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돈 11억 뺏었는데 '무죄'…法 "보이스피싱에 속아, 고의 없어"
80대 지인에 약 11억원 송금받아 편취 장기간 보이스피싱 당해…기초연금도 조직에 송금 法 "'고의 없는 도구'로 이용돼…무죄 선고"
보이스피싱에 속아 지인에게서 11억원을 편취한 70대 남성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우현)는 지난달 1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전모(7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A(82)씨를 속여 채무 변제를 위한 사업 투자금 등 명목으로 2023년 8월부터 약 1년간 총 509회에 걸쳐 약 11억4978만원을 송금받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전씨는 A씨로부터 기존에 빌려준 전기차배터리 사업 투자금 명목의 돈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에 전씨는 "의(義)딸이 미군 대위인데, 예편해 귀국할 예정이다. 딸이 500만불을 한국에 보내려고 하는데 외교관 짐은 세관검사를 하지 않으니 외교관 짐으로 둔갑시켜 세관검사 없이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업무를 처리하는 통관사에게 비용을 보내야 하는데, 비용을 빌려주면 500만불을 받아 빌린 돈을 변제하고 그 돈 중 일부를 필요한 만큼 빌려주겠다"는 취지로 거짓말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계속해 "해외에 조성돼 있는 자금을 들여오려면 비용이 드는데, 모자라다. 돈을 빌려주면 그 자금을 들여온 후 채무를 면제하고 수익금을 주겠다" "한 쇼핑몰 관련 투자로 실제 수익을 올렸다. 같이 투자하자. 수익을 올리면 빌린 돈을 변제하고 수익금을 주겠다"며 A씨로부터 돈을 송금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전씨가 장기간 보이스피싱을 당해, 'A씨로부터 교부받은 돈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지급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지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상태'였다고 봤다.
따라서 A씨로부터 고의로 돈을 편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들은 것을 그대로 A씨에게 설명했으며, 같은 기간 아내나 친동생으로부터 받은 돈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기초연금까지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점을 들어 "전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피해자였음이 분명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또 보이스피싱 조직이 장기간에 걸쳐 교묘한 수법을 통해 전씨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씨가 조직원의 말을 믿고 해외에 자신 명의 자금이 존재한다는 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전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A씨의 재물을 편취함에 있어 '고의 없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기망행위를 당한 피해자 지위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돈을 편취한다는 범의를 새롭게 가지게 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