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청년 채용’ 요청에 대기업들 호응, 청년실업 숨통 틔워내야

2025-09-21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극심한 내수 부진과 경기 한파가 장기화하면서 청년층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의 취업환경이 전례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복합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오늘은 우리 기업들에 특별한 요청을 드릴까 한다. 기업들이 예전엔 좋은 자원을 뽑아서 교육하고 훈련했는데, 요즘은 경력직만 뽑는다. 가혹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한다.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 노력도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지역 균형발전의 상

징적 지역인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청년 고용’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당부했다. 지역 균형발전의 성패가 청년 일자리에 달렸다고 보고, 이것은 민간 기업이 좌우한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기업들이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며. “‘팀 코리아’ 정신으로 통상의 파고를 정부와 힘을 합쳐서 극복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청년고용난이라는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데에도 정부와 함께 힘을 합쳐주길 부탁드린다.”라고 했다. 이는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은 ‘청년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라는 인식을 강력히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주요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을 늘려 달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힌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가 일자리도, 구직 의욕도 잃은 채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청년 실업은 갈수록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하고 있다. 벌써 16개월 연속으로 취업자 수가 줄고 있다. 지난달에도 건설경기 악화 등의 영향으로 청년 일자리 21만 9,000개가 사라졌다. 지난달 ‘구인 배수(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가 0.44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8월 0.26 이후 올해 5월 0.37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구인 배수는 신규 구직인원 대비 구인 인원 비율로,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0.44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0에 가까울수록 취직난, 1보다 크면 구인난이란 의미다. 지난 9월 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8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보험 상시가입자는 1,562만 7,000명으로 전년 동월 1,522만 5,000명 대비 18만 2,000명(1.2%↑) 증가했다. 가입자 증가세는 5개월 연속 18만 명대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였지만 ‘구인 배수’는 0.44로 전년 동월 0.54보다 0.1포인트 낮아져 1998년 8월(0.2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0일 발표한 ‘2025년 8월 고용동향’을 봐도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896만 7,000명으로 전년 동월 2,880만 1,000명보다 16만 6,000명(0.6%↑) 늘었지만, 증가세를 견인한 연령대는 60세 이상 고령층(40만 1,000명)이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357만 1,000명으로 전년 동월 378만 9,000명보다 21만 9,000명이나 줄어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일도 하지 않고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그냥 쉬었음’ 청년(15~29세)도 어느덧 44만 6,000명까지 늘었다. 그렇다고 하반기와 내년 고용시장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미국의 수입 관세 상향 압력 등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채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처럼 청년들이 겪고 있는 위기가 갈수록 거대화, 복합화, 일상화하는 가운데 파도처럼 연쇄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온다는 ‘블랙 타이드(Black tide)’ 시대를 맞고 있다.

유독 청년세대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은 경기 둔화로 제조·건설업 고용이 얼어붙은 데다 대기업들의 경력직 채용 선호로 대졸 신입 채용 문이 그만큼 좁아졌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대기업 10곳 중 6곳은 신규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62.5%는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한다. 모든 연령대 중에서 제조업과 건설업 부진과 ‘동조화’ 현상이 가장 뚜렷하다. 제조업 취업자는 14개월째, 건설업은 16개월째 감소세를 기록했다. 청년층 고용률은 지난 3월부터 60세 이상 고령층에 역전돼 6개월째 지속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취업 전쟁은 수도권에 집중됐다. 통계청의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을 보면 2007년부터 40~64세 중장년층은 수도권으로부터 순유출이 더 많은 데 반해 19~34세는 지난 2004년부터 계속 수도권 순유입이 더 많았다. 청년층 수도권 전입 이유는 ‘직업’이 압도적이었다. 또 1인 이동이 대부분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난 5월 9일 발간한‘지역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정책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3~2023년 취업자 수가 증가한 상위 20개 시·군 중 경기 수원·화성·용인 등 12곳이 청년들이 몰리는 수도권 신도시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이곳에서 증가한 취업자 수는 전체 46.8%에 달했다. 요컨대 청년들이 취업전선에서 제조·건설업 등 경기 부진과 경력직 및 고령층과의 일자리 경쟁, 수도권 ‘타향살이’의 험난한 생계 등에 포위를 당한 형국이다. 청년들은 비싼 주거비용을 물면서도 가족들과 떨어져 수도권에서 구직 경쟁에 나서지만 기술·숙련직은 경력직에 밀리고 단순·비정규직에선 고령층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각종 통계 지표에 그대로 나타난다. 청년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이재명 대통령의 우려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요청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청년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는 상황이 계속되면 세대 간 불평등 구도가 굳어진다. 내수 기반이 무너지고, 미래 성장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사회 진출도 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린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업들도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에 부응하고 나섰다. 지난 9월 18일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채용을 약속하는 등 일제히 고용 확대 계획 발표로 화답했다. 삼성은 앞으로 5년간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6만 명을 새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내년 채용을 1만 명으로 확대하고, SK그룹도 연말까지 상반기에 버금가는 4,000여 명을 더 채용해 올 채용 규모를 8,000명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한화는 상반기보다 1,400여 명 많은 3,500명을 하반기에 채용하고 포스코는 5년간 1만 5,000명을 뽑을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이 동시에 대규모 채용 계획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며 채용 규모도 근래 들어 가장 크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채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어려운 경제 사정 속이지만 그래도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은 대기업이 앞장서서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청년 채용이 이재명 정부의 정권 초기의 ‘일회성’ 성의 표시에 그치지 않으려면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유연화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한 번 뽑으면 내보내기 어렵다 보니 검증된 경력직 채용만 이뤄지는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풀어줘야 한다. 모처럼 대기업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즉답하고 나선 마당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기업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고 있고 연내 주4.5일제 입법화를 예고하는 등 외려 노동 경직성을 심화시키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고 세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일률적 정년 연장 카드까지 꺼내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과 의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새 정부의 혁신적 노동정책이 청년들에게 ‘일자리 장벽’이 되지 않도록 보완 대책과 속도 조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신규 채용을 계속 이어가 주길 바란다. 청년들에게 성장의 사다리가 될 양질의 일자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연령제한을 두는 곳은 많지 않지만, 취업 시기를 놓치고 시간이 흐를수록 취업은 더 어려워진다. 청년실업은 실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혼과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뿐만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누적되면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어나 사회문제화되고 범죄 증가와도 결단코 무관하지 않다.

청년 일자리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노동 규제를 풀어야만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을 지켜주고 있는 경직적 고용 제도를 청년 중심으로 바꿔야만 한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는 원하는 일자리 수준도 높다. 2024년 기준 한국의 25~34세 청년 10명 중 7명(70.6%)이 대학 등 고등교육을 마쳐 OECD 국가 중 이수율이 가장 높았다. 아무래도 처우가 낮은 중소기업보다는 연봉과 복지 혜택이 상대적으로 나은 대기업 취업을 바란다. 그래서 일부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데도 청년 실업자는 증가하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가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기 부진의 엉킨 실타래는 청년 고용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고용이 늘어야 수입이 늘고 소비가 살아나며 다시 기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어서다. 중소기업·비정규직과 대기업·정규직 간의 임금 및 고용 안정성 격차가 상당하고 칸막이까지 견고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는 한 번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이직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는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구조적 위기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대기업들이 동시에 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은 정부 요청에 따른 ‘억지 춘향’은 아닌지,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들이 정부의 채용 희망에 화답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이자 소망스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기업의 재정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채용 규모를 정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기업들은 청년 채용만이 아니라 정년 연장이라는 또 다른 부담이자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청년 일자리를 늘리면서 세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것도 걱정과 고민이 아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경영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알량한 기득권과 표독스러운 이기주의는 기업 운영에 독이 될 수 있음을 강성 노조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 경영을 이해하는 노동”이 필요한 이유다. 대기업들도 설령 정부 요청에 마지못해 채용인원을 늘렸다고 해도 이번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줄 수는 없으나 전체 청년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약속이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어려울 때 인재를 키워 놓으면 호경기가 됐을 때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신성장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고용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