 이불에 몸을 파묻다시피 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철수였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은 낯선 이의 방문이 어색한 듯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안을 둘러봤다. 철수와 어머니가 함께 쓰는 침대는 1평 남짓한 방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책상과 냉장고는 나머지 면적의 50%를 점유하고 있었으며 얼마 남지 않은 공간 역시 사람이 아닌 가재도구 차지였다.
이외에도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와 잡동사니가 가득한 탓에 발 디딜 틈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비좁았다. 옷걸이가 달린 벽에는 곰팡이 자국까지 선명했다.
물건을 이리저리 치우고 겨우 공간을 마련한 다음에야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는 순간 철수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나갈 채비를 했다.
키가 140㎝쯤인 철수는 5학년이라기엔 다소 왜소해보였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해봤지만 철수는 아이답지 않게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철수가 나가자 어머니는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텔 생활의 불편함부터 호소했다. 지난해 9월 철수와 함께 모텔로 들어왔다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밤이 되면 아이가 밤중에 성행위 소리를 들을까봐 일부러 텔레비전 볼륨을 키우고 있다"고 신세를 한탄했다.
한 달 모텔비는 45만원.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다. 냄새를 풍기지 말라는 주인의 으름장에 철수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이지도 못한다. 고기 굽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면 이들 모자는 무엇 때문에 그리 싸지 않고 불편하며 허름한데다가 비교육적이기까지 한 이 모텔로 오게 됐을까?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내며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2000년 45세의 늦은 나이에 철수를 낳았다. 사업에 매번 실패하고 바람까지 피우는 남편과 이혼하려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결혼 10년 만에 들어선 아이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무심한 남편은 부인 명의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다 수억원의 빚만 안겼다. 사업 실패 후 전화번호를 바꾼 남편은 전북으로 가 딴 살림까지 차려버렸다.
이후 철수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 됐다. 양육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월급 60만원짜리 목욕탕 청소, 시간당 5000원짜리 강남 설렁탕집 그릇닦이, 양말·속옷 가판대 장사 등등.
철수를 친척집에 맡긴 채 어머니 본인은 찜질방에서 지내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철수의 가슴에 씻어내기 힘든 상처를 남길 줄이야.
친척집에 있던 남자아이 2명(8세, 12세)이 5살이었던 철수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철수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친척집이 있는 곳의 지명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철수는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왜 날 낳았어" "왜 날 버렸어" 등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모텔로 거주지를 옮기면서부터는 심리적으로 한층 더 위축됐다. 우울증에 분노조절장애까지 나타났다.
학교에 다녀오면 갑자기 벽에 주먹질을 해댔고, 일기장에서는 '다 죽이고 싶다'는 글이 발견됐다. 늘 산만하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에 휩싸여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았고, 키우는 고양이와 잘 놀다가도 갑자기 화를 내며 고양이를 마구 때리기도 했다.
주변에선 철수를 가리켜 '머리는 되게 좋은데 나쁘게 자라면 여러 사람을 괴롭힐 것'이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철수를 돕기 위해 학교 선생님과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가 발 벗고 나섰지만 모텔에서 지내는 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철수의 5학년 담임교사는 "일단 모텔에서 벗어나야 치료가 가능하다"며 "어머니가 자립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보니 모텔에서 지내게 됐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안타까운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5학년은 사춘기고 마음이 요동치는 시기인데 어머니가 늦게 오면 그때까지 (철수가)모텔에 혼자 있게 된다"며 "일단 모텔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환경으로 가야 심리치료를 위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수의 미술치료를 맡고 있는 심리치료사 역시 "철수는 주위의 어려운 가정 출신 아이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있다"며 "이대로 중학교로 간다면 문제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우울의 그늘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 아무리 일을 해도 헤어나올 수 없는 빚더미. 어머니는 조금씩 의욕을 잃어 갔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산콜센터와 주민센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냉정히 거절당했다. 이혼도 안 했고 나이도 어중간해 생활보호대상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수년간 절망적인 나날이 계속됐지만 다행히도 최근 모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철수와 어머니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희망온돌 프로젝트에 힘입어 주거비 등을 지원받게 됐다. 서울시는 모금(외환은행 131-22-00920-8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또는 박원순과 함께 꿈꾸는 서울 카페)을 통해 철수가 이사할 집의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철수 모자를 위해 직접 300만원을 기탁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서울시가 나섰다는 소식에 철수 어머니도 큰 힘을 얻었다.
어머니는 지원 소식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자기가 기본은 하고 도움을 받아야한다"며 "계속 도움을 받는 건 안 좋으니 앞으로 목이 좋은 장소에서 장사를 해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철수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바람이다. 동대문구 번화한 곳에 타로카드 사주카페를 열거나 포장마차를 개업해 보란 듯이 재기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목표다.
사춘기에 접어든 철수 역시 모텔이란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꿈을 키울 전망이다.
철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는다. 어렸을 땐 농기계에 관심이 많아 농부가 되겠다고 하더니 요즘엔 잠수함을 만들겠다고 한다.
철수를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5학년 담임교사는 "경제적 도움을 받아 (철수가)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며 "어머니도 철수도 앞으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