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사회의 기둥들'… 현실에 대한 생생한 은유
연극은 살아 숨쉰다. 관객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 속에 '지금, 여기'의 현실이 고스란히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연극 '사회의 기둥들'은 제대로 살아 숨쉰다. '현대극의 아버지'로 통하는 노르웨이 국민 극작가 헨릭 입센의 작품으로 국내에선 초연이다. 입센이 1877년에 쓴 희곡인데 137년이 지난 2014년 한국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생명력이 여전히 꿈틀댄다.
거창한 뉘앙스의 제목 '사회의 기둥들'은 반어법이다. 사회에서 지위깨나 있는 '기둥과 같은 사람들'을 일컫지만 그들은 거짓, 위선, 불륜, 음모의 덩어리다.
노르웨이 소도시의 영주이자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카르스텐 베르니크'는 '사회의 기둥'으로 칭송받는다. 높은 도덕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썩어 있다. 도시 개발 이익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대신 누명을 쓰고 떠났던 처남 '요한 퇴네센'과 옛 연인 '로나 헤쎌'은 그에게 눈엣가시다.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더욱 악랄함을 드러내고 처남을 떠나 보낼 의도로 무리하게 배를 출항시키려 한다.
이 배는 베르니크가 직원들을 압박해 날림으로 수리했고 미국으로 항해하다 침몰할 위험이 크다.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세월호 침몰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사회의 기둥들'의 미필적 고의가 똬리를 틀고 있었는가. 국경과 언어를 뛰어 넘는 입센의 통찰력이 놀랍다.
배우들의 연기 성찬이 곁들여진다.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은 신사다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시커먼 욕망을 연기하고 요한 역의 이석준은 사랑과 자유의 에너지가 넘친다. 로나 역의 우현주는 지적인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고결한 척 하지만 속은 옹졸한 선생 '뢰를룬' 역의 이승주는 연극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입센을 한국에 소개하고 배우의 하모니를 이끌어낸 건 극단 청우 대표인 김광보 연출이다. '심플함의 미학'이 특징인 그는 연출을 한 듯, 안한 듯한 연출법을 선보여 왔는데 이번에 절정을 이룬다.
작품은 결국 '사회의 기둥들'은 부, 명예, 지위가 아닌 진리와 자유라고 말한다. 요한이 베르니크의 불륜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의 딸 '디나'와 함께 사랑·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는 장면이 주제를 함축한다.
그런데 공연 내내 왼쪽으로 기울던 무대(무대디자이너 박동우)는 극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배우들이 곧추 서있기도 힘들 정도가 된다. 마치 침몰 직전의 세월호처럼. 그렇다면 이 극의 결론은 과연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해피엔딩일까. '사회의 기둥들'은 살아 숨쉬는 은유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30일까지 역삼동 LG아트센터. 정재은, 정수영, 유성주, 채윤서, 유연수. 번역&드라마터그 김미혜, 각색 고연옥, 조명 김창기. 제작 LG아트센터. 러닝타임 120분. 3만~5만원. 02-2005-1427
연극은 살아 쉼쉬는 은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