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호관세 제동이 불러온 나비효과…韓 디지털 통상 압박 수위 높일 듯
트럼프, 상호관세 위법 판결 직후 15% 글로벌 관세+새 관세 시행 예고 USTR, 무역법 301조 조사 착수…美 빅테크 차별 규제 문제 타깃 가능성 온플법·지도반출 등 韓 디지털 통상 이슈 ‘정조준’ 예고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에 제동을 건 가운데 한미 디지털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상실된 통상 동력을 회복하고자 디지털 규제와 보복 관세를 연계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빅테크 규제 이슈를 통상 협상 전면에 올려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0일(현지 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여러 무역 상대국의 정당하지 않고 차별적인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근거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는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터무니없고 부실하며 지극히 반미적인 관세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핵심 어젠다인 관세 정책이 사법부에 가로막히자 정치적 성과를 재확인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그는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5%의 글로벌 관세를 선언했다. 무역법 122조는 무역수지 악화 등 대외경제 상황이 긴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일정기간 관세 부과나 수입할당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관세 부과 기한이 150일로 제한돼 있으며 그 이후로는 의회 승인을 받게 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대안들이 있다. 더 나은 대안들이 더 많은 돈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다른 국가와 기업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미 정부가 본격적으로 꺼내든 카드가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 착수다. 이 조항은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미국의 통상 이익이 침해될 때 보복 관세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 테크 기업과 디지털 상품·서비스에 대한 차별, 디지털 서비스세 등을 주요 조사 대상으로 지목하며 “조사 결과 불공정 관행이 확인되면 관세는 활용 가능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무역법 122조가 허용하는 150일의 한시적 관세 기간 동안 301조 조사 등을 병행해 디지털 규제 철폐와 연계된 새로운 관세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세 부과 방식만 바뀌었을 뿐 관세를 협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 기조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조사 대상에 한국도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제한, 망 사용료 제도 논의 등을 미국 빅테크에 대한 차별 규제로 보고 있다. 그간 통상 협상에서 부수적으로 거론돼 온 디지털 규제 사안이 관세 협상 핵심 의제로 격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에 대해서도 미국 기업에 대한 부당 대우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쿠팡 투자사인 그린옥스, 알티미터 등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 대우한다며 무역법 301조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USTR에 제출한 바 있다. 미 정부가 이를 301조 조사 명분으로 삼아 관세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현재 통상 환경이 혼돈으로 접어들었다며 국제 무역에서 예측 가능성이 상실된 점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은 만큼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곁들임처럼 언급되던 플랫폼 규제나 쿠팡 조사 문제도 협상 핵심 카드로 부상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는 기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기업에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대법원 판결로 협상 심리상 우리 측이 유리해 보일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협상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미국은 관세 정책 동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디지털 규제 이슈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빅테크 플랫폼 기업 옹호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 정부도 통상 리스크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상황 관리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1일 상호관세 위법 판결과 후속 관세 조치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통상 환경에 미칠 영향을 긴급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연말까지 운영해 온 ‘K-ICT 수출 버추얼 상황실’을 즉시 재가동해 대미 ICT 수출 동향과 현지 통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기업 애로 사항을 수시로 파악해 관계부처와 공유할 계획이다. 해당 상황실은 ICT 제품·서비스 수출뿐 아니라 디지털 비관세 장벽, 인공지능(AI) 서비스 규제 등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제기되는 관세·비관세 이슈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협의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