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줄고 집값만 올린 ‘금리 인하의 역설’, 하반기엔 성장 효과 기대

2025-09-15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2.5%로 1%포인트 내렸지만, 소비와 투자의 회복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서울 아파트값만 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11일 발표한 ‘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 인하의 성장률 제고 효과는 연간 0.27%포인트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상반기 중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 실제 효과는 거의 없었다. 대신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분의 4분의 1 이상(26%) 정도는 금리 인하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기준금리가 1%포인트 내리면서 가계와 기업의 올해 1분기 중 이자 부담 금리도 각각 2023년 4분기, 작년 2분기보다 0.25∼0.68%포인트, 0.27∼0.54%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 증가는 확인되지 않았고, 반대로 금리 인하가 집값과 가계대출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뚜렷했다. 무엇보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분의 26% 정도는 금리 인하 때문으로 분석됐다. 나머지 74%는 수급·규제·심리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특히 여윳돈은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신규 주택공급 부족, 완화적 규제 수준, 기대심리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결국은 가장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부동산으로 돈이 몰린 것이다. 정부의 6·27 부동산 대책으로 과열 양상은 다소 진정됐지만, 서울 강남 3구와 마포·용산·성동·광진구 등 인기 지역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잠재적 수요가 견조하고 금리 인하가 집값을 다시 부추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장률 제고 효과는 미미한 데 반해 집값 상승만 부추긴 결과로 경기 부양 카드가 실물경제보다는 자산시장만 자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향후 추가 금리 인하 시기와 폭을 결정하는 데 있어 성장 흐름과 함께 주택시장·가계부채의 안정 여부가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가계가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통상 2~3분기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지만,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는 즉각 반응이 나타나는 것과 비교하면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 금리 인하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훨씬 줄었는데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갑 사정이 나아졌지만, 가계는 생활비를 아끼고 기업은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경기전망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금리 1%포인트 인하로 1년간 성장률 제고 효과는 0.27%포인트 정도로 추정됐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미국 관세정책이 한국의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경기 침체와 낮은 성장률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에서 0.9%로 0.1%포인트 상향 조정했지만, 여전히 0%대에 머물고 있다. 민간 소비와 투자 모두 부진한 데다, 미국 관세 충격까지 덮치면서 경기 회복 동력은 크게 약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는 미국 관세 인상으로 한국 성장률을 올해 0.45%포인트, 내년 0.6%포인트 낮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관세 영향은 크게 무역과 금융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파급된다. 무역 측면에서 관세 인상으로 수출 비용이 오르고, 미국 내 물가 상승으로 총수요가 줄어들면 대미(對美) 수출이 축소된다. 대미 수출은 상호 관세 부과가 시작된 4월(-7%)부터 6월(-0.7%)까지 3달 연속 줄었다. 7월 들어 1.5% 반등했다가 지난달 다시 12%나 감소했다. 지난달 대미 수출 감소 폭은 코로나 발 무역 봉쇄로 대미 수출이 29.4%나 줄었던 2020년 5월 이후 5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 품목 중에서는 대미 수출 비중이 크고 높은 관세율이 적용되는 금속과 자동차, 기계 분야 등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했다.

실제로 한은의 금리 인하 이후 서울 부동산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6월에만 전월 대비 1.44% 치솟았다. 2018년 9월(1.84%) 이후 6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같은 달에만 6조 2,000억 원 증가해 과열 조짐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9월 8일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 2025년 9월 2주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을 보면 올해 9월 둘째 주(9월 8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0.03% 상승하였고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도 재건축 추진 단지 및 역세권·대단지 등 선호단지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0.09% 상승하고 있다.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의 효과가 점차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다만 한국은행은 최근 정부가 추가로 내놓은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다음 달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집값을 보고 금리 결정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작금의 우리 경제가 금리를 낮춘다고 소비가 살아나고 투자가 늘어나는 교과서적 효과가 자동으로 쉽게 일어나지 않는 만큼, 추가 금리 조정은 분명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 기대했던 효과는커녕, 자본시장만 왜곡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미루면서 금리 민감도가 떨어진다.”라는 한국은행의 진단은 금리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시장은 통상 환경 불안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12일 코스피는 전주 대비 190.42포인트(5.94%) 오른 3,395.54로 장을 마치는 등 역대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는데도 개인 투자자들이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결국은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으면, 금리를 내려봐도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충분히 학습했다.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와 하루아침에 정책이 뒤집히는 조변석개(朝變夕改)·조령모개(朝令暮改)부터 바로잡아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가 앞으로는 소비와 투자를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다만 6월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됐고, 금리 인하의 성장 파급 시차가 2∼3분기인 점을 고려할 때 성장 효과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기준금리 인하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대내외 불확실성 등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라며, “최근 국내외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고 경제 심리도 상당히 반등한 만큼 앞으로 소비·투자 진작 효과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는 줄고 집값만 올린 금리 인하의 역설을 신중히 들여다보고 하반기엔 성장 효과를 기대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