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 헤드윅·라카지·프리실라와 다릅니다
파산 위기에 빠진 신사화 구두공장을 가업으로 물려 받은 '찰리 프라이스'. 어느날 여장남자 '롤라'를 우연히 만난다. 그와 같은 여장 남자를 위한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틈새 시장을 개척, 회사를 다시 일으킨다.
라이선스 한국 초연을 앞둔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Musical Kinky Boots)는 언뜻 보면 성소수자를 다룬 유명 뮤지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킹키부츠를 제작하는 CJ E&M 공연사업부문은 그간 '헤드윅' '라카지' '프리실라' 등 성 소수자들을 다룬 뮤지컬도 제작해왔다. 그러나 킹키부츠는 이전 작품들과 노선이 다소 다르다.
'롤라' 역의 뮤지컬스타 오만석은 27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킹키부츠 제작보고회에서 자신이 거친 헤드윅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캐릭터가 달라요. 헤드윅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트렌스젠더가 돼 버린 상황이죠. 남자를 실제로 사랑하고. 킹키부츠의 롤라는 여장 남자에요. 남자를 사랑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정체성의 차이가 약간 있죠. 그리고 헤드윅이 조금 더 인생에 대한 철학을 더 깊게 풀어냈다면 롤라는 깊은 방향을 풀어내기보다는 가볍게 드러내놓죠. 극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해요. '비 유어 셀프.' 너 자신이 되고,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는 거죠. 남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솔직해지는 겁니다."
김동연 협력 연출은 "성 소수자에게 포커싱이 돼 있기보다는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을 다룹니다. 다른 성수소자 뮤지컬처럼 쇼를 강조하기보다는 드라마틱한 구조죠. 일반인들이 겪을 수 있는 과정인데 드라마를 강화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거들었다.
김병석 CJ E&M 공연사업부문 대표도 "그간 뮤지컬처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라기 보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편견을 극대화해서 행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디비 본즈 협력 연출 역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이를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는 세계 어느 곳이든 공통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자배우들이 10㎝ 높이의 힐이 달린 구두를 신고 연기와 안무를 해야 한다. 킹키부츠는 여장 남자들이 신는 예쁜 부츠다.
러스트 마워리 협력 안무는 "10㎝의 하이힐을 신고 연기하는 건 남자배우에게 힘든 일"이라고 짚었다.
오만석은 "흰머리가 부쩍 늘었어요"라고 연습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2008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연출 이후로 가장 흰 머리가 많이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습 때는 10㎝까지는 아니더라도 7~8㎝의 높이의 힐을 신고 해요. '헤드윅' 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발이 아프더라고요. 그럼에도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롤라의 천적인 상남자 '돈'을 연기하는 뮤지컬배우 고창석은 "저는 한 장면 힐을 신고 나와 출연료를 받는데 공연 내내 신는 분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만석은 '헤드윅'을 경험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아무리 겉모습을 만들어도 내적으로 표현이 안 되면 힘들죠. '헤드윅'을 연기하면서 10년 전 트렌스젠더 바에 가서 그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거부감이 없어진 것이 가장 도움이 됐어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죠. 음악은 록 뮤지컬인 '헤드윅'보다 힘들었어요. '플랫'이 되게(반음을 낮춰) 부르면 혼나요. 하하하."
신예 뮤지컬배우 강홍석이 편견과 억압에 맞서는 아름답고 유쾌한 남자 '롤라'를 오만석과 함께 번갈아 연기한다. '하이스쿨뮤지컬' '런투유' 등으로 얼굴을 알렸을 뿐인데 '깜짝 캐스팅'이다. 강홍석 역시 "저도 깜짝 놀랐다"고 웃었다. "꼭 '슈퍼스타K' 우승한 것처럼 감격이 컸죠. 솔 틱한 음악들을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이 뽑힌 데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빌리 포터의 음악을 많이 듣고 그 분의 음성을 따라한 것도 많은 부분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미국 뮤지컬배우 겸 가수 빌리 포터는 브로드웨이판 킹키부츠에서 롤라 역을 맡아 토니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공장의 재기를 위해 '찰리'를 돕는 똑똑한 여직원 '로렌'은 '위키드'의 뮤지컬스타 정선아와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등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배우 최유하가 번갈아 연기한다.
정선아는 "지금까지 12년 정도 무대 위에서 구두를 벗은 적이 없어요.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무대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액팅한 모습을 보이니 상당히 신나죠. 로렌 솔로 곡이 좋고 감초 같은 역할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즐거운 모습으로 웃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눈을 빛냈다. 최유하 역시 "로렌은 밝고 유쾌한 생각을 하는 캐릭터"라면서 "남자 배우들을 지지해주는 역"이라고 알렸다.
디비 본즈 협력 연출은 "정형화된 캐스팅이 아니라 개성 있는 캐스팅을 하고자 했다"고 알렸다.
미국의 팝슈퍼스타 마돈나와 함께 1980년대를 풍미한 디바 신디 로퍼가 작곡과 작사를 맡아 주목 받았다. 디스코와 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다. 지난 1월 '제56회 그래미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받기도 했다.
윌 반 다이크 협력 음악감독은 "로퍼와 뉴욕에서 작업할 때 만났는데 '음악에 심장의 영혼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라면서 "자신의 영혼과 모든 것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디스코와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섞였으나 로퍼가 작곡한 곡에서 보듯 팝 뮤지컬이다.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과 록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까. 양주인 협력 음악감독은 "배우들에게도 최대한 팝적인 느낌을 살려서 노래하라고 주문 중"이라면서 "지난 8월 로퍼를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리듬, 리듬, 리듬.' 리듬을 세번 말하더라. 관객들이 들썩 거릴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킹키부츠를 두 번 봤다는 오만석도 "로퍼의 뮤지컬 데뷔작인데 생각보다 뮤지컬에 잘 어울리는 곡들로 구성돼 놀랐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2013년 현재의 로퍼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특성이 잘 묶여서 상품화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그런 케이스가 나왔으면 해요."
킹키부츠는 지난해 토니어워즈 작품상, 음악상 등 6관왕에 오른 화제작이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주요 30개 도시 투어 공연이 진행 중인 최신작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공연은 세계 첫 번째 라이선스 공연이다. 국내 공연계의 큰손인 CJ E&M 공연사업부문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해 특히 주목 받았다.
김병석 CJ E&M 공연사업부문 대표는 "한국 뮤지컬산업이 대단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서 "지금은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시기인데 킹키부츠가 그 사례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기대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현지 라이선스 공연에 대한 권리를 CJ E&M 공연사업부문이 가지고 있는 걸 가리킨다. "중국어 버전 등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겁니다. 한국어버전은 계속 나름 성장하도록 해야죠. 킹키부츠가 한국뮤지컬계에서 새롭게 진화하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찰리 역에는 뮤지컬스타 김무열과 신예 윤소호가 더블 캐스팅됐다. 지난 8월 전역한 김무열은 킹키부츠를 무대 복귀작으로 택했다. 윤소호는 '트레이스유' '데스트랩'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돈'은 고창석과 함께 심재현이 담당한다. 저돌적이고 야망에 찬 '니콜라' 역은 뮤지컬 '위키드'로 주목 받은 이예은이 맡았다. '롤라'와 함께 화려한 무대매너와 쇼를 선보이는 예쁜 남자 '엔젤'들에는 엠넷 '댄싱9' 시즌1에서 주목 받은 무용수 한선천을 비롯해 김준래, 전호준, 우지원, 권용국, 송유택 등이 캐스팅됐다.
12월2일부터 2015년 2월22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볼 수 있다. 충무아트홀(사장 이종덕)이 주최한다. 극본 하비 피어스타인, 연출 제리 미첼, 협력안무 이현정. 5만~14만원.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