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94억 챙긴 캄보디아 거점 사기조직 54명 검거…18명 구속

"공모주 정보 이용해 단기간에 고수익 보장" 중국인 총책 밑에 위계질서 갖추고 분업화

2025-11-06     류효나 기자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최재호 계장이 6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캄보디아 거점 사기조직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공모주 정보로 단기간에 고수익 보장한다' '원금을 보장한다'며 해외 금융회사 투자 전문가라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캄보디아 거점 사기조직 일당을 검거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6일 형법(사기, 범죄단체 등의 조직),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사기),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한국인 관리책 A(37)씨와 팀장 2명 등 다국적 조직원 54명(캄보디아 콜센터 활동 31명, 국내 자금세탁 활동 23명)을 검거하고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중 18명이 구속됐다.

경찰은 또 피해신고 전 범행에 사용되는 대포통장을 부정계좌로 등록해 2억3000만원의 피해금 출금을 막았다. 검거 인원 외에도 해외 체류 중인 17명에 대해 여권을 무효화하고 지명수배와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를 했다고도 밝혔다.

이들은 중국인 총책 밑에서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 사이 229명으로부터 194억원을 속여 뺏은 혐의를 받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수익 투자처가 있다는 광고글을 게시하고 관심 보이는 사람들을 단체채팅방으로 유도했다. 이후 '바람잡이' 공범이 투자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투자전문가 사칭범'이 종목 분석 상담을 해주며 신뢰를 쌓았다.

피의자들을 믿게 된 피해자가 투자 의사를 비치면, 공식 앱 마켓에 등록한 가짜 주식매매앱(HTS) 설치를 유도하고 투자금 송금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투자에 성공했다며 소액을 돌려주거나, 앱에 수익이 발생한 듯 조작된 결과를 표시하기도 했다.

더 큰 수익을 약속하며 투자 확대를 권한 뒤 충분한 금액이 모이면 앱을 삭제하고 연락을 끊는 '돼지도살 수법'이다. 이 모든 과정은 매뉴얼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된 것으로 드러났다.

나이·직업과 상관없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한 피해자는 "전문가라고 해서 믿었는데 아들 결혼 자금으로 마련해 둔 3억3000만원을 모두 잃었다"고 진술했다. 퇴직금, 노후자금, 자녀 교육비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피해자들을 나이별로 보면 ▲20~30대 22명 ▲30~40대 45명 ▲40~50대 111명 ▲50대 이상 51명이다. 직업별로는 ▲회사원 65명 ▲자영업 30명 ▲기타 134명이다.

조직은 범죄수익금을 여러 번 이체(롤링)하고 코인으로 세탁해 추적을 어렵게 했다. 이들은 대포통장에 입금된 돈을 자금세탁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 명의 계좌로 분산 이체해, 고액권 자기앞수표로 출금했다. 이후 상품권 구매 목적이라며 현금으로 재교환하고, 장외 거래(OTC)로 범죄수익금을 코인으로 바꿨다.

뿐만 아니라 3개월 단위로 바꿔가며 4개 유명 해외 금융회사로 속여 범행을 지속했다. 2개월 가량 범행을 저지르고 다음 범행을 준비하는 식이었다.

보안에도 신경 썼다. 조직 내에서 서로 가명을 사용하고 외국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 수사망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사무실과 숙소는 카지노 사업 등을 명목으로 캄보디아에서 리조트 전체를 대여해 사용했다. 인터넷이 빠른 캄보디아 국경에 자리 잡고 특정 회사를 사칭해 범행을 저지른 이후 해산 과정에서 캄보디아 내 알롱뱅, 오스마, 차이퉁 등지로 옮겨갔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 추적수사 끝에 이들이 ▲총책 아래 수직적 직급 질서와 ▲운영팀·콜센터·세탁팀·통장관리팀 등 분업 시스템을 갖추고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고 ▲사칭 회사명을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허위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조직적·지능적으로 범행을 계획했음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직원 상당수는 여유로운 해외 근무와 인센티브 등으로 단기간에 고액 보수를 보장하는 데 현혹돼 자진 참여한 청년들이다. 검거 54명 중 20대가 29명, 30대가 15명이다.

피의자들은 불법성을 인식했으나 지리적 안정성, 익명성 등으로 수사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동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 유입경로는 ▲지인 28명 ▲인터넷 광고 17명 ▲현지(카지노 탕진) 3명 ▲기타(브로커) 2명이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이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같은 해 10월 공동조사팀을 꾸리고 한 달 뒤인 11월 24일 캄보디아에서 2명을 검거했다. 2명은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인도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공조 수사도 빛났다. 올해 4월에는 고위 간부인 A(가명 승리)씨가 베트남 달랏에 체류하는 걸 확인하고 현지 경찰과 공조를 통해 지난 5월 24일 송환받아 구속했다. 결국 지난해 8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콜센터 팀장, 조직원, 자금세탁책 등 54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편, 경찰은 전국 어디서나 방식 제한 없이 지난달 16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국외 납치·감금 의심 및 피싱 범죄 특별자수·신고기간을 운영한다. 제보가 검거로 이어지면 최대 5억원까지 기존 2.5배인 보상금을 지급한다.

브리핑을 진행한 최재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3팀장은 "제보자 신원을 철저히 보호하고, 증거 부족만을 이유로 접수 거부를 하지 않는다"며 "자수자의 동기·제보 내용을 형사처분 참작 자료로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수익, 원금보장, 단기간 등을 내세워 SNS로 접촉해 오면 의심해야 한다"며 "구직자는 해외에 데려가 숙식을 제공하고 고액 연봉을 준다면 대부분 불법과 연결돼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