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안 국무회의 통과…警 "노예문서 다름없다" 강력 '반발'

2011-12-27     사건팀

 경찰의 내사(內査) 권한을 보장하되 검찰의 사후 통제를 받도록 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대통령령 제정안이 2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리 국무회의에서 통과하자 일선 경찰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은 특히 이번에 통과한 제정안이 사실상 경찰의 내사 범위를 축소하고 검찰의 통제를 받도록 함에 따라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정안에 따르면 경찰이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긴급체포, 현행범인 체포 등을 하고도 입건하지 않고 내사를 종결하더라도 검찰에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제출하도록 했다. 내사 범위도 단순한 정보나 첩보 수집, 탐문 활동 등으로 제한된다.

검사의 수사지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법경찰관이 검사에게 이의제기를 할수 있도록 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를 신설하고, 수사지휘는 서면 지휘를 원칙으로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은 "이번에 통과된 제정안이 경찰의 수사 범위를 오히려 축소시켜 당초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내사 단계부터 검찰 지휘를 받으면 검찰 견제기능은 완전히 사라져 권한남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찰의 요구는 완전 무시된 채 검찰 권한만 강화시키는 이상한 재정안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며 "경찰의 수사권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광진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수사권 조정안은 처음에 국회에서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인데 거꾸로 검찰의 경찰에 대한 권한만 더 커졌다"며 "더군다나 관행적이었던 검찰의 수사지휘를 아예 명문화 해 버리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사단계에 있는 사건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통제가 세분화된 상태에서는 일선 경찰들의 수사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경찰들은 이번 제정안에는 경찰 측 요구가 대부분 빠지고, 대신 검찰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권한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혜화경찰서의 한 경찰은 "검찰이 일제 제국주의 시대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 노예문서라고 부르는 조정안이 통과돼 답답하다"며 "이번 제정안으로 비리 검찰에 대한 조사가 사실상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도 "한마디로 내사라는 것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검찰에 대한 견제기능이 마비되고, 검찰의 권한남용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는 사실상 실종 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수사권은 경찰이 갖고 기소권은 검찰이 갖도록 분리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과 사회 정의실현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조현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장까지 나섰는데도 재정안에 경찰 요구사항이 반영이 안됐다는 것은 대한민국 경찰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조 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는 이번사태에 대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선서 한 경찰관도 "13만 경찰의 숙원이었던 수사권 독립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경찰의 수사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며 "이번 제정안은 조 청장과 수뇌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일선 경찰들마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며 "조 청장을 비롯한 수사권 조정에 나섰던 간부들은 책임있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