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반발’ 출구 찾는 의료계…파업 대신 준법투쟁?
정부, 내년부터 5년간 평균 668명 의대정원 증원 김택우 회장 "교육 인프라 감당안돼…정부책임" 파업 등 집단행동 결정 유보…조만간 발표할 것
정부가 내년부터 향후 5년 간 의과대학 정원을 연평균 668명 확대하기로 발표하자 의료계에 내부에서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집행부에 대한 책임론과 리더십 논란이 불거지면서 내홍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의협이 이번주 중으로 파업을 포함한 대응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제2의 의료 대란'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이미 투쟁 동력을 상실한 만큼 파업 등 장외투쟁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날 오후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평균 668명 늘려 총 3342명이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교육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해 ▲2027년 490명 ▲2028·2029년 각 613명 ▲2030·2031년 공공의대와 지역 신설 의대를 포함해 각 813명을 단계적으로 늘린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이날 보정심 최종 표결 전 기권표를 던지고 퇴장한 후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김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의료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대화에 임해왔지만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채 숫자에만 매몰된 정부 결정을 마주하며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수차례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제시해 왔는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우리가 수정 제시한 의견 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이상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27학년도는 의정갈등으로 휴학했던 학생들과 군 복귀생들이 돌아오면, 기존 정원과 맞물려 엄청난 수의 인원이 폭증하게 된다"며 "이는 현장의 교육 인프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이로 인한 의학교육 붕괴의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그러나 그동안 총파업 등 장외투쟁을 예고했던 것과 달리 구체적인 집단행동 계획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파업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행동 방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집단행동을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회원들의 기본적인 의견을 모으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의협은 오늘 '거버넌스회의'를 열고 파업 등을 포함한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한 후 1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추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서 의협 집행부를 향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보정심 결정 이후 의료계 내부에서 김택우 회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내부 분열도 나오고 있다. 어느정도 예견이 된 상황임에도 제대로된 대응방안 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미 투쟁 동력을 상실한 만큼 파업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24년 2월부터 의정갈등으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인생을 내던졌지만 수련 및 교육 현장이 붕괴되는 등 고통만 더 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료계의 한 인사는 "지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해 투쟁에 나섰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이번에 또다시 총대를 멜지는 미지수"라며 "2024년과 같은 집단 휴학이나 전공의 집단 사직이 이번에도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설령 파업을 선언한다고 해도 참여율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보정심 위원인 김택우 회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의대 증원 규모로 연평균 350명이라는 수정 의견을 제시한 것을 놓고도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연평균 350명 증원 의견은 상임이사회에서 조차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합의도 없었다"며 "김택우 회장의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직의(페이닥터)들은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 이후 김택우 의협회장의 책임론을 꺼내들며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료계에 따르면 김택우 회장은 의협 내부 회의 과정에서 "조만간 발표될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를 전공의와 회원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경우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 산하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성명을 내고 "지금 수준의 의협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의료계에 훨씬 득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 회원들의 판단"이라며 "안이한 대처로 파국적 결과를 야기한 의협 집행부는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전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비과학적이고 독선적인 정부의 행태와 사실상 결과가 예견됐음에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않아 이 같은 결과나 나왔다"며 "의협 집행부는 퇴진해야 하고, 의협 조직은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을 통해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내년에만 490명 증원이지, 이후에는 800명대까지 증원하는 정부 결정에 대해 미리 예견 하지 못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신뢰할 수 없고 앞으로 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투쟁 방안으로 '주 5일 40시간 준법투쟁'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 2027학년도 재학생 수는 여기에서 더 증원을 하지 않더라고 보정심에서 판단기준으로 삼은 최대 증원 규모를 넘어서기 때문에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교원, 유급학생 및 건물, 시설 및 제반 교육에 필요한 사항등을 감안하면 더더욱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어렵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