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유치장 통·번역기 '효과'…외국인 피의자와 소통 문제없어
관내 외국인 많은 서울 마포경찰서 통·번역기 도입 "그간 바디랭귀지로 설명…업무 부담 대폭 줄었다"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난 몽골인 A씨는 최근 경찰의 수사 끝에 덜미가 잡혔다. A씨는 이후 유치장에 입감됐지만 울며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A씨에게 구체적인 범죄 혐의점과 향후 수사 절차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만, 몽골어 소통은 불가능했다.
원칙적으로 유치장은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어 경찰 공용폰 '폴리폰'에 내재된 인공지능(AI) 번역기 '파파고'를 활용해야 하는데, 기기가 오래돼 인터넷 사용이 불가하고, 오프라인 상태에서의 언어는 7개로 한정돼 있어 활용도가 낮다. 음성 인식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A씨 같은 외국인 피의자들에게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2일 유치장에 '실시간 AI 스마트 음성 번역기(이하 통·번역기)'를 도입했다. 최대 74개국 144개 언어를 통역할 수 있다.
비용은 1대당 33만원 수준이다.
마포서가 통·번역기를 도입한 곳은 유치장 외에도 경찰서 현관, 민원실 등 총 3곳이다.
그러나 현관이나 민원실은 유치장과 달리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이 공용폰에만 의지해야 하는 유치장이 통·번역기 도입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유치장 내 통·번역기 도입은 서울 일선서 최초 사례다.
현재 유치장은 통역 예산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경찰은 이 통·번역기를 활용해 혹시 모를 인권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긴급한 소통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내에 홍대 거리가 있는 서울 마포서는 유치장에 입감되는 피의자들 중 외국인이 많다. 많을 때는 15명의 피의자가 입감되는데, 10명 이상이 외국인인 경우도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검거하는 마약사범들도 서울 마포서 유치장에 입감되는데, 이중에도 외국인 수가 상당하다. 중국, 러시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국적도 다양하다.
그러나 경찰은 그동안 이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업무처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을 '바디랭귀지(몸짓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지난 19일 마포서에서 만난 수사과 유치관리팀 조민경(28) 경장은 "말이 통하지 않고 오로지 '파파고'에 의지해야 했던 상황이 불편했다"며 "공용폰 번역기는 음성인식 자체가 안돼서 사용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음성인식이 되지 않으면 키보드로 타이핑해 번역해야 하는데, 일부 언어는 전용 키보드가 없다.
최근 이 때문에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는 조 경장은 통·번역기가 도입되며 업무 부담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긴급체포나 현행범 체포한 경우 최대 48시간까지 유치장에서 구금하며 조사할 수 있는 점, 이후에는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최장 10일까지 구속될 수 있는 점 등을 간편하게 설명 가능했다.
경찰들의 업무 개선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방어권 보장에도 통·번역기가 큰 역할을 한다.
유치장 인원 수가 많으면 경찰관 1명당 5~7명을 맡게 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긴급한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씨 사례처럼 향후 수사 절차에 대해서도 제때 알기 어렵다.
유치인은 청문감사인권관과의 면담도 요청할 수 있는데, 실제로 외국인은 면담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청문감사인권관실 김준오(38) 경위는 "자기 변론은 최소한의 권리인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안된다"며 "외국인은 유치인 면담 사례가 적다. 애초 권리 주장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경위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이 인권"이라며 "불편한 것이 있다면 자유롭게 얘기할 권리도 있고, 그런 면에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설치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일선서에서도 앞서 이같은 불편함을 인지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한 경찰서에서는 컴퓨터에 듀얼 모니터를 연결하고, 파파고를 통해 헤드셋 마이크로 대화하는 방식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음성인식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언어 개수가 적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통·번역기가 이번 사례를 시작으로 전국 경찰서에 도입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국인 피의자 수는 최근 3년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3만954명이었던 외국인 피의자 수는 2023년 3만3052명, 2024년 3만5296명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