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어르신 건강을 어르신들이 챙긴다
지난 수요일, 혼자 사는 황영희(가명, 82, 여)씨는 오전부터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노란 조끼와 모자를 쓴 손종환(79)씨 등 건강지킴이 3명이다. 5월부터 매주 찾아오는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
“식사는 얼마큼 하세요?”
“입맛이 없어서 잘 못먹어요.”
“약을 드시고 얼른 나으시려면 꼭 식사해야 돼요.”
고관절 수술을 받은데다 중풍으로 한쪽을 제대로 쓰지 못해 바깥 나들이조차 힘든 황씨에게 이들은 멀리 살면서 어쩌다 한번 오는 외아들 가족보다 더 가족같다.
이처럼 중구(구청장 최창식)가 어르신 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어르신 건강지킴이’(이하 건강지킴이)가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건강지킴이는 8개 동주민센터에서 추천한 건강관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만 65세 이상 어르신 42명으로 구성되었다. 남자가 17명, 여자 25명이다. 최연장자는 30년생인 서경애(85세, 여)씨다.
이들은 3월부터 한달간 중구어르신건강증진센터에서 기초 건강상식과 치매, 만성질환에 대한 이해, 건강노화를 위한 자가건강관리 실천 방법 등 건강리더과정을 수강했다.
그리고 5월부터 주3회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매주 월요일은 어르신건강증진센터에서 건강체조와 대화하는 법, 상대방에게 호감사는 법, 대상자 집에 못들어오게 하는 자녀들을 설득하는 법 등을 다시 배운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2인 또는 3인 1조로 홀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분들과는 같이 건강체조를 하며 또래 친구가 돼준다. 어르신건강증진센터 홍보도우미가 돼 관내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 건강증진사업 홍보와 치매 조기검진 독려 등의 활동도 벌인다.
하루에 방문하는 가구는 대략 3곳. 어르신건강증진센터에 등록된 홀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남녀를 떠나 쉽게 친해지고 연령대도 비슷해 이야기가 통한다. 하지만 외롭게 지내는 분들이 많아 건강지킴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울음을 터트리는 분들도 있다.
그럴때마다 건강지킴이 김순좌(70, 여)씨는 눈물이 난다.
“4남매가 있지만 남편과 이혼후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어요. 내 처지와 비슷해서 눈물이 많이 나요.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분들을 생각하면 울기보다는 힘을 내야지라고 각오를 다지죠.”
차상위계층이기도 한 김씨는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도전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상자들과 만나 활짝 웃으려고 한다.
서울대공원에서 근무후 정년퇴직한 손종환씨는 5남매를 다 출가시켰으나 치매증세가 있는 부인을 간호하느라 퇴직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다행히 손씨의 정성스런 간호로 부인이 많이 호전되었다. 그것을 보며 비슷한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매증세가 있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손씨의 눈길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가끔 젊었을 적 배웠던 장구를 선보이기도 한다.
손씨는 공직 경험이 있어 10명으로 이뤄진 신당동 조의 조장을 맡고 있다. 조원들도 경험많은 그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한다.
어르신 일자리 사업이다 보니 이들이 한달에 받는 돈은 20만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령에 활동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 일이 즐겁다.
간암으로 다섯차례 이상 수술을 했던 건강지킴이 박명남(72)씨는 “또래들이 많아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어떨때는 서로간에 알고 있는 의료상식을 교환할때도 있어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같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일에 만족해요.”라고 말했다.
이들을 지도하는 중구어르신건강증진센터 박제선씨(010-6392-9239)는 “건강지킴이들이 아직 서툴기는 하지만 독거 어르신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요. 초기 치매 증세가 있는 분들은 건강지킴이들이 방문할 때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을 짓기도 해요.”라며 건강지킴이들의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밝혔다.
현재 중구에는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 건강활동으로 건강지킴이 외에 ‘노노클럽’이 있다. 초기 치매 독거 어르신 가정을 1대1로 방문해 가사활동에 도움을 주고 말벗서비스와 운동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활동사항이다.
7월부터는 청년기 인지 기능을 노년기 이후에도 유지하고 싶은 희망이 담긴 전문 인지학습 프로그램인‘2090 지혜 아카데미’를 인생이모작센터와 함께 가벼운 인지 장애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어르신들의 사정은 어르신들이 더 잘 안다. 건강이 좋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어르신들을 보살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