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세종, 법을 왕권강화 통치수단 삼지 않아"…사법개혁 간접 비판
대법원 주재 국제 콘퍼런스 9년 만에 개최 "세종대왕, 정의·공정한 사법 구현 의해 노력"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원 주재로 열린 국제행사에서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바탕에 둔 사법 철학을 강조하면서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았다"고 밝혔다. 대법관 증원, 내란재판부 구성 등 여당의 사법부 개혁을 간접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법원장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이번 콘퍼런스는 세종대왕의 숭고한 법사상을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지속 가능한 사법의 본질과,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행사돼야 할 사법권의 의미를 성찰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했다.
그는 "사법의 측면에서 볼 때 세종대왕은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민본사상'과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백성을 위한 정의롭고 공정한 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일된 법전을 편찬하고 백성들에게 법조문을 널리 알려 법을 알지 못해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며 "또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백성들이 억울함이 없도록 형사사건 처리 절차를 분명하게 기록하게 하고, 사건 처리가 장기간 지체되지 않도록 하며, 고문과 지나친 형벌을 제한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하셨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속 가능한 정의를 위한 사법의 길'이라는 1세션 주제를 소개하며 "백성을 중심에 둔 세종대왕의 사법 철학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법의 가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며 "이번 세션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법치와 사법 독립의 정신을 굳건히 지켜내고 정의와 공정이 살아 숨쉬는 미래를 함께 열어갈 지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평등의 길, 모두를 위한 사법'이라는 2세션에 대해선 "세종대왕께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엄격히 구분됐던 시대에서도 가장 낮은 계층인 노비에게까지 오늘날 수준과 유사한 출산휴가를 보장했다"며 "이와 같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세종대왕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실현했다"고 했다.
'인공지능(AI)와 사법의 미래'를 주제로 한 3세션과 관련해 "기술 의존으로 인한 판단 오류와 법적 책임의 불명확성, 판단의 공정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과 같은 도전적 과제 역시 직면하고 있다"며 "세계 각국 사법 영역에서 이뤄진 인공지능 활용의 다양한 사례와 성과를 폭넓게 공유하고, 정보 격차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해 인공지능을 통한 사법 접근성의 실질적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뜻깊은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혁신 기술의 보호와 사법의 역할’이라는 4세션에 관해 "오늘날 첨단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 창의성과 혁신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됐다"며 "기술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사법부가 제시하는 미래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는 2016년 이후 9년 만에 대법원이 주재하는 국제 행사다. 세종대왕의 법사상을 세계와 공유하고 법치주의의 미래와 사법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회의에는 싱가포르·일본·중국·필리핀·호주·그리스·이탈리아·라트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몽골·카자흐스탄 등 10여개 국가의 대법원장·대법관 및 국제형사재판소 전·현직 소장 등이 참석했다.
대법원은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국제교류·협력을 강화해 내년 9월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