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후폭풍에 치솟는 체감물가, 비상등 켜고 특별 관리해야

2025-12-03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환율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고환율 흐름이 경제 생태계를 흔들고 체감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기름값은 국제유가가 내림세지만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입 물가는 지난 1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찍었다. 기업들은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달러 비축에 나섰다. 정부가 해외투자를 환율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치자, 국외 투자 규모가 서학개미들보다 더 큰 국민연금은 눈치를 보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 달 동안의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61.25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396.06원 대비 65.19원이나 상승했다. 평균 환율이 1,450원을 훌쩍 넘어 1,500원 선까지 넘보는 고공행진을 지속하며 고환율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국제유가의 하락에도 고환율로 상승하고 있다. 이날 휘발유와 경유는 1,746.87원과 1,663.21원을 기록하며 최근 3개월 사이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9월 최저가보다 87.6원과 133.72원 상승했다. 국제유가는 최근 3개월 동안 내림세에도 고환율 때문에 국내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치솟는 환율은 수입 물가를 통해서도 국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14일 발표한 ‘2025년 10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4.1% 오르며 7월(0.8%)부터 8월(0.3%), 9월(0.3%)에 이어 4개월 연속 상승했다. 전년 같은 달 대비로는 4.8% 올랐다. 농림수산품은 전월보다 2.8%, 공산품도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와 1차 금속제품 등을 중심으로 같은 시점 대비 4.1% 상승했다. 특히 10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8.17로 지난 9월(135.56)보다 1.9% 상승했다. 이는 지난 1월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전월 대비 1.9% 상승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간 원·달러 환율은 최대 약 2.4%까지 상승한 것으로 계산된다.

무엇보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2월 2일 발표한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7.20(2020=100)으로 전년 동월보다 2.4% 상승했다.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치 2%를 넘어선 것이다. 무엇보다 석유류가 5.9% 올랐다. 국제유가는 안정세지만, 고환율로 수입 가격이 오르고 유류세 인하 폭이 축소된 탓이다. 밥상·외식 물가와 직결되는 수입 쇠고기 값도 6.8% 올랐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5.6% 상승했으며 쌀(18.6%), 귤(26.5%), 사과(21.0%), 고등어(13.2%) 등의 가격이 상승했다. 특히 고환율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 연장 같은 대책에도 환율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날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0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치(1,394.97원)를 크게 웃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1%포인트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04%포인트 상승한다.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시차 등을 고려하면 고환율 후폭풍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무엇보다 국제 비교 잣대인 올해 달러 환산 국내총생산(GDP)이 뒷걸음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소득층과 중소기업들이 겪을 고통 역시 커지고 있다. 이달 시중은행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불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1월 30일 발표한 '2025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달러화 기준 명목 GDP는 1조 8,586억 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 1조 8,754억 달러보다 168억 달러(0.9%) 줄어든 것이다. 2023년 1조 8,448억 달러와 비교해도 2년간 138억 달러(0.7%) 늘어나는 데 그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IMF는 원화 기준 명목 GDP가 지난해 2,557조 원에서 올해 2,611조 원으로 2.1%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0.9%)에 물가 요인을 반영한 수치다. IMF가 평균 환율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 폭이 GDP 증가분을 압도하면서 달러 환산액은 되레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원화 약세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의 명목 GDP가 내년 1조 9,366억 달러, 2027년 2조 170억 달러, 2028년 2조 997억 달러, 2029년 2조 1,848억 달러 등으로 매년 4.1%씩 증가할 것이라는 IMF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된다. 내후년으로 예상되는 1인당 GDP 4만 달러 달성도 그만큼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달러를 포함한 환율이 전방위로 오르면서 외화 결제와 투자에 익숙한 20, 30대는 더 큰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해외 직구·여행 등 소비에서 외화 비중이 높고 달러 예금, 미국 주식 등 해외투자도 활발한 이들이 이른바 ‘달고나(달러에 고통받는 나)’ 세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고환율로 고물가가 이어지면 가계의 실질소득을 깎아내리고 원재료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의 수익성 역시 악화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 지수는 두 달째 2.5%를 기록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부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를 유발한다. 이는 또 소비자물가로 이어져 악순환을 만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월 27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가면 금융 안정을 걱정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외환시장에 불안은 없다,”라면서도 “금융 안정의 문제가 아니고 고환율로 인해 물가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우려가 된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1월 2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37억 4,400만 달러로 지난달 말 443억 2,500만 달러보다 약 94억 1,900만 달러(21%) 늘었다. 달러 예금은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적립해 뒀다가 출금하거나 만기가 됐을 때 원화로 돌려받는 금융상품으로, 달러 예금 잔액은 통상 환율이 오르면 차익 실현에 나서려는 탓에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는데도 달러 예금을 쌓아두려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달러를 더 쌓아두려는 분위기는 기업에서뿐 아니라 개인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27일 기준 개인이 보유한 달러 예금 잔액은 122억 5,300만 달러로 8월 말(116억 1,800만 달러)부터 4개월 연속 소폭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선 경기 부양을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불가능하다. 고환율·고물가의 악순환 고리를 조기에 끊지 못하면 민생도 경제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는 지난 12월 2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식품·사료 원료의 할당관세 지원을 지속하기로 하고,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 용량 꼼수)’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꼼수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유권해석을 통해 메뉴판에 닭고기의 조리 전 총중량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오는 12월 15일부터 오프라인 매장과 배달앱 등에서 메뉴판 가격 옆에 치킨의 조리 전 총중량을 그램(g) 혹은 ‘호’ 단위(한 마리 단위로 조리할 경우)로 표시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포장주문을 받는 경우에도 중량을 밝혀야 한다. 현재는 치킨 전문점을 포함한 외식 분야에는 중량 표시제가 도입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서민들은 당장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는 비상등을 켜고 특별 관리를 통해 소비자 피부에 와닿는 물가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