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 폐지" vs "소비자 권리"… 구내식당 일반인 영업 '문제 있나'

2014-11-19     박성환 기자

최근 경제난과 높은 물가 탓에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구내식당을 찾는 일반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일반 식당의 절반 가량에 불과한 2500~4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민원인은 물론 직장인과 주부, 학생들까지 이용하고 있다.

이 처럼 공공기관 구내식당이 성업(?)을 하는 것과는 반대로 상당수 소상공인들은 "공공기관 구내식당들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바람에 골목상권이 쇄퇴하고 있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손님에 목말라하던 소상공인들은 급기야 '구내식당 폐지'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 안전행정부에 일반인 대상 영업을 하고 있는 지자체와 구내식당 운영 업체 72곳의 불법행위를 조사해달라며 지난 17일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은 '저렴하고 좋은 걸 찾는 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인데, 소상공인들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 많아 논란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들 "골목상권 다 죽인다"

공공기관 구내식당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전국 소상공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일반인 대상으로 공공기관 구내식당의 영업 행태를 더 이상 두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전국 150여개 자영업자 단체로 구성된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은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국회의사당 전국 17개 광역단체 등에서 집회를 열고 공공기관 구내식당 폐지를 촉구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위탁 운영하는 관공서 구내식당이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 골목상권은 초토화됐고,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비자연맹은 "구내식당은 식품위생법상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돼있지만 이를 어기고, 외부인들의 구내식당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관공서와 공기업 구내식당이 싼 가격으로 손님들을 끌어들여 주변 상인들은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소비자연맹이 지자체 60곳과 경찰청, 교육청 등 12개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외부인 식사를 허용하지 않는 곳은 6곳(10%)에 불과했다.

또 서울 주요 구청 구내식당의 외부인 이용비율은 ▲양천구청 40% ▲영등포구청 33% ▲서초구청 30% ▲강서구청 30% ▲마포구청 30% ▲용산구청 30%에 이른다.

소비자연맹은 지난 14일 지자체 구내식당 72곳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을 안전행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소비자들 "가격싼 구내식당 이용은 당연한 권리"

"회사 주변에서 이 가격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어요. 맛도 좋고 깨끗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해요."

지난 18일 점심시간 서울의 한 구청 구내식당. 식당 입구에는 일반인들의 식사 시간과 식권 가격, 반찬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안내판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식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유명 '맛집' 부럽지 않을 정도로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 직장인부터 지역 주민, 저렴하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까지 몰리면서 식당 안은 어느새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50여개의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식당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잡곡밥과 된장국을 포함해 두부조림, 호박나물무침 등 4~5가지 반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손님들은 한 줄로 서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게 구내식당을 찾은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이곳을 찾은 일반인들은 가격도 저렴한데다 맛도 좋고 시설이 깨끗하기 때문에 자주 이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강정원(27·여)씨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는 이 가격에 도저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없어 동료들과 일주일에 1~2번 정도 구청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며 "시설이나 음식 모두 위생적이고, 무엇보다 잔반을 다시 재사용하지 않아 믿고 먹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민원을 보기 위해 구청을 찾은 이모(45)씨는 "경기 침체로 힘든 식당 업주들의 생각도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좋은 밥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건 소비자의 소중한 권리"라며 "일반인들이 구내식당을 이용한다고 해서 식당 영업이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고, 폭리를 취하지 않는 선에서 관공서 구내식당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각. 해당 구청 인근 상가는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일부 음식점을 제외하고 대부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듯 뜨문뜨문 이어졌다.

일부 음식점은 잡담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종업원들만 있을 뿐 손님이 오지 않아 싸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음식점 업주들은 경기 불황에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데다 재료비와 임대료 등 점포 유지비용이 계속 오르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1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 최길영(52)씨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손님이 급격히 줄어든 이후 좀처럼 회복 기미가 없다"며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구청 구내식당이 법을 위반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밥을 팔고 있으니 심정이 오죽하겠냐"고 반문했다.

◇복지 차원의 구내식당 운영이 소상공인들과 '상생 방법'

식품위생법상 구내식당(집단급식소)은 영리를 목적으로 급식시설을 운영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지자체들 역시 구내식당의 외부인 식사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부터 구내식당의 외부인 식사를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관공서를 이용하는 민원인이 식사하는 것까지 막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지자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구청 주변 음식점 업주들의 생각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구내식당의 일반인 이용 허용을 영리 목적으로 보기 어렵고, 현실적으로도 민원인들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민원인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법을 위반한 것인지 실제 검토가 필요하다"며 "안전행정부나 서울시에서 공식으로 어떤 지시사항이 내려오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공서 주변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장애인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들만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것을 조언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구청이나 지자체에서 외부인들에게 식당을 개방하는 이유는 공공기관을 찾는 분을 포함해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라며 "결과적으로 인근 소상공인들에게 타격을 준다면 원래 목적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구내식당 이용객을 한정하는 방식으로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적절히 수용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민원인이나 구 단위 내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구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돈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복지 차원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