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착시 속 생산·투자 급감, 기업 심리 위축 없애야 성장률 회복
생산·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반도체 변수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불안 증세를 보이는 가운데, 지난달 생산지표는 감소(2.5%↓)했고, 투자 지표도 대폭 감소(14.1%↓)했으며, 소비지표만 증가(3.5%↑)했다. 특히 생산지표 감소는 글로벌 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가 전월 ‘인공지능(AI) 호황’을 누린 데 따른 기저효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생산이 주춤해지게 되자 설비투자 역시 덩달아 감소하며 큰 폭으로 위축됐다.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품목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1월 28일 발표한 ‘2025년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全)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2.5% 감소해 2020년 2월 마이너스(-) 2.9% 이후 5년 8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전산업 생산은 공공행정(1.5%)에서 생산이 늘었으나 광공업(-4.0%), 건설업(-20.9%), 서비스업(-0.6%)에서 생산이 줄어 전월 대비 감소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반도체 기저효과’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한 달 전 9월 지표가 워낙 좋았던 데다가 가격 상승까지 맞물려 10월 반도체 생산이 26.5% 급감한 것이 산업생산을 끌어내렸다는 정부의 설명이다. 여기에다 긴 추석 연휴까지 맞물려 설비투자는 14.1% 위축됐다. 건설기성은 역대 최대 폭인 20.9%나 급감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전체적으로는 견조(堅調)한 흐름”이라며 낙관적인 경기 진단을 견지(堅持)하는 입장이다.
최근 산업생산은 올해 8월 마이너스(-) 0.3% 이후 9월 플러스(+) 1.3%를 기록하며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반도체가 생산지표를 끌어 내렸다. 전월 대비 26.5% 급감하며 1982년 10월(-33.3%) 이후 무려 43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AI 열풍 등으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늘어나는 것과 별개로, 9월 생산(19.6%) 급증에 따른 기저효과로 지난달 낙폭이 커졌다. 반도체를 뺀 광공업 생산은 1.1% 늘었다. 결국 반도체 생산이 급감하며 투자도 위축됐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등 기계류(-12.2%)와 운송장비(-18.4%) 등이 크게 줄며 전월 대비 14.1% 급감한 것이다. 건설기성도 건축(-23.0%), 토목(-15.1%) 모두 줄며 20.9% 감소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7년 7월 이후로 최대 감소다.
하지만 ‘기저효과’로만 치부하기에는 불안 요인이 너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반도체만 바라보는 취약한 경제구조 속에서 날로 커져만 가는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46개월 연속 경기 부진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은 반도체 관련 업종과 나머지 업종에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11월 28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다음 달 BSI 전망치는 98.7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BSI는 경기에 대한 기업들의 판단과 예측을 지수화한 것인데 기준선(100)을 넘으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넘지 못하면 부정적으로 판단·예측한다는 뜻이다. 국내외 기관들의 잇따른 성장률 개선 전망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착시’를 걷어내면 우리 제조업은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을 1.8%로 상향하면서도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을 1.4%로 본 것은 반도체 ‘외 날개’에 기댄 경기 개선이 언제든 모래성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27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0%로, 내년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처음 제시한 2027년 성장률 전망치는 1.9%였다. 12·3 내란 사태 여파 등으로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0.2%)까지 기록할 만큼 가라앉았던 우리 경제는 2분기 0.6%, 3분기 1.2% 등으로 차츰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8년 만에 가장 높아지고 기업심리지수(CBSI)도 92.1로 2024년 10월(92.5)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등 경제주체들 전망도 낙관적이다. 기업실사지수(CBSI)에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반영한 경제심리지수(ESI)는 10월보다 0.3포인트 낮은 94.1을 보였다. 경제심리지수는 기업과 소비자 등 모든 민간 경제주체의 경제 심리를 보여주는 지수다. 수치가 100을 넘으면 경기가 나아졌다는 평가로 해석된다. 비록 올해부터 내후년까지 3년 연속 1%대 성장률에 머무는 점은 아쉽지만, 내년부터 잠재성장률(1.8%)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환율과 집값이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특히 문제다. 원·달러 환율은 이제 1.450원이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고착화(固着化)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오후 3시 30분) 종가보다 2.9원 오른 1,468.5원으로 상승 출발해 개장 직후 1,469.8원까지 올랐으나 차츰 상승 폭을 줄이더니 오전 9시 43분쯤 하락 전환했다 등락을 반복하면서 1,460.6원까지 내려간 원·달러 환율은 마감 전 하락 폭을 줄여 전날 종가보다 0.7원 빠진 1,464.9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말했듯 금융위기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과 그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가 문제다. 또 10·15 대책 시행 이후 서울 아파트값의 상승 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고, 집값 상승 기대감도 여전히 높다. 이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0%로 4연속 동결한 것도, 금리 인하가 환율과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두 변수가 회복세를 보이는 거시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외환 당국은 최근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환율 변동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외환시장 안정성과 국민연금 수익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교한 방안을 강구하기를 바란다. 대출 규제와 공급 확대 등 기존에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차질 없이 시행해 나가는 한편, 시장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 추가 대책의 필요여부도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난 11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2.50%)에서 유지하여 통화 정책을 운용하기로 동결하면서 남긴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 지난 1년간 유지했던 “향후 통화정책은 성장의 하방리스크 완화를 위한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 나가되”라는 표현을 대신해 “향후 통화정책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 두되”로 바뀐 점과 경기 회복세에 따라 경기 부양 필요성이 약해진 점 등을 근거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기조가 바뀌면, 시중금리, 주가, 부동산, 환율 등의 방향 역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가계나 기업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정적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위축되고 웅크려 있는 기업 심리부터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 투자가 살아나고 내수·수출 동반 회복, 기업 수익 확대, 경제 성장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업을 옥죄는 법과 제도를 밀어붙일 상황이 결코 아니다. 반도체 호황의 그늘에서 우리 제조업 위기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에 중국은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기술력을 강화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제조업 지배력을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27일 공개한 ‘최근 중국의 수출국 다변화 가속화 현상 평가’ 보고서에서 “미국 관세정책이 완화하더라도 미·중 경쟁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도 중국은 수출국 다변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수출국 다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대(對)미국 수출 감소를 완충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신흥시장 등 미국 외 국가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의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우리의 10대 수출 업종 경쟁력이 5년 뒤 모두 중국에 역전될 것이라는 산업계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