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불 수출의 명암…반도체에 가려진 ‘기초 체력 부족’

반도체 비중 2020년 19.4%…올해 11월 28.3% 비반도체 수출 2022년 정점 이후 꾸준히 하락 ‘특정 품목 의존 강화 위험’ 중론…“다각화해야” 정부, 석유화학·철강 등 구조적 위기 업종 지원

2025-12-21     박두식 기자
▲ 경기 평택항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뉴시스

올해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최초로 70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천명하면서 통상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반도체가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면서 호조세를 보인 덕이 크다.

하지만 화려한 결과의 안쪽을 보다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수출의 체력 수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체 수출이 7000억 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총량’ 성과에만 주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의 존재감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지난 2020년 전체 수출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19.35%였다.

2023년에는 반도체가 크게 부진하며 반도체 비중이 15.6%로 감소했으나 지난해에는 20.76%로 확대됐다. 2023년을 제외하면 최근 5년 동안 19~20%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올해 들어 흐름은 달라졌다. 1월 반도체 비중은 20.59%이었으나 5월 24.09%로 껑충 뛰더니 지난해에는 28.27%까지 치솟았다. 반도체 의존형 수출 구조가 빠르게 굳어지는 양상이다.

여기서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비반도체 수출도 성장하고 있는데 반도체 수출이 더욱 빠르게 성장해 비중이 늘어나는 경우와,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을 이끄는 사이 비(非)반도체 수출이 침체를 겪고 있는 경우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비반도체 수출은 4136억7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2021년에는 5164억2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5000억 달러를 넘겼고, 2022년에는 5547억1800만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비반도체 수출은 더 이상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지난해 5418억4300만 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올해 실적을 살펴봐도 하향세가 이어질 것이 유력하다. 올해 11월까지 비반도체 수출액은 약 4880억 달러 수준이다. 월별로 편차가 있긴 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이 500억 달러를 넘긴 적은 없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올해 비반도체 수출은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그려도 정체 수준에 그치고, 감소 추세를 보일 것이 유력하다.

수출의 품목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전체 수출이 특정 품목에 의존할수록 해당 산업의 업황 변화가 전체 수출 변동으로 직결될 위험이 커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큰 나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출 실적의 변동이 아니라 전체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진폭을 키우게 된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9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특정 분야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수출 시장·품목·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다각화해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안정적인 수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수출실적을 분석한 결과 수출품목이 1단위 늘어나면 수출 중단 위험은 1.2% 감소하고 수출액은 1.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도 수출 품목 다양화의 효과가 실제로 확인된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정감사 과정에서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은 고도화하고, 석유화학, 철강 등은 구조개편을 신속히 추진해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지속적인 수출 확대를 위해 수출 품목 다변화에 나서겠다고 한 바 있다.

산업부는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 산업의 생존력 확보를 위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마련했다.

경쟁력이 약화된 품목의 자율적 조정계획을 지원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기업의 선제투자를 촉진한다.

아울러 해외 수출장벽에 대응해 미국 관세 피해기업에 긴급 융자자금을 편성하고 4000억원 규모의 철강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과 1500억원 규모의 이차보전사업을 신설한다.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고부가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 등을 골자로 한 사업재편계획을 제출받고 있다. 사업재편 승인 기업은 세제지원, 상법 특례 등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은 분명 의미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수출 체력이 특정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취약점 역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반도체 업황과 글로벌 수요 변동에 따라 우리 수출 전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화려한 수출 기록뿐 아니라 수출의 건강함과 구조적 균형을 함께 살피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