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주4.5일제’ 시범사업…입법조사처 “생산성·임금 등 ‘핵심’은 빠져”
노동부, 11일 업무보고서 추진방향 밝혀…내년 시범사업 노사 입장 엇갈려…勞 “건강권” vs 경영계 “경쟁력 우려” ‘임금 삭감’ 없는 단축 가능할까…생산성·비용 정리 안 돼 입법조사처 “사회적 대화부터”…전문가들도 “시기상조”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내년 324억원을 투입해 주4.5일제를 시범 도입한다. 다만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이 가능한지, 노동생산성과 추가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지 등 핵심 쟁점이 정리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도 예산안에 주4.5일제 도입 시범사업 예산 324억원을 편성했다. 구체적으로 ▲워라밸+4.5 프로젝트 시범사업(276억원) ▲주4.5 특화컨설팅(17억원) ▲육아기 10시 출근제(31억원)이다.
주4.5일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부터 주40시간제(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20여년간 ‘1일 8시간, 주40시간’이 사실상 표준 근로시간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럼에도 실제 근로시간은 여전히 길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42시간을 웃돌고 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1일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업무보고에서 “연간 근로시간을 OECD 평균인 1700시간대로 줄여나가기 위해 자율적인 4.5일제 도입을 지원하겠다”며 “주5일제도 그림의 떡인 중소사업장의 경우는 공짜 야근 근절을 위해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하고 연차휴가 활성화를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사 반응은 엇갈린다.
노동계는 주4.5일제, 나아가 주4일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근거는 ‘건강권 보장’이다. 장시간 노동이 개인 건강을 해치고 결국 노동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해 ‘주4일제 네트워크’를 출범했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책 연대를 통해 주4일제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주4일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금융권을 중심으로 주4.5일제 시행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매주 금요일 1시간 일찍 퇴근하는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 시행에 우선 합의했다.
반면 경영계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제22대 국회 출범 당시 기업 200개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노사관계에 가장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입법으로 주4.5일제를 꼽았을 정도다.
경총은 올해 5월 대선을 앞두고서도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만 단축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유연근무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등 근로시간을 노사가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노사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여부와 노동생산성, 추가 비용 부담 등 핵심 전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제도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2일 발간한 ‘사회적 대화가 우선돼야 할 주4.5일제 도입’ 보고서에서 “제도 도입을 성급히 앞당기기보다 사회적 대화 기반을 차분히 갖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주4.5일제 도입 논의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의 가능성”이라고 강조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비용 증가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는 주4.5일제의 핵심 쟁점 중 하나임에도 현재 논의에서는 이러한 전제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으며 정책적 기대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경향도 존재한다”고 했다.
특히 “주5일제 도입 당시 공공부문은 복무 규정과 민원·행정서비스 제공시간을 단계적으로 조정했고, 민간에서도 휴일수당·연장근로 정산 방식, 토요근무 폐지에 따른 인력 운영, 유급휴일 부여 기준 등이 순차적으로 정비됐다”며 “주4.5일제 역시 근로시간 체계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만큼, 도입 논의에 앞서 관련 제도들이 어떻게 연동돼 있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점검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지금 당장 주4.5일 근무를 제도로 시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근로시간 제도는 근무일을 지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근무일을 단축하는 방식은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며 “공공서비스처럼 영업일·서비스일을 줄이면 기업 부담뿐 아니라 시민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어, 단순 축소가 아니라 대체 인력·교대제 보완·운영 유지 방안 같은 대안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