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커 농민과 소비자 울리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서둘러야

2025-09-16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농산물 소비자 가격의 절반가량이 생산자가 받는 가격을 뺀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추·무 등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농산물의 유통비용이 무려 60~70%에 달한다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농사를 지은 힘없는 농민과 장바구니 부담에 시달리는 소비자만 손해를 보고, 유통업체는 수수료와 이윤을 과다하게 챙겨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형적 유통구조가 굳어졌다는 얘기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농산물 유통비용률은 49.2%로, 10년 전인 2013년 45.0%보다 4.2%포인트 높아졌다. 소비자가 1만 원을 내고 농산물을 샀다면 4,920원이 유통업체 몫으로 가는 셈이다.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10%포인트 넘게 뛰었다. 신선도 유지, 인건비 상승 등이 원인이라고 해도 소비자가 지불한 값의 절반 이상이 유통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결단코 정상이 아니다. 농산물의 비효율적 유통구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단계를 거치면서 물류비, 인건비, 포장비 등 각종 비용이 쌓이고, 불투명한 마진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자 가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장바구니 부담에 시달리는 이중 피해가 발생한다.

인건비와 물류비 상승도 요인이지만, 농산물 유통은 세금이 없어 ‘고무줄 가격’이라는 구조 속에서 유통업체의 이윤이 불투명하게 커졌다는 지적도 많다. 도매법인 – 중도매인 -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경매 중심 구조는 투명성이 낮고, 시장 지배력이 유통업체에만 쏠려 있다. 실제 농민이 손에 쥐는 몫은 통계보다 훨씬 적다. 땀의 대가가 정당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보고서에서 농산물 유통비용 상승을 언급하며 “영세한 생산 농가에 비해 도매업체나 소매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크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식료품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5배에 달한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듯, 유통구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정 과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온라인도매시장 확대, 경매 외에 정가·수의 매매제 도입, 거래 참여 기준 완화, 가격 정보 투명화 등 개혁 방향은 바람직하다. 유통 단계를 줄이고 가격 투명성을 높이는 시도는 반드시 도입이 필요한 시책이다. 하지만 거래 플랫폼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농민이 직접 유통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히고, 도매시장 과점 구조를 깨는 실질적 경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온라인 직거래 확대, 거래 투명성 강화, 과도한 유통 단계 축소가 함께 추진돼야만 한다. 아울러 세금 사각지대에 있는 유통 이윤에 대한 과세를 통해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농민 스스로 유통 역량을 키우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책을 내놓는 것도 필수다.

농산물 유통은 국민 밥상과 직결되고. ‘밥상 물가’는 국민 생활과 뗄 수 없는 민감한 문제다. 불필요한 중간 비용을 줄이고, 합리적인 이윤 구조를 확립해 생산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어야만 한다. 불합리한 구조를 방치한다면 ‘애그플레이션(Agflation │ 농산물 가격 급등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은 상시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유통개혁을 말이 아닌 실행으로 보여줘야 한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정부가 농산물 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돼 온 유통비용을 줄이기 위해 농산물 유통 구조 전면 개편에 나선다. 오는 2030년까지 유통비용을 10% 낮추고, 온라인도매시장 비중을 50%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배추, 사과 등 주요 품목의 도소매 가격 변동성도 절반 수준으로 완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9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아울러 도매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도매법인의 수수료를 낮추기로 했다. 기존 도매시장에도 성과평가 체계를 도입해 경쟁을 유도한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실적이 부진한 도매법인에 대해 지정 취소를 의무화하고, 수수료 체계를 개편한다. 현재 도매법인이 생산자로부터 받는 7% 수준의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이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영업이익을 높이는 경우는 다음 해 수수료 인하 또는 환급하는 방식이 검토된다. 또한 도매법인 평가 체계는 상대평가 및 계량화를 도입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도 신설한다. 아울러 도매법인의 수익 일부를 공공 목적에 활용하는 공익기금 조성 근거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 경매 중심의 거래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 반입 전 미리 가격·물량을 협의하는 예약형 정가·수의 매매 제도를 확대한다. 경매 제도는 반입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급변하는 문제가 있어, 보다 안정적 가격 형성을 위한 다양한 거래 방식 도입이 요구돼 왔다. 또한 생산자가 시장 상황을 실시간 반영해 출하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전자송품장 작성도 주요 품목에 대해 의무화될 예정이다. 유통구조 혁신의 핵심은 온라인도매시장의 본격적인 육성이다. 현재 전체 도매시장 거래의 6% 수준에 머무른 온라인 거래 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연간 거래 20억 원 이상 사업자 제한을 폐지하고, 바우처(Voucher │ 물류비·판촉비) 지원, 온라인 전문 셀러(Seller) 연계 사업, 농산물 유통 컨설팅 등의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

정부는 온라인 예약거래, 실시간 정가 거래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디지털 도매시장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소비지 직배송 체계 구축으로 물류 효율성도 함께 높일 계획이다. 산지 유통센터(APC)도 대폭 확대된다. 2030년까지 스마트 APC를 300개소까지 증가시켜, 집하, 선별, 세척, 포장, 저장 등 전 과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개선을 한다. 또한, AI 기반의 생산·유통 정보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품목별 최적화 모델을 현재 10개에서 45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기후 위기와 공급 불안에도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 및 유통 기반 구축하기 위해 과수·시설채소 중심의 스마트 생산단지를 2030년까지 120곳 조성할 예정이다. 기후 위기와 공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과수·시설채소 중심의 스마트 생산단지 120곳도 구축된다. 아울러 출하 조절 품목도 사과·배에서 노지채소로 확대하고, 정부 비축 능력도 강화한다. 소비자들에게도 다양한 가격·유통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제철 농산물 가격을 알 수 있는 대국민 모바일 앱도 내년 중 보급될 예정이며, 오는 2028년까지는 생산자 – 유통인 - 소비자를 아우르는 통합정보 플랫폼도 구축한다. 이를 통해 합리적 소비와 안정적 가격 형성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의 핵심 경로로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플랫폼에서 거래 체결 후 소비지로 직접 배송하는 온라인 거래 중심 유통구조로 개편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2023년 출범한 온라인도매시장의 연간 거래 규모가 올해 1조 원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오는 2030년까지 7조 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매시장과 이후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온라인도매시장 육성은 좋은 시도임엔 틀림이 없다. 현행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도매시장 중심의 법이라 생산자를 보호하는 기능이 약한데 차제에 이런 것도 손봐야 한다. 도매법인의 과도한 수익 방지를 위해 위탁 수수료율 조정·인하도 추진한다. 또한 도매법인의 공익적 역할 확대를 위해 물량 집중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락 시 농가가 운송비, 박스비 등 최소한의 출하 비용은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칭 ‘출하 가격 보전제’를 도매법인별로 도입한다. 출하 조절 품목도 사과·배에서 노지채소까지 확대한다. 소비자 지원책도 함께 추진한다. 생산자-소비자-유통인에게 생산 유통가격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생산·유통·가격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농산물 통합정보 지원 플랫폼’도 2028년까지 구축한다. 생산자·소비자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