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도 산업 전망 ‘빨간불’, 규제 완화와 투자 인센티브 강화 서둘러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제조업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 9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에 따르면 전국 제조기업 2,275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74로, 직전 분기보다 7포인트나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11포인트나 각각 하락한 수치다. 올해 2분기(79), 3분기(81)로 2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4분기 들어 다시 하락 전환했다. 대한상공회의소 BSI는 2021년 3분기부터 17분기 연속 기준치 100을 밑돌았다.
기업경기전망지수(BSI)가 100을 밑돌면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100 이상이면 해당 분기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어렵다고 본다. 모든 업종의 전망치가 기준치인 100을 넘지 못했다. 자동차는 일본·EU(유럽연합)보다 높은 관세율이 적용된 영향으로 전망치가 전 분기 대비 16포인트 떨어졌다. 건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비금속 광물, 철강, 석유화학 업종 전망치도 70선 이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경기 회복 기대를 높인 지난 7월의 생산·소비·투자 ‘트리플(Triple) 강세’가 불과 한 달 만에 ‘트리플(Triple) 약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이 지난 9월 30일 내놓은 ‘2025년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全) 산업생산지수는 제자리걸음 했고 설비투자도 1.1% 감소했다. 경기 회복 모멘텀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지표도 있긴 하다. 경기동행지수(0.2%포인트)와 경기후행지수(0.5%포인트)가 4개월 만에 동반 상승한 게 대표적이다.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생산이 2.4% 늘어난 점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13조 원에 달하는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지급에도 소매판매가 2.4%나 줄어 18개월 만에 최대 감소세로 돌아선 점은 참으로 뼈아프다. ‘내수 회복을 위한 마중물’이라며 적자국채를 발행해 거액을 투입했지만, 약발은 7월 한 달 반짝 효과에 그쳤다. 7월 말부터 풀린 1차 소비 쿠폰이 소진되지 않은 데다 지난주부터 2차 쿠폰 지급이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꽤나 실망스러운 성적표다. 증시가 6개월가량 급등하며 소비심리가 크게 개선된 상황에서 나타난 ‘소매 판매’ 부진이라 더욱 아쉽고 충격적이지만, 기실(其實) 예정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돈 풀기만으로는 소비를 근본적으로 진작시킬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과거 소비쿠폰을 남발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 시달린 데서 보듯 ‘쿠폰 주도 성장’의 한계가 선명해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모든 업종의 기업경기전망지수(BSI) 전망치가 기준선 아래로 떨어졌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대미(對美) 관세와 투자 협상 지연이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일본·유럽연합(EU)의 15%보다 불리한 25% 관세율이 적용되는 자동차(60)와 50%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철강(63)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의 소액 소포 면세 폐지로 화장품(69)은 전망치가 전 분기 대비 무려 44포인트나 추락했고, 제약·바이오(87) 역시 의약품 100% 관세 예고로 부정적 전망을 피하지 못했다. 반도체(98)와 식품(98)이 각각 인공지능(AI) 수요와 K푸드 수출 호조로 선방한 것이 그나마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0%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 추세다. 지난 7월 2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8%)을 크게 상회(上廻)하는 1.7배에 달한다. 독일(20.1%)과 일본(20.7%)보다 높다. GDP의 37%를 차지하는 수출 대부분이 제조업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상호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지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5일(현지 시각) 돌연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3,500억 달러는 선불(Up front)”이라고 못을 박고 압박 수위를 높이며 협상까지 지연돼 불확실성은 배가되고 있다. 투자 규모·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협상이 타결돼도 충격일 수밖에 없고, 불발돼 관세 폭탄을 맞아도 버티기 어려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누란지위(累卵之危) 상황이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 9월 30일 발간한 ‘지표로 보는 건설시장과 이슈(2025년 3분기)’ 보고서에 의하면 올 7월까지 발표된 건설 지표가 연간 뚜렷한 반등 없이 위축을 이어가며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5년 3분기 건설 및 주택 시장의 부진한 흐름과 4분기 전망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경기를 나타내는 선행 및 동행 지표 모두 약세를 보였으며, 하반기 이후 건설 수주와 착공 물량의 회복세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내년까지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선행지표의 경우 건설수주는 올 7월까지 작년 대비 1.0% 증가했으나 특정 시점 기준인 경상금액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감소했고, 건축허가면적과 착공면적도 같은 기간 16.5%와 12.8% 각각 줄었다. 동행지표는 건설기성이 18.6% 줄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기성은 진행 중인 공사 실적에 관한 지표로, 건설기업의 재무와 고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건설경기 활성화 정책 등으로 4분기 건설시장은 이전 대비 침체폭은 줄어들 것으로 보이나 착공 물량 감소 누적치 등을 고려하면 부진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9월 30일 발표한 ‘2025년 9월 아시아경제전망(Asian Development Outlook·ADO)’을 통해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각각 0.8%, 1.6%로 전망했다. 반면 대만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5.1%로 대폭 상향했다. 불과 두 달 전 3.5%에서 1.6%포인트나 끌어올린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0.8%에 머물며 아시아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미 1인당 GDP에서 22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이 ‘아시아 네 마리 용’ 가운데 가장 뒤처지는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성장의 동력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산업 구조 개편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받은 결과다. 반면 한국의 성장률 ADB 전망은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치 1.0%,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 0.9%보다도 낮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내수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됐지만, 수출 둔화와 건설 경기 부진, 미국의 추가 관세 가능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스스로 성장 동력을 복원하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동안 주력 제조업의 구조 개편과 신성장 산업 육성, 규제 혁파, 인재 유치 등 어느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결과로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ADB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한국의 건설투자 감소, 수출 둔화, 부동산 시장 약세 등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에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된 통화정책이 하반기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건설 경기 부진, 미국의 관세인상 등을 반영해 7월 전망치 0.8%를 유지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2025년과 2026년 모두 1.9%로, 지난 7월 전망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다. ADB는 한국의 경제 전망과 관련해 건설 경기 부진과 통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 기조가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월 대비 2.4%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2월(-3.5%)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며, 지난 4월(-0.9%) 이후 처음으로 감소로 돌아섰다. 소매판매가 감소로 돌아선 주된 원인은 1차 소비 쿠폰 기저효과, 늦은 추석 등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 7월 21일부터 지급된 1차 소비 쿠폰 효과에 7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2.7% 늘어났지만, 일시적 정책인 만큼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식 초장시간 근로인‘996 근로 문화(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젊은 창업자와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장시간 근무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 패권 경쟁에서 ‘더 오래, 더 치열하게’가 승리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우선 기술 발전의 속도가 압도적란 데 원인이 있어 보인다. AI나 반도체 같은 핵심 기술은 몇 달 사이에도 판도가 바뀌는 ‘군비 경쟁’ 국면에 있음을 유의해 봐야 할 것 같다. 젊은 인재들은 ‘오늘 멈추면 내일 도태된다’라는 위기감 속에 밤샘 근무를 한다. 이는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라고 한다. 알리바바와 화웨이, 테슬라와 페이스북의 성공을 보며 자란 중국과 미국의 20대 창업자들에게 장시간 근무는 ‘꿈을 위한 헌신’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각) 실리콘밸리에 열심히 일하는 ‘허슬 컬쳐(Hustle Culture)’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서‘996 근로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페이스북의 성장을 목격하고 10대 때부터 코딩을 했던 젊은 창업 세대는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비웃으며 24시간을 몰입해 일한다.”라고 전했다. 예전에는 중국 IT 업계에서 ‘996 근로 문화’를 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커지면서 2021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996 근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근로 시간은 줄어드는 추세다. NYT는 “스타트업 램프 게시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샌프란시스코에서 토요일 기업 신용카드 거래 비중이 전년 대비 늘었다.”라며 “이는 사람들이 주말에 더 많이 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연히 ‘996 근로 문화’가 옳다는 의미가 결단코 아니다.
우리 정부와 여권은 ‘노란봉투법(2·3조 개정 노조법)’ 강행에 이어 주 4.5일 근무제와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1차 「상법」 개정)와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임(2차 「상법」 개정)에 이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까지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 실천이란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와 함께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외 악재와 내부 규제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기업들이 얼마나 더 버티고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다. 더 늦기 전에 규제 완화와 투자 인센티브(Incentive) 부여를 대폭 강화하여 기업의 기를 살리는 정책적 전환이 절실히·시급히 필요하다. 한국 경제를 살릴 비책은 규제 혁파와 경기 부양으로 기업이 뛰게 하는 것뿐이다. 기업이 무너지면 주가 부양도, 근로 시간 감축 논의도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기업이 살아야만 인공지능(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이라는 이른바‘335 공약’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