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차별 불식하고 일·가정 양립으로 출생률 반등 호기 살려 나가야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5명으로 전년도인 2023년 0.72명보다 0.03명 늘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올해 6월 합계출산율은 0.76명이다. 출산율 반등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깜깜한 저출산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한국의 2022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의 대재앙(大災殃)의 한가운데 있다.
지난 8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출생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8,300명으로 전년보다 8,300명(3.6%↑) 증가해 조(粗)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은 4.7명으로 전년보다 0.2명 증가해 합계출산율이 전 년도 0.72명과 비교해 0.03명 높아진 0.75명을 기록했다. 9년 만의 반등이다. 바닥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던 출산율이 소폭이나마 반등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변화는 ‘비혼 출생’ 증가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다’라는 전통적 인식이 점차 무뎌지고 비혼(非婚) 출산이 빠르게 늘어 혼외 출생아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는 1만 3,8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8%를 차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981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0~1%대에 머물던 비혼 출생 비율은 2016년(1.9%)부터 9년 연속 최고치를 고쳐 쓰고 있다.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은 2014∼2017년까지 1.9%∼2.0% 수준을 이어오다 2018년 2.2%로 2%대로 올라선 데 이어 2022년 3.9%로 3%대, 2023년 4.7%로 4%대, 2024년 5.8%로 5%대에 처음 진입했다.
이처럼 비혼 출생이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로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결혼해야 아이를 낳는다.”라는 “인식이 변화한 영향이 크다.”라고 했다. 2005년 호주제 폐지와 2013년 엄마의 단독 출생신고 허용 등으로 비혼 여성의 출산을 둘러싼 걸림돌이 점차 사라진 점이 이런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증가한 점도 한몫했다고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영화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도 결혼하지 않고 부모로서 아이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밝혀 혼외 출산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줬다. 통계청이 2년마다 실시하는 사회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라는 응답률은 2020년 30.7%에서 지난해 37.2%로 상승했다. 하지만 한국의 비혼 출생 비율은 41.9%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혼외 출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혼인 외 출생아 비율이 낮은 OECD 회원국은 튀르키예(2.8%)와 일본(2.4%) 2곳뿐이다. 혼인 중심의 가족관이 뚜렷한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서 혼외 출산은 불명예로 인식하는 편이다. 일본도 ‘혼외 출생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아이슬란드(69.4%), 프랑스(62.2%) 등 비혼 출생 비율이 높은 나라는 비혼 가족에 대한 보육·주거 지원 혜택이 혼인신고를 거친 가족과 사실상 같다. 결혼한 남녀만 ‘합법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현실, 저출생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의 변화 없이는 장기적인 상승세는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아이가 동등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법적·제도적 체계를 재정립할 때다.
특히 지난해 태어난 둘째 아이 수가 9년 만에 반등하며 전체적인 출산율 증가 기조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태어난 둘째 아이 수는 7만 5,900명으로 전년보다 1,500명(2.0%↑)이나 증가했다. 출생 둘째 아이 수는 2016년 15만 2,700명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 2023년 7만 4,400명으로 처음 7만 명대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반등에 성공했다. 다만 셋째 아이 수는 1만 6,200명으로 5.8%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부터 이어져 온 혼인 증가, 30대 여성 인구 증가와 더불어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 변화가 복합적으로 출산율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최근 다자녀 혜택이 기존 3자녀에서 2자녀까지 확대되면서 (둘째 출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불과 50년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살았으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1950년 5.05명(출생아 수 63만 3,976명)에 달하던 합계출산율이 1960년 베이비붐(Baby boom)에 편승하여 6.16명(108만 535명)으로 정점을 찍더니 이후 점차 줄어 1970년 4.53명(100만 6,645명), 1980년 2.82명(86만 2,835명), 1990년 1.57명(64만 9,738명), 2000년 1.48명(64만 89명)으로 2010년 1.226명(47만 171명), 2020년 0.837명(27만 2,337명), 2021년 0.808명(26만 562명), 2022년 0.778명(24만 9,186명)으로 줄어들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2월 28일 발표한 ‘2023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그 전년도인 2022년 24만 9,186명보다 1만 9,186명(-7.7%)이 감소해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출산율 반등은 30대 여성 인구 확대, 코로나 19 엔데믹(Endemic │ 풍토병) 후 늘어난 결혼·출산 등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 출생)의 자녀 세대가 결혼과 출산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출생아 수가 늘었다. 혼인 건수도 지난해 22만 건으로 껑충 뛰었다. 여기에 정부의 저출생 대책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부는 모처럼 되살아난 불씨를 다시 꺼뜨려 버리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비혼(非婚) 출산의 증가다. 이는 비혼 출산이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대 청년 10명 중 4명(42.8%)이 비혼 출산에 동의하는 등 비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실제 혼인 외 출생률이 현저히 낮은 실태는 고출생 국가들과 달리 혼인 외 출생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한 탓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을 전제로 한 편견도 매우 크다. ‘정상 가족’이라는 틀에 갇혀 달라지고 있는 세태와 인식을 법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7일 발표한 ‘2025년 6월 인구동향’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1∼6월) 누적으로는 12만 6,001명이 태어났다. 지난해 상반기 11만 7,280명보다 8,721명(7.4%) 증가한 수준이다. 이 역시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올해 2분기(4∼6월) 증가율도 7.3%로 마찬가지다. 6월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1년 전보다 0.06명 증가했고, 2분기 합계출산율도 0.76명으로 0.05명 늘었다. 출산의 선행 지표 격인 혼인 증가세도 지난해 4월부터 15개월째 이어졌다. 6월 혼인 건수는 1만 8,487건으로 전년 대비 1,539건(9.1%↑) 증가했다. 상반기 누적으로 보면 작년 상반기보다 7,817건(7.1%↑) 늘어난 11만 7,873건이다. 2019년 12만 87건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다. 지난해 1분기부터 이어진 혼인 증가, 30대 여성 인구 증가, 출산에 관한 긍정적 인식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증가세와 분만 통계 등에 비춰 올해 연간 출생아 수는 2년 연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저출생 극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일터에선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만드는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육아휴직이 ‘그림의 떡’인 사업장도 여전히 많다. ‘법 밖의 가족’은 출산과 양육 지원에서 법적·제도적으로 배제돼 있다. 정부는 ‘결혼 가족’ 단위로 설계된 사회정책 전반을 서둘러 재편해야만 한다. 지난 5월 20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가 발표한 '결혼·출산·양육 및 정부 저출생 대책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에서 결혼 긍정 인식과 결혼 의향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저출생 대응정책 중 국민들의 인지도와 기대효과가 모두 높은 '신혼·출산·다자녀 가구 대상 주택공급 확대'가 주요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여성의 결혼 의향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 긍정 인식은 2025년 3월 기준 72.9%로, 지난해 9월(71.5%) 대비 1.4%포인트 늘었다. 만 25~29세 여성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 비율은 2024년 9월 57.4%에서 25년 3월 61%로 3.6%포인트 증가했다. 결혼 의향 역시 64%로, 6.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변화의 추이를 놓쳐선 안 된다. 당분간 출생아 수 증가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건강보험 임신·진료비 지원 사업(임신 바우처) 자료를 통해 산출한 올해의 분만 예정자 수는 30만 4,000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7.4%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출산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자녀 출산을 막는 심리적 걸림돌을 치워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일과 가정의 양립 분야가 강화돼야만 한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표적인 저출산 대응 성공 국가로 꼽히는 프랑스와 비교하면 한국은 자녀 출산이 개인 자유의 제한이나 일할 기회를 축소하고 있다는 우려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라며 “일자리나 주거 등 구조적 문제 해소와 함께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도 필요하다.”라고 했다. 국회도 입법을 통해 ‘정상 가족’에 기반한 제도와 규범을 바꾸는 물꼬를 터야만 할 것이다. 지금이 정책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Golden-time)’이며, 앞으로 수년간 집중적이고 일관된 정책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의 나락에서의 추락을 막아낼 수 없음을 각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