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원 국민성장펀드 ‘관제 흑역사’ 깨고 경제 회복 마중물 역할해야

2025-09-14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정부가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향후 5년간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10대 첨단산업과 전후방 가치사슬 전반에 투입한다. 재정과 민간 자금을 결합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금융 구조 전환을 이끌겠다는 전략이다. 애초 100조 원 규모로 추진했으나 50조 원을 증액한 역대 최대 규모다. ‘국민성장펀드’는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위험도가 높은 산업에 국가가 전략적 자금을 집중함으로써 성장 토양과 동력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다만 역대 정부의 반복된 실패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산업은행이 운영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 원,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 원으로 구성된다. 위험을 먼저 부담하고 초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 재정도 1조 원 투입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9월 10일 관계부처와 산업계, 금융권과 함께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밝힌 내용을 보면, 150조 원 중 75조 원은 연기금과 금융회사, 국민 참여 자금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75조 원은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조성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으로 운용한다. 정부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사의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해 참여를 유도하고, 장기 투자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0일 “우리 산업에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정부·경제계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적극적 참여를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어 “부동산이나 단순 이자 수익으로 자금이 쏠리지 않도록 모험적·혁신적 투자 환경을 만들겠다.”라고 했다. 시중 자금이 실제 생산적·혁신적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엇보다 펀드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수익성이기 때문에 거창한 계획보다 정교한 수익성 확보가 중요하다. 펀드 출범에 앞서 역대 정부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전락한 ‘관제 펀드’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들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수익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용두사미가 된 ‘관제 펀드’의 전철을 피할 수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 과거 정부마다 대규모 ‘정책 펀드’를 조성했다.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 투기에서 생산적 분야로 돌리고, 성장과 분배의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같았다. 하지만 정권 초기엔 성과를 거두는 듯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자금이 이탈하고 수익률도 떨어지면서 결국 흐지부지됐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시장의 전문적인 투자 분석이나 심사 과정이 미흡해지거나 성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도덕적 해이도 발생했다. 특히 뉴딜펀드의 최근 3년 수익률이 10~14%대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31.6%)을 한참 밑돈다. 정치적 목적과 단기 성과 중심 운용으로 전문성과 책임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성상 일정 부분의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이날 잠재성장률 3% 실현을 목표로 20개 민관 합동 추진단을 이달 중 구성해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국가전략첨단소재·부품, 기후·에너지·미래대응, K식품 등 15개 분야에 재정·세제·금융·규제 패키지 지원을 집중해 이재명 정부 임기 안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시장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등 호재가 겹치면서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4.48포인트(1.67%) 오른 3314.53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 대상도 지나치게 분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밝힌 대상을 보면 당초 AI·반도체·바이오뿐 아니라 로봇, 수소, 2차전지, 디스플레이, 미래차, 방산 등 광범위하다. 중요하지 않은 산업이 없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지금 우리 경제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골든 타임(Golden time)’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작금의 경제와 민생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올해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집행에도 성장률은 0%대 바닥을 기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을 피하고자 기업들의 대미(對美) 직접 투자가 늘면서 국내 제조업 위축과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0일 발표한‘2025년 8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15~29세 청년들의 실업자가 18만 4,000명(실업률 4.9%)으로 지난해 같은 달 16만 2,000명(실업률 4.1%)보다 무려 2만 2000명(실업률 0.8%포인트)이나 늘어났고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30대(30~39세) ‘쉬었음’ 인구가 32만 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30만 9,000명보다 무려 1만 9,000명이나 늘었다. 결국 ‘국민성장펀드’의 성패는 수익률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업의 도전을 가로막는 규제 혁파가 병행돼야만 한다. 특히 첨단산업의 첨병인 ‘스타트업(Start-Up │ 혁신형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초기 창업 기업)’ 관련 규제는 전향적(轉向的)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매년 수백 개의 ‘유니콘 기업(Unicorn 企業 │ 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이 쏟아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토록 추구하고 있는 ‘부동산에 자금이 쏠리지 않도록 모험 투자, 혁신 투자에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특히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시중 자금이 생산적 영역으로 이동하는 ‘금융 대전환’을 이뤄내고, 관제 펀드의‘흑역사’를 끊어내서,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한국이 미래 ‘첨단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