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42.9% 기준금리도 안 줘, 예대금리 속도·이자율 격차 줄여야
은행들이 최근 내놓은 신규 정기예금 10개 중 4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2.5%에도 못 미치는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7월 2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은행권을 향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길 바란다.”라고 ‘이자 장사’ 비판 뒤에도 기준금리 인하기에 은행권은 예금금리는 빨리, 대출금리는 천천히 낮춰 예대금리 격차가 1년 전보다 1%포인트 넘게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8일 ‘금융기관 가중 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예금은행이 새로 취급한 정기예금 가운데 42.9%는 기준금리(2.5%)를 하회(下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 구간별로는 ▷2.0% 이상∼2.5% 미만이 40.5%, ▷1.5% 이상∼2.0% 미만이 2.3%, ▷1.0% 이상∼1.5% 미만이 0.1%로 파악됐다. 정기예금 비중이 가장 큰 구간은 2.5% 이상∼3.0% 미만(56.6%)이었다. 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0%였던 지난해 12월에는 대부분(85.9%)이 기준금리를 상회(上廻)하는 3.0% 이상∼4.0% 미만의 금리였다. 당시 정기예금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돈 비중은 13.9%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기준금리에 못 미친 비중이 8개월 만에 3배로 불어난 셈이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정기예금의 1.8%만 금리가 기준금리 2.5%를 밑돌았지만, 올해 들어 8개월 만에 42.9%로 거의 절반이 기준금리 2.5% 아래로 떨어졌다.
한편 가계대출 금리는 올해 8월 기준 3.5% 이상∼4.0% 미만(47.1%)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12월에는 4.0% 이상∼4.5% 미만(41.9%)의 비중이 가장 컸다. 이는 지난해 12월 4.0% 대출금리 비중이 19%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낮아진 수치다. 당시 4.0%이상∼4.5%미만 구간이 64.3%였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대출금리 하락은 더딘 편이다. 은행들이 역대 최고 수준의 이자 수익을 내면서도 금융소비자들의 금리인하 요구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대출금리는 자금조달 금리(금융채 등), 대출기준 금리(코픽스 등), 가산금리(리스크·유동성·신용 프리미엄, 자본비용 등)로 구성된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대출금리도 하향 조정됐지만 가계대출과 예금금리 간 격차(예대금리 차이)는 더 벌어졌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 차는 평균 1.572%포인트로 지난해 8월 0.314%포인트 대비 1.231%포인트나 뛰었다. 은행권은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대체로 시중금리가 하락하지만 시장 기대나 자금 사정에 따라 금리 하락의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제’ 탓에 대출금리를 예금금리만큼 빠르게 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예대금리 속도와 이자율 격차를 서둘러 줄여야 할 것이다.
은행권은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대체로 시중금리가 하락하지만 시장 기대나 자금 사정에 따라 금리 하락의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장금리는 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수급, 경기 및 물가 전망, 은행의 유동성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라면서 “예금금리가 낮아진 현 상황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 등이 반영된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대출 총량제 등으로 은행들의 자금 수요가 낮아지는데 예금이 늘면 비용이 늘기 때문에 은행들은 예금 규모를 조정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이자 장사’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대출금리 인하 속도에 맞게 예금금리 속도 조정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에 은행들은 ‘잘됐다’라며 대출금리는 서서히 낮추는 모양새를 보인다. 문제는 이렇듯 예금금리가 낮아지면 부동산 투기 등으로 자금이 몰리는 경향이 우려된다. 게다가 기준금리 인하가 빠르게 예금금리에 반영되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이자 수익이 줄어들게 되며 예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채권형 상품이나 CMA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 반면 가계대출 금리는 예금금리 보다 더디게 낮아지고 있어 취약 서민층의 대출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579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은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 자에서 “이달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 … 이를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는 기록과 함께 처음으로 세계 문자사에 등장했다. 창제 이후 문제점들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3년 뒤인 1446년 9월(음력)에 완성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이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됐다(是月訓民正音成)”라는 기록을 근거로 반포 일로 기념하는 것이다. 한글날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 480돌인 1926년에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기념한 데서 유래한다. ‘가갸날’이란 명칭은 한글을 ‘가갸거겨...’라고 배우는 데서 비롯됐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명실상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손꼽힌다. 백성의 삶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정신은 조선시대 경제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고리대 성행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강력한 이자제한법을 펼쳤다고 전한다. 이보다 앞선 고려시대부터 대출 기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이자가 원금을 초과할 수 없다는 ‘일본일리(一本一利)’ 원칙이 존재했다. 세종대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원나라 법률과 명나라 법률(大明律)을 인용해 대출 이자율 상한을 제한했다. 나라에서 금지령을 내려도 고리대가 계속돼 백성들이 집을 잃고 직업까지 잃는 폐단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규제하는 조치를 명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1년(1429년) 4월 3일 기록에는 돈을 빌려줄 때 매달 받는 이자는 3푼(3%)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 14년(1432년) 3월 19일 기록에 따르면 한성부에서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는 때는“100일이면 원금의 갑절을 받는다.”라는 법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이를 폐지하고, 연이율은 원금의 10푼(10%)으로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나랏돈이라고 해서 월 이자를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지만 사채보다 낮아야 한다며, 월 이자는 최대 원금의 2푼(2%)까지만 허용하도록 했다. 조선시대 서민금융, 정책금융 제도였던 셈이다. 오늘날 금융권 특히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나 ‘이자 놀이’로 일컬어지는 금융정책이 과연 국민을 위한 금융정책인지 특히 서민을 위한 금융제도인지 찬찬히 반추하며 593년 전 세종대왕의 위민(爲民)정책과 애민(愛民) 정신을 곱씹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