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톡]명예 잃은 4星 장군…국방부의 '갑질' 때문?
- 신현돈 전 사령관 음주추태, 알고보니 대부분 사실과 달라
- 박근혜 대통령 한 마디에 전역조치, 국방부는 '쉬쉬'
'음주 추태'로 물러났던 신현돈 전 1군사령관(육군 대장) 문제가 두 달여 만에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음주 추태를 했느냐 안 했느냐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진 것입니다.
등장인물도 다양해 졌습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까지 한 꾸러미에 엮였습니다.
진실공방 사건은 지난 달 30일 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신현돈 장군이 메일을 한 통 보내며 시작됐습니다.
신 장관이 보낸 메일의 제목은 '전 1군 사령관 음주추태 사건 관련 정정보도 요청'입니다. 신 전 사령관은 자신의 잘못으로 거론된 음주 추태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지난 9월2일 전역 조치 당시 국방부는 "신 사령관이 지난 6월 군사대비태세 기간 중 안보강연을 위해 모교를 방문, 지휘관으로서 위치를 이탈하고 출타 중에 품위를 손상시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오늘부로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강연 후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소주 2병을 마셨다고도 언급했죠.
간단히 정리하면 위수지역 이탈, 과도한 음주, 민간인과의 실랑이입니다. 복장을 풀어헤쳤다는 것도 추가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음주 추태로 '별 넷'인 대장이 물러나는 것도 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죠.
GOP 총기난사와 윤 일병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기간이라 군의 기강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까지 받았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에 벌어진 일인데다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만큼 전역조치는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신 전 사령관이 명예회복과 당시의 일부 보도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진실공방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기사는 새천년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국방부의 확인을 거쳐 보도된 것인데, 내용 자체가 오보라는 게 신 장관의 주장이었죠.
골자는 '신 전 사령관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과음을 해, 헌병에게 업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갔다', '당시 복장 상태는 군화 한쪽은 신고 한쪽은 벗은 상태였다', '그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헌병이 출입을 통제해 분노한 민간인과 실랑이까지 빚어졌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9월 중순 국방부 감사관실의 사건 진상 조사 결과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이 사실을 신 장관이 언론에 공개하기 전까지 숨겼습니다.
신 전 사령관은 "국방부 감사관실, 신고자 A교수, 경찰청장에게 진위여부를 문의한 결과 허위로 확인됐다"며 "국방부 국정감사 준비자료와 질의 및 장관 답변에서 허위로 확인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이죠.
추가로 제기된 민간인과의 말싸움, 실랑이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방부 감사관실에 사실을 확인했고 국정감사 때 장관이 '없었음'이라고 답변해 허위임이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당직실에 신고를 했던 A교수도 오해였다며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군사대비 태세 기간에 모교를 방문한 것도 이미 상급부대에 보고 후 승인을 받은 것이라 문제되지 않는 다고 주장했습니다. 육군본부(인사사령부)의 사업계획상 수개월 전에 육군본부에 보고, 승인된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또 모교방문 당일 육군본부의 일일상황보고와 육군참모총장 일정표에 '1야전군사령관 모교방문행사'가 명시되어 보고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신 장관은 "야전군사령관 부임 후 처음 모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교교사와 인근에 있는 동기들이 '조금만 줄께'라는 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음주를) 적절히 조절하고 응대했다"며 "저녁식사 자리를 끝내기 전에 양해를 구하고 오후 8시 이전에 먼저 일어나 부대 공관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당시 작전지휘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문제의 오창휴게소 행적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당일 오후 8시30분께 오창휴게소에서 부관 등 수행원 3명과 함께 5~7분간 화장실을 사용하고 승용차로 복귀했을 뿐 어느 누구와도 대화나 언쟁, 접촉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고자 A교수와의 접촉에 대해서는 "화장실에서 이동할 때 통로가 협소한 곳에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민간인 A교수에게 부관이 '죄송합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라고 통상의 군 예절을 표시했다"며 "행정실장(비서실장)이 사령관이 사용하는 방향의 화장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어 다른 이용객의 화장실 출입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A교수는 민간인 1~2명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했으며 출입이 자유로웠고 불편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고 말했습니다.
◇음주 추태 없었다는 신 전 사령관…추태라는 한민구 장관
무려 13만 명의 병력을 통솔하는 '별 넷'의 1군사령관이 왜곡된 보고 몇 마디로 진상조사 도 없이 내쳐진 것입니다. 국방부는 또 일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일절 언급 없이 한 달 넘게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신 장관이 기자들에게 정정보도를 요구한 뒤 뒷수습에 정신이 없었죠. 국방부는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습니다. 한민구 장관이 직접 기자들에게 사건 내용을 설명하기까지 했죠. 한 장관은 신 전 사령관의 육사와 충북 청주고 선배입니다. 진상조사도 신 전 사령관이 9월 초 한민구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방부 감사관실의 조사를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9월2일 보도 당시 국방부가 신 장관에게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고 주변 부관들의 정황을 토대로 사실인양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신 전 사령관이 정정보도를 청구한 것을 두고 국방부는 오락가락 해명을 했습니다.
최근 감사 결과가 나온 뒤에는 "추태가 없었다"고 국방부도 정정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이를 또 다시 뒤집습니다.
3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이 일을 언급하며 "당시 추태는 없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복장이 흐트러진 모습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수행원의 과도한 경호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화장실 이용하는 분과 신체적 접촉은 없었고 실랑이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신 장관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신 장관의 전역 이유에 대해서는 "대비태세 기간 중에 음주를 하고 강의 일정을 조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본인의 판단으로 자진해서 전역지원 의사를 밝혔고 그에 따라 국방부 장관이 당시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확인을 본인에게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해명을 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본인에게 물어볼 수 있지만 이미 전역한 사람이기 때문에 물어볼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주장은 다를 수도 있고 해서 수행한 사람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다시 복원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오보를 하게 만든 것에 대한 해명 치고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기자들의 계속되는 확인 요구에 한민구 장관도 3일 저녁 기자실로 내려와 신 전 사령관 관련 내용을 직접 언급합니다. 한민구 장관은 김 대변인의 언급과 달리 추태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신 전 사령관이 대통령 해외순방으로 대비 태세가 요구되는 기간에 근무지를 떠나서 모교 방문 행사를 했다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전역을 안 시킬 사람을 전역시킨 것은 아니다. 권오성 당시 육참총장이 확인전화를 했을 때 취한 목소리였을 만큼 과도한 음주 행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추태라는 게 추한 행동 아니냐. 이런 게 문제가 되니 전역하는 게 맞다 싶었고 승인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실을 숨겨야 했는지는 박지원 의원이 알려줬습니다. 전역시키라는 말을 한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전역시키라고 한 일을 뒤집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인지 대형 오보를 양산한 상황에서도 국방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사이 신 장관의 명예는 진창에 떨어졌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방부가 대통령의 체면을 생각해 '갑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행동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4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 출연해 "신 전 사령관의 일탈 행위에 대해 사건 발생 두 달 후인 지난 9월 초 보고를 받고 격노한 대통령이 '전역시키세요' 이렇게 말했다"며 "'기강 잡는 차원에서 최고 수준의 조치를 취하라' 이렇게 해서 대통령 한 마디에 전역이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 의원은 "그런데 이제 와서 신 전 사령관의 추태가 없었다고 명예회복을 시키는 차원으로 국방부에서 얘기를 하다가 어제부터 갑자기 한민구 국방장관이 일탈행위를 했다고 지적을 하고 신 전 사령관을 밀어 붙이는 걸 보면 대통령이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전역시켰지 않느냐라는 말이 나올 것 같으니까 갑자기 변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대통령 말 한마디 살리자고 엄한 장군을 내친 격입니다. 당초부터 잘못된 조사로 벌어진 일이 점차 눈덩이처럼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게 된 속사정이 이렇다는 겁니다. 한숨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방부의 '갑질'이 아니라 청와대의 '갑질'로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사자인 신 전 사령관은 논란이 청와대로 옮아가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실추된 명예가 회복됐다고 판단한 것인지 정정보도 엿새 만에 이를 철회했습니다.
4일 오전 기자들에게 다시 메일을 보내 "정정보도 청구는 허위보도로 판명 검증된 '근무지 무단이탈'과 '만취추태' 등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었다"며 "기자여러분의 도움과 언론사의 적극적 보도로 많이 석명이 되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허위로 판명 검증된 이외의 모든 행동과 과오는 당사자인 신현돈 예비역 장군이 모두 지고가야 할 책임입니다. 국방부의 조치에 불만이나 섭섭함이 전혀없습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선배인 한 장관이 기자들을 만난 뒤 신 전 사령관에게 그만하면 됐다고 언급을 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됩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폐쇄적인 군의 문제점만 다시 드러나게 됐습니다.
신 전 사령관은 또 다시 잠적해 버렸습니다. 9월2일 전역 조치됐을 때도 외부와 연락을 끊고 며칠 동안 기도원에서 마음을 다스렸었습니다. 이번에도 또 다시 기도원을 찾아 들어가며 연락두절 상태가 돼 버린 겁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신 전 사령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신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불발에 그쳤습니다. 녹취를 하는 것 같다며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까요. 이메일만 5차례 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며칠 동안 뭐에 홀린 듯 살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