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인건 알지만 이것마저 잃으면 생계수단 막막"

소모적 단속보단 서로간 협조가 필요

2014-12-08     양길모 기자

"오랫동안 노점상을 해왔다. 당장 일을 안 하면 하루 생활비도 없는게 현실이라 다른 직업을 찾아볼 여유조차도 없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고 나가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5년째 동대문에서 분식을 팔고 있는 노점상 50대 여성 이모씨)

"사업도 망했고, 직장을 다니다 잘리기도 했다. 이것저것 안 해본일이 없다. 50살이 넘어 취직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택한 일이 노점상이다. 이 일이 불법인거는 알지만 이거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다. 우리 같은 가장들은 당장 오늘 하루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이렇게 나오고 있다."(7년째 동대문 노점상에서 의류잡화를 팔고 있는 50대 가장 박모씨)

12월 첫날인 지난 1일. 첫 눈이 내린 날씨만큼이나 동대문 노점상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벌써 다가왔다. 이날도 동대문에서는 법·제도의 이름으로 영업을 막으려는 단속반과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려는 노점상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현 시점에서 노점상 문제는 합법과 불법의 두 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접근하기가 어렵다. '세금에 도로점용료를 내서라도' 합법적으로 장사하고 싶다는 노점상들과 민원 등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치구청의 평행선만 존재할 뿐이다.

그동안의 노점은 계절에 따라 집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고, 어느덧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를 하며 지역의 명물이 된 노점상이 생길 정도다. 이에 비해 노점정책은 강경 단속과 암묵적 인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특히 동대문 노점상은 이명박 정부 때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청계천에서 밀려나 동대문 운동장 주변에서 도깨비시장을 열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대문 운동장 도깨비시장도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발로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 인적 없는 후미진 곳에서 밀려나 장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노점상이 한두 개씩 모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노점상들이 들어서다 보니 이제는 패션의 1번지·패션의 메카 동대문의 또 다른 모습이 됐다. 특히 벨포스트, 광희패션몰 등이 인접해 자정이 되면 유동인구가 대폭 증가하는 동대문 기동본부 주변은 노점상들에게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와 자치구의 DDP 환경정비, 지난 9월 중부경찰서와 중구청의 지역 내 관광특구 내 불법 노점상 단속 등으로 동대문 노점상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단속 초기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경찰청 기동본부 주변에는 매일 밤마다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구청 단속직원들과 경찰들이 노점상들이 펼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인근에는 노점을 펼치려는 상인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 지속됐다.

하지만 지난 1일 다시 찾은 동대문 기동본부에는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싸늘하고 조용했다. 기동본부 담벼락을 둘러싸고 철거 노점상이 자리했던 곳은 불빛이 닿지 않아 인근의 두타와 밀리오레 패션몰과 대비돼 어둡기까지 했다.

올해 초만 해도 300여개의 노점이 포화상태로 영업 중이던 노점상들의 거리에는 큰 꽃과 나무가 심어있는 화분들이 대신했다. 일부 노점상 상인들은 불법영업을 하며 교통체증을 야기한다는 비판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호소한다.

단속직원들과 대치 중이던 노점상 A씨는 구청 측에서 교통 혼잡을 빚게되는 기동본부 주변을 벗어나 새로운 영업장소를 제안했지만, 다른 쪽으로 이동할 경우 수익이 나지 않아 생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구청 측에서 주장하는 '기업형 노점'의 경우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며 "여기에 나온 대다수의 노점들은 차상위계층이며 노점을 통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이라고 주장했다.

노점이 철거된 또 다른 노점상인 송모(47)씨는 "불법이라고 쫓아내려면 처음부터 여기에서 노점을 차리지 못하게 하던가 몇 년 동안 놔두더니 이제 자리잡고 일을 하려고 하니 나가라고 한다"며 "앞으로 생계는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 같은 집중단속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도 '긍정과 부정사이'에 있다.

동대문을 명물로 자리 잡은 노점상들이 없어져 뭔가 허전하고 씁쓸하다는 입장과 주정차 문제 등을 야기한 불법 노점상은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점전국연합은 이런 상황에 대해 도시개발 사업이 노점상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악순환이며, 노점상에 대한 사회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노련 최인기 사무처장은 "노점상 중 높은 수익을 얻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노점상 전체 80%가 차상위 계층"이라며 "동대문 노점상 대부분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또 다시 인근 지역으로 쫓겨난 사람들로, 이런 상황에서의 집중 단속은 노점상들의 최후의 보루조차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주변의 노점상들은 쫓겨났지만 사회에서는 단순히 불법 노점들이 정리됐다고만 생각한다"며 사회적 인식을 아쉬워했다.

그는 노점상의 순기능을 알리고 소모적인 단속보다는 서로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사무처장은 "구청에서는 노점상을 단순히 행정적인 면에서 거리 미관을 해치는 존재로만 본다"며 "홍대나 명동 등의 노점상은 각 지역의 명물이 되고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노점을 단순히 불법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마차의 외관과 거리와의 어울림 등 복합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요즘 중국인 요유커나 일본인 관광객들이 엔화문제 등으로 소비가 위축됐다"며 "이런 관광객들에게 명품소비가 아닌 저가품 소비를 하는데 노점상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