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G20서 ‘자유무역·다자외교’ 복원 강조 ‘무역전쟁 속 경제·외교 지형 확대’
이재명 대통령은 7박10일간의 G20·중동 순방을 통해 K-방산의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며 시장 공략을 위한 세일즈 외교에 공을 들였다. 실용외교 지평을 확대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기 위한 외교에도 적극 나섰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다자무역체제 기능 회복 등을 강조하며 글로벌 책임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23일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차 남아공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튀르키예도 방문해 별도의 양자회담을 진행했다.
UAE, 이집트, 튀르키예 등 3개국은 모두 중동을 기반으로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핵심 거점이자 지역 맹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이 중동·아프리카 지역 순방에 나선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뜻하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지역 공략에 시동을 건 셈이다.
관심을 끈 협력 분야는 방위 산업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중동 무기 수출 규모는 2019년 2억 4106만 달러(약 3550억 원)에서 지난해 7억 4748만 달러로 3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무기 수입에서 미주 비중은 77.1%에서 52.2%로 하락한 반면 아시아 비중은 9.5%에서 18.3%로 상승했다. 중동 지역이 무기 공급처를 다변화하면서 아시아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가장 먼저 찾은 UAE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심화시키는 ‘100년 동행을 위한 새로운 도약’이라는 이름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UAE는 중동 지역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다.
양국 정상은 공동 선언문에서 “방위산업 및 방산기술, 인공지능·양자 등 첨단 신기술, 원자력, 공공보건 및 의료, 식량안보, 문화교류 등 주요 전략 분야에서 미래 지향적 협력구조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방산 협력 강화다. 국방·방산 분야에선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공동 개발과 현지 생산, 기술 이전, 제3국 공동 진출을 포함한 ‘확장형 수출 전략’을 가동해 협력 수준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이를 통해 150억달러(약 22조원) 이상의 방산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UAE는 중동에서 최초로 국산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천궁Ⅱ를 도입한 국가로 최근에는 한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도입 등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또 원전 사업에선 한국의 첫 해외 수주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을 사례로 세계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을 모색하기로 하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선 한국 정부와 기업이 UAE AI 대규모 데이터센터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두 번째로 찾은 이집트에서도 ‘K-방산’ 세일즈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공동 언론발표에서 “저는 K-방산이 전 세계로부터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K-9 자주포 공동생산으로 대표되는 양국 방산 협력이 앞으로 FA-50 고등훈련기 및 천검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알시시 대통령은 한국의 높은 방산 기술력에 대해 신뢰하며, 공동생산 등 호혜적 협력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알시시 대통령은 3~4조원 규모의 카이로 공항 확장 공사의 협력도 언급했다.
두 나라 정상은 회담을 통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세파)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통상 협정의 하나로, 관세 인하를 넘어 양국 간 상품・서비스·지식재산권·인력 교류까지 포괄하는 경제 협력 제도다.
마지막 순방지인 튀르키예에서는 양국의 포괄적 협력을 아우르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방산과 인프라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국의 튀르키예 제2원전 사업 참여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 양국은 원자력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튀르키예 시노프 제2원전 사업에서 원자로 기술과 용지 평가, 규제·인허가, 금융·사업 모델 설계 등과 관련해 공동 워킹그룹을 구성하게 된다. 방산 분야와 관련해서는 공동 생산, 기술 협력, 훈련 교류 등을 통해 협력하기로 했다. 다만 방산 협력 MOU는 맺어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중동 순방 기간 카이로 대학에서 정부의 대중동 구상인 ‘SHINE(샤인)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기도 했다. 안정(Stability), 조화(Harmony), 혁신(Innovation), 네트워크(Network), 교육(Education)의 영어단어 앞 글자를 따 명명했는데, 평화와 번영, 문화를 토대로 중동과 한반도가 상생하는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남아공 G20 정상회의는 이 대통령이 동참한 올해 마지막 다자외교 무대였다. 이번 G20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는 첫 회의로 이 대통령은 우리 외교 지평을 아프리카 등으로 넓히는 계기로 활용했다.
G20은 주요 7개국(G7)과 브릭스(BRICS), 우리나라를 비롯한 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가 속한 믹타(MIKTA), 사우디·아르헨티나·유럽연합·아프리카연합 등 21개 회원이 참여 중이며 국제경제협력 최상위 포럼으로 불린다.
회의에선 다자주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G20 정상선언’이 채택됐다. 미중 무역분쟁 등 강대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다자무역·다자외교’를 위한 협력을 역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다자무역체제의 복원’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 회복과 국제 연대를 통한 해법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1999년 G20 회의 창설 이래 미-중-러 3개국 정상이 모두 불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G20에 불참한 가운데 이 대통령이 다자무역체제 기능 회복을 강조했다.
주요국 정상이 불참한 상황에서도 이 대통령이 G20에 공을 들인 건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다변화·다각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G20 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주도하는 중견 5개국 협의체 ‘믹타’ 소속국 정상들과 회동하고, 프랑스, 독일과 첫 양자회담도 열어 양국 간 협력 증진에도 나섰다. 회의 중간에는 인도·브라질·일본·중국 정상 및 고위급과 만나며 스킨십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