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클래식기타 콩쿠르 휩쓴 박규희 새 앨범 발매
한국에 클래식기타 매력 알리고파
클래식 기타 줄은 나일론이다. 쇠줄로 된 통기타와는 음색이 다르다. 결이 좀더 섬세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섬세한 성격의 박규희(29)는 타고난 클래식 기타리스트다. 엄마가 취미로 기타를 배우기 위해 기타 학원을 찾았을 때 그녀는 만 세살이었다. 그 때부터 클래식 기타에 흥미를 느꼈고 25년 넘게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4일 오전 대학로에서 만난 박규희는 "저와 클래식 기타가 서로 닮아가고 있다"며 웃었다. "제 성격이 섬세해요. 작은 것 하나에도 너무 신경을 쓰죠. 뭐랄까.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기타를 연주할 때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짚고 가려고해요. 그러다 보니 능률이 안 올라요." 그녀가 연주하는 클래식 기타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이런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타는 친밀감 있는 악기다. 박규희 말마따나 어느 악기보다 몸에 바짝 붙이고 연주하기 때문에 "모성애를 느끼게"도 한다. 특히 클래식 기타는 줄이 얇아 사람의 손이나 손톱 모양에 따라서도 음색이 바뀐다. 손톱의 각도, 기타를 들고 있는 모양새에도 영향을 받는다. 추위에 손 끝이 트고, 손톱에 상한 자국이라도 있으면 음색에 잡음이 섞인다. 그래서 "튼 손 끝을 붙일 수 있게 하는 강력 본드는 필수"라고 말했다.
내내 해맑은 표정으로 기타 이야기를 하던 박규희는 "중학교 때 따돌림을 당하고 IMF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데 여러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기타는 연주하는 사람의 기분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한다. 그녀의 기타 소리는 갈수록 밝아지고 있다. 그녀의 행보도 계속 조명을 받고 있다. 새 앨범 발매와 콩쿠르 우승 소식도 잇따라 들려온다.
◇새 앨범을 '향수'로 채운 브라질 음악
최근 음반유통사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7번째 정규앨범 '사우다지(SAUDADE)'를 발매했다. '사우다지'는 향수라는 뜻이다. 클래식 기타의 메카 남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브라질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
클래식 기타 작곡가 빌라-로보스를 시작으로 현지에서 보물급으로 통하는 지스몬티,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곡을 수록했다. 타이틀곡은 지스몬티의 '팔랴수(palhaço)'다. 포르투칼어로 '익살광대'라는 뜻이다.
그녀는 "'팔랴수'는 은은하면서도 향수가 어린 곡이죠. 그래서 이 곡을 중심으로 테마를 정하게 됐어요. 보통 브라질 음악하면 삼바 등 리드미컬한 음악을 떠올리는데 섬세한 악기로 연주하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들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라며 눈을 빛냈다.
박규희가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우루과이 출신 알바로 피에리(62)다. 그녀는 피에리가 재직 중인 빈국립음악대학에 가기위해 일본 도쿄음대를 망설임 없이 자퇴하고 무작정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브라질 음악의 특징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했다. 유럽음악의 영향으로 빌라 로보스 같이 클래식한 음악도 있다. 브라질 음악은 어떤 음악과도 잘 융화된다는 얘기다. "기타는 어느 악기와도 조화를 이루거든요. 몸통이 상자처럼 통으로 돼 있어 손바닥으로 치면 타악기 소리도 낼 수 있어요."
◇콩쿠르는 연마의 기회
유럽의 여러 콩쿠르를 휩쓴 박규희는 지난달 17일 폴란드 타히에에서 열린 '얀 에드문드 유르코프스키 기타 콩쿠르'에서 또 1위를 차지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폴란드의 가장 큰 국제기타콩쿠르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제레미 쥬브(35) 등을 배출했다.
유럽에는 클래식 기타 콩쿠르가 피아노 콩쿠르 보다 더 많다고 했다. "물론 '3대 피아노 콩쿠르'처럼 우승하면 곧바로 명성이 따라오는 건 아니지만 현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요. 네트워크를 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연주할 수 있죠.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하는 걸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되죠. 혼자 활동하다 보면 나태해져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거죠. 만 서른살까지는 계속 (콩쿠르에)출전하려고 합니다."
'얀 에드문드 유르코프스키 기타 콩쿠르에서 여성이 우승한 건 30년만이고 아시아 여성으론 처음이다.
"클래식 기타는 섬세하죠. 여성성이 있는 악기인데 신기하게 연주자들은 대부분 남자에요. 심사위원분들이 '네가 들어오면 졸다가 잠이 깬다'고 농담을 하실 정도로 우락부락 하고 덩치 큰 분들이 많죠. 아시아 사람도 드물고요. 그런 면에서 제 조건이 유리한 점이 있죠. 아시아사람이고 여성이라 소리가 약하고 역동성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해 처음에는 기대치가 낮거든요."
◇제2의 무라지 가오리
오스트리아 빈국립음악대학 학사를 마친 박규희는 유럽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활약 중이다. 특히 도쿄음대를 자퇴한 박규희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콘서트 실황이 일본 NHK를 통해 방송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일본 전통 레이블 데논과 계약을 맺고 앨범을 발매했다. 데논 소속 한국인 뮤지션은 박규희에 앞서 계약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44) 외엔 아무도 없다
처음 기타를 잡은 것도 어릴 때 일본에서 잠시 살았을 때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것을 좋아해주세요. 처음에 한국 사람이라 망설이는 분도 있었지만 친근감이 있으니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정치적인 불이익을 느껴 본 적이 없어요."
일본 톱 클래식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36)를 잇는 스타 연주자로 주목 받고 있다. "가오리는 클래식 기타를 일본에 알린 분이에요. 현지 클래식 기타 음악계는 그 분(을 분기점으로) 전후로 나눌 수 있어요. 외모도 김태희 씨처럼 정말 예뻐요." 가오리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00년대 여러차례 내한했다. 박규희 역시 그녀의 팬이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콘서트를 보러 갔다.
악화된 한일 관계에 문화를 통해서 숨통을 터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일 교류 콘서트에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싶어요. 양쪽 언어를 다 할줄 알고 양국 문화를 이해하니 조금이나마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 클래식 기타 매력 알리고파
박규희는 앞으로 국내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최근 시작한 마스터 클래스도 그 중 하나다. 유럽에서 공부할 환경이 못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다. "클래식 기타 소리가 작지만 뚫고 퍼져 나가는 힘이 있거든요. 그렇게 소리를 내는 부분과 시대가 다른 곡을 해석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알려주고자 해요. 한국에는 이에 대한 솔루션이 아직 없거든요."
무엇보다 모국에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한국에는 아직 기타 연주음악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 "클래식 기타의 매력은 무한대인데 기회가 없다보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죠. 제가 유명해지고 싶다기 보다 클래식기타 자체를 알리고 싶어요. 한국에서 기타를 친다고 하면 '반주를 하는구나' '밴드를 하는구나'정도로 생각하시죠."
클래식 기타는 마음을 치유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클래식 기타는 소리가 크지 않아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듣다 보면 저절로 치유가 돼요. 북소리, 클라리넷, 피아노, 하프 소리도 낼 수 있죠."
박규희는 콘서트에서 기타 소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으면 누구든 팬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내내 겸손하게 이야기하던 그녀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이야기할 땐 훨씬 당차보였다. 클래식 기타를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 마리아홀에서 새 앨범 음악감상회를 연 박규희는 2015년 3월12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펼친다. 클래식 기타와 박규희의 팬이 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