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고 또 보고 …'회전문 관객'을 잡아라

2015-01-02     이재훈 기자

 

지난해 연말 '뮤덕'(뮤지컬 덕후의 줄임말·마니아) 사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게시판을 통한 '정산 인증'이 유행했다. 2014년 한해 동안 자신이 관람한 뮤지컬의 목록을 말 그대로 정산한 것이다.

몇년 전부터 한 작품을 여러차례 보는 '회전문 관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같은 작품을 10번 이상 본 관객도 상당수다. 뮤지컬 제작사들은 이런 마니아층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 할인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듯 뮤지컬을 관람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는 건 흔한 일이 됐다. 도장을 일정 개수 이상 채우면 다시 관람할 때 할인 쿠폰, MD를 선물하거나 티켓 무료 교환권을 주기도 한다.

마니아를 위한 특별이벤트도 눈길을 끈다. 동명영화가 바탕인 라이선스 뮤지컬 '원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14일 뮤지컬 '원스'의 앙상블들이 공연하는 '원스 미니 콘서트'에 도장 4개를 모은 관객을 초대한다. 컴퍼니 배우들의 듀엣 또는 솔로곡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정욱진, 정선국 등의 배우에게 질문도 할 수 있다.

쿠폰 북의 디자인도 볼만하다. 뮤지컬의 특성에 맞게 제작한다. '원스'는 '폴링북'이라 명명한 쿠폰 북에 찍는 도장을 기타와 피아노, 우크렐레, 베이스 등 총 15개 악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다루는 악기가 총 15종이기 때문이다. '원스'는 배우들이 악기 연주까지 겸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동명 일본영화가 바탕인 창작 뮤지컬 '러브레터'의 제작사 PCA코리아의 쿠폰 북 역시 눈길을 끈다. 5번 재관람할 경우 50% 할인·10번 재관람하면 공연 초대권(기획사예매)을 증정하는 이 쿠폰 북은 중년층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도서 대출카드'를 본떠 만들었다.

도서 대출카드는 작품 속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극중 소년 이츠키는 아무도 빌리지 않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출한다. 도서 카드에는 그의 이름만 쓰여 있다. 그래서 같은 무늬를 가진 연속되는 숫자 카드를 5장 나열한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가능했다. 그리고 카드 뒷면에는 감성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다. 회전문 관객을 위한 맞춤 쿠본 북인 셈이다.

 

회전문 관객 비율이 높은 뮤지컬 '쓰릴미' 역시 5번 관람 땐 25% 할인 혜택 등을 주는 쿠폰 북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도장 9개를 찍으면 배우 모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을 준다. '쓰릴미'가 예전부터 진행해온 쿠폰 이벤트인데 한 장밖에 없는 배우 사진이라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쿠폰 북은 아니지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8일 진행하는 4차 티켓 오픈부터 적용), '라카지'는 재관람 때 일정 비율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쿠폰 북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10만원이 넘는 티켓값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성도가 높은 점을 악용한 상술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뮤지컬계 문화로 자리매김한 만큼 관객과 제작사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스'의 경우처럼 마니아를 위한 특별공연 이벤트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관객들도 배우와 뮤지컬에 대한 맹목적 애정보다 스스로 볼 때마다 작품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가야 한다"면서 "제작사는 회전문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배려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