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재정자립도↓…국민혈세 줄줄

2014-12-01     오동현 기자

"축제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주민 호응도 매우 낮은 것 같네요. 이런 축제를 돈들여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지역의 한 축제 현장에서 쏟아진 해당 주민들의 질타섞인 목소리다. 주민들은 "마치 지자체 예산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여기는 '공짜의식'이 지역 축제현장에도 만연되고 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지역 축제에 아까운 세금을 이렇 듯 허투루 사용하는 일은 이제 근절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당 지자체에서 발생한 사례처럼 해마다 부실한 지역 축제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낭비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문화관광축제를 지정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정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되지 않은 축제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어 국민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내 지역축제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재정자립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축제운영비에 국민의 혈세인 지자체 예산이 그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효자축제를 제외하면 부실축제 많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책정보통계센터는 2014년 국내 지역축제 및 문화관광축제 현황 자료에서 2000개가 넘는 지역축제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전국 지역 축제 현황을 파악하는 기준을 올해부터 엄격하게 변경했다. 이 기준에 따라 2013년 700여건을 유지했던 지역축제 개수가 올해 들어 555건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일정기간(3일 이상) 지역주민·지역단체·지방정부가 개최하며, 불특정 다수인이 참여하는 문화관광예술축제' 수준은 돼야 축제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 전문가들과 협의해 이 기준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축제로 보기 어려운 수준의 지역축제가 200건 가까이 열리고 있던 셈이다.

4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된 충주 우륵문화제는 2013년 9월26일부터 5일간 열려 5만여명이 참가했다. 당초 주최측이 30만명의 참가자를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타지인들의 참가율도 14%에 불과했다.

축제를 찾았던 관람객 한 명은 우륵문화제 홈페이지에 “저예산으로 준비한 건지 음향도 제대로 안나오고 실망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또 최근 광주 광주시의회는 광주세계김치축제에 대한 시정질의에서 매년 10억원이 넘는 돈이 들지만 예산 낭비와 프로그램 중복에 대한 우려를 밝히며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 축제 참가자 56% "부실하다"고 느껴

시장전문조사기업 마이크로밀 엠브레인의 조사에 따르면 축제 참가자 전체 10명 중 6명(56%)이 '지역축제의 내용이 부실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축제 참가자들은 지역축제가 상업적이고 특색이 없다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역축제가 홍보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34.3%)이 반대로 답한 의견(19.5%)보다 많았다.

조사 관계자는 "만족도는 축제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결과는 축제의 성격에 무관하게 전 분야에 걸친 통계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 조사는 2013년에 지역 축제에 대한 인식과 관련, 축제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만 19~59세 수도권 거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통계청이 2012년 발표한 '지역축제 보완점' 자료에서도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 지나친 상업성을 벗어나야 한다(31.7%) ▲ 지역 고유의 특성을 살려야(26.6%)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 국내 지역축제, 재정자립도 낮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지역축제는 예산의 평균 75% 이상을 공공재원인 즉 국고나 지방비 지원 등에 의존하고 있다.

김태영 경남발전연구원장은 "지방축제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정자립도"라며 "아직 재정자립도가 5~10%에 불과하고 심지어 0%인 축제도 있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행정부 지방행정통합공시에 따르면 2013년 지역축제의 수익률은 평균 28.2%로 집계됐다.

경북 지역에서 13년째 열리고 있는 한 국제가족연극제의 경우 2013년 행사 개최를 위해 필요한 전체 예산 3억원을 도비 6천600만원과 시·군·구비 2억3000만원을 합쳐 마련했다.

해당 축제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모든 좌석이 매진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지만 자치단체의 재정 투입 대비 수익률은 고작 12%(입장료 수입 2800만원)에 그쳤다.

전남 강진군 강진청자문화제 역시 2012년 예산(20억원)대비 입장료 수입은 7000만원에 그쳐 낮은 수준(약 3.5%)의 재정자립도를 보였다.

특히 17개 시·도 중에서 인천의 경우 축제 행사에 약 25억원의 시·군·구비를 투입했지만 이익은 7600만원에 그쳐 수익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의 행사가 시·군·구예산 100%로 개최됐다.

◇ 외국 지역축제, 재정자립도 높아 '꿩먹고 알먹고'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해외 축제는 스폰서십 유치, 입장권 판매, 부스임대 등 수익 사업을 통해 전체 축제 예산의 60% 이상을 확보하는 등 높은 수준의 경제적 자생력을 보였다.

지난 8월 국내 한 영화관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축제>를 실시간으로 중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축제는 1920년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시작된 이후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2010년 잘츠부르크 축제 예산 727억원 중 정부 지원금은 182억원(25%)에 그쳤다. 나머지 75%는 자체수익 451억원(62%) 및 후원금 87억원(11.9%) 등으로 조달됐다.

세계 2차 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1947년 지역축제로 시작된 에딘버러 축제는 재정자립도가 90%에 달한다.

에딘버러 축제는 예산 43억원의 대부분을 입장료 판매(76.7%) 등 자체수입으로 마련한다. 올해 입장 티켓만 150만장 이상 팔렸고, 후원금으로 6억원이 모였다. 지원금은 4억5000만원(10.4%)에 불과했다.

◇ 국내 지역축제 스스로 '황금알 낳는 거위' 돼야

전문가들은 축제 효과가 크지 않고 세금만 낭비하는 부실 축제들을 정리하는 한편,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고 민간에 운영권을 넘기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관(官)주도 형태의 지역축제는 법적으로 수익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지속적인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도 지적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3년 12월 발간한 나스(NARS) 보고서에서 지역축제의 발전을 위해 국비지원 없이 자체적인 수익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재정투자사업관리센터 신두섭 박사는 "과거 일본 나가노현 이다 지역에서는 6년 동안 관(官) 주도 형태의 사과 축제를 개최했지만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곤 했다"며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상가 번영회에 이 축제의 운영을 맡겼더니 주민들의 참여율이 높아졌고 지역 기업들의 후원금을 유치하는 것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양대 관광학부 이훈 교수도 "지역축제가 대부분 공적재원으로만 운영되다보니 정해진 일정을 지키며 '제대로' 개최하는 것만 중요했지 무슨 내용을 담을지, 어떻게 수익구조를 개선할지 따지지 못했던 게 맞다"며 "정부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지역축제가 진화해야 할 단계다. 자생적인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재정자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들어 문체부에서 축제를 평가할 때 '경제적 자생력을 갖췄는지'를 새로 평가 항목에 추가했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우후죽순인 지역축제를 전수조사하고 있다"며 "내년 말 조사결과가 나오면 숨어있는 지역축제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