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소득 3만 달러 덫’에 갇힌 만성 저성장, 규제 풀고 경제 체질 개선해야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3만 6,000달러대에 간신히 턱걸이할 것으로 추산됐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점을 찍은 고환율과 장기 저성장이 겹치면서 받아들이게 된 씁쓸한 경제 성적표다. 지난 1월 11일 재정경제부·한국은행·국가데이터처 등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1인당 GDP는 3만 6,107달러로 전년 3만 6,223달러보다 0.3%(116달러)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GDP 감소는 3년 만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 1월 9일 열린 ‘2026년 경제성장 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발표한 지난해 경상성장률 전망치(명목 GDP 기준 3.8%)를 토대로 산출한 지난해 명목 GDP에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1,422.16원)을 대입한 뒤 국가데이터처가 밝힌 장래 인구 추계의 총인구(5,168만 4,564명)로 나눈 값이다.
이런 결과 22년 만에 대만의 3만 8,748달러에 역전당했고, 2023년 추월에 성공했던 일본과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작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사상 처음으로 1,400원대를 돌파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만큼 심각한 구조적 저성장 영향이 크다. 2025년 한국의 달러 환산 명목 GDP는 전년보다 0.5% 감소한 1조 8,662억 달러로 추산됐다. 명목 GDP가 줄어든 건 2022년 1조 7,987억 달러 이후 3년 만이다. 이에 따라 1인당 GDP도 3만 6,107달러로 둘 다 2022년 이후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1%에 그친 경제 성장률과 전년보다 1달러당 58원 상승한 연평균 1,422원의 원·달러 고환율 영향이 컸다. 이에 비해 경제가 7.37% 성장하고, 화폐가치도 안정됐던 대만의 작년 1인당 GDP는 3만 8,748달러로 높아졌다. 2003년 한국이 대만을 처음 추월한 후 22년 만에 다시 순위가 역전됐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벽도 대만이 먼저 돌파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94년 1만 달러 벽을 돌파한 뒤 11년 만인 2005년 2만 달러, 그 후 9년 만인 2014년 3만 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이후 12년간 3만 달러대의 덫에 갇혀 있다. 이후 2018년 3만 5,359달러까지 늘었지만,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2년 연속 감소해 2020년 3만 3,652달러로 줄었다. 2021년에는 팬데믹 극복을 위한 경기 부양책과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수출 호조 등으로 3만 7,503달러로 반짝 증가했지만, 2022년 물가 상승·금리 인상 등에 따라 3만 4,810달러로 다시 감소했다. 2023년에는 3만 5,682달러, 2024년 3만 6,223달러에 이어 지난해 1인당 GDP는 3만 6,107달러에 이르렀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 예상치는 1.0%로 2020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렇듯 한국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상대로 대만의 추월도 현실화할 전망이다. IMF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1인당 GDP가 2024년 세계 34위에서 2025년 37위로 주저앉고, 대만은 38위에서 35위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대만 통계청이 전망한 2025년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 8,748달러다. 예상대로라면 한국은 지난 2003년 1만 5,211달러로 대만의 1만 441달러를 제친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에 역전을 허용한다. 1인당 GDP 순위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인구에 있다. 대만(약 2,340만 명)보다 인구가 2.2배 많은 한국은 순위 싸움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순위가 뒤졌다는 사실보다는 대만의 1인당 GDP 상승이 탄탄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반도체 슈퍼사이클(Super Cycle │ 장기적인 상승 추세)’에 올라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보유하고도 잠재성장률(2.0%)에 현저히 못 미치는 저성장(1%)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 선두권의 대표 기업과 나머지 대다수 기업의 성장세와 실적이 점점 더 벌어지는 ‘K자형 양극화 성장’이 심화한 탓이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6배나 되는데도, 혁신·벤처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은 상태도 올해까지 4년 연속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대만 경제 상승세는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를 앞세운 수출 호조가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대만 수출액은 6,407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4년보다 34.9%나 급증했다. 규모로는 한국도 역대 최대치(7,097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연간 수출 증가액만 보면 대만(1,658억 달러)이 한국(261억 달러)을 압도한다. 이에 따라 한국 수출액 대비 대만 수출액 비중도 2024년 69.5%에서 2025년 90.3%까지 커졌다. 대만의 경제 규모가 한국의 절반 정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만의 약진은 더 두드러진다.
잠재성장률 추락의 원인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저출생·고령화와 낮은 생산성, 과도한 규제로 인한 기업 위축,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경직성, 분배에 치중한 재정 운용 등 전문가들이 수도 없이 지적해 온 해묵은 문제들이다. 저출생·고령화 같은 구조적 요인은 단기간에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둘 풀어나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반기업 규제를 걷어내고 투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만 한다.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기 위한 교육 개혁도 화급하다. 정부는 최근 잠재성장률 반등 의지를 담아 올해 성장률 전망을 1.8%에서 2.0%로 높여 잡았다. 이를 위해 8.1% 증가한 727조 9,000억 원의 슈퍼예산과 수십조 원의 정책금융·민간자금을 풀겠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허약한 경제 체질은 놔두고 돈만 퍼부어선 성장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구조 조정을 통해 돈과 인재가 생산적 분야로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성장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 무엇보다 화급한 급선무(急先務)다. 그러지 않고서는 1인당 GDP 3만 달러대 함정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1인당 GDP 4만 달러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요원(遼遠)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고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3050 클럽’의 선진국 여섯 나라는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올라서는 데 평균 4년도 걸리지 않았다. 영국이 2년, 일본·프랑스·이탈리아가 3년, 독일이 4년 만에 4만 달러의 벽을 돌파했다. 대만도 2021년 3만달러를 돌파한 지 5년 만인 올해 4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지난달 말 제시한 대만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4.0%로 집계됐다. 지난해 8월 15일 3만 8,066달러를 예상한 뒤 석 달 만에 700달러가량 더 높였다. 이에 따라 대만 통계청은 2026년 1인당 GDP를 4만 921달러로 예상했다. 한국보다 먼저 4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원화 가치가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정부 전망대로 성장하는 경우 한국의 올해 1인당 GDP는 3만 7,932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보다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한국만 유독 만성적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형국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은 기득권층의 반발이 두려워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구조 개혁을 계속 미뤄만 왔다. 그런 사이 2000년대 초반 5%대에 이르던 잠재성장률은 1%대 후반까지 추락했다. 정부는 성장을 중시하겠다지만 노동·규제 개혁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인기 없는 구조 개혁보다 재정 확장을 통한 돈 풀기 같은 단기 처방에 치우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1일 2026년 붉은 말의 병오년(丙午年) 신년사를 통해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다.”라며, 대한민국 경제 대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라면서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이라며, 과거의 성공 공식을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5대 대전환’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라며,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겠다.”라고 밝혔다.
역대 정부마다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해 왔는데, 이번 정부에선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데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재정경제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국가전략산업 육성, 초 혁신 경제 구현, 인적 자본 극대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과 재도약의 갈림길에 선 중대한 변곡점에서 정부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성장 ‘총력전’에 나서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관건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에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기업의 투자 전략 등 최근 대만의 상승세에 깔린 긍정적인 요인들을 촘촘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최우선으로 과감한 규제 혁신부터 서둘러야 함은 물론 전략산업 육성과 양극화 완화에 총력 경주해야만 한다.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어떤 성장전략도 공허한 구호로 전락 될 수밖에 없음을 각별 명심하고 12년째 ‘소득 3만 달러 덫’ 갇힌 만성 저성장에서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규제를 과감히 풀고 경제 체질을 서둘러 개선하는 실행으로 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