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역대 최대 편성, ‘이공계 중심’ 인재 육성 국가 도약점 돼야
정부가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 26조 5,000억 원까지 줄었던 예산을 19.3%인 5조 7,000억 원이나 크게 늘렸다. 인공지능(AI) 예산을 2배 이상 늘리고, 이공계 인재 육성 예산도 대폭 확대키로 했다. 세계 주요국들이 기술패권 경쟁을 가속화(加速化)하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유지하기 위한 의지에 찬 결단이자 인공지능(AI)·에너지·전략기술 등 미래 성장동력에 과감히 투자하고, 기초과학 지원과 인력양성을 통해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청사진을 담음과 동시에 윤석열 정부 당시 ‘R&D 예산 삭감’으로 불거졌던 과학기술계 혼란을 바로잡고 연구 생태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고 35조 3,000억 원 규모의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올해 예산 26조 5,000억 원보다 19.3% 늘어난 대폭 증액이다. 특히 핵심 과학기술 진흥 등에 사용되는 주요 R&D 예산을 올해보다 21.4%인 30조 1,000억 원이나 늘렸다. AI 육성에 투입하는 예산은 올해보다 106.1% 증가한 2조 3,000억 원을 배정했다. 석·박사급 인재 처우 개선 등에 쓰일 예산도 35%인 1조 3,00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기초과학 생태계 육성에도 14.6% 증가한 3조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동안 R&D 예산에 굴곡이 있긴 했으나, 이제 정상적 증가 추세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AI 시대에 한발 뒤처진 현실을 감안하면 많이 늦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도 없지 않다.
국정 선무당 윤석열 정권이 거덜 낸 민생경제를 되살려 한국경제를 재도약시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야심 찬 의지의 발현이자 향후 5년 경제 청사진으로 AI와 초(超) 혁신 기술을 활용, 경제·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진짜 성장’을 이루겠다는 단호하고 결연한 로드맵이 녹아든 재정계획으로 조속히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고 서둘러 ‘이공계 중심’인재를 육성하여 “인공지능(AI) 3대 강국·잠재성장률 3%·국력 세계 5강 달성”을 실천하는 시금석(試金石 │ Touchstone)으로 성장 모멘텀(Momentum)이자 추동력(推動力 │ Driving Force)이 되기를 바란다. 당연히 무너진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회복하고, 혁신을 향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는 계기가 돼야만 한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형 산업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동력이 됐다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R&D 투자를 확대했고,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학문 생태계의 확장, 국부창출 등에서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23년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밑도 끝도 없이 “과학기술 카르텔”을 운운하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과학기술계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 왔다. 대학 연구비들이 대폭 삭감되면서 숱한 대학원생·연구원들이 연구과제를 중단해야만 했고, 일부는 중국으로 연구처를 옮겨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장님무사’가 마구 휘두르는 칼처럼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한 것이다. 이과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R&D 예산 ‘정상화’가 윤석열 정부 집권기간 동안 붕괴한 ‘과학기술’ 생태계를 온전히 복원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에 달려 있다. 결단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산이 늘었다고 성과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AI와 에너지, 전략기술, 방산까지 모든 분야를 강조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집행 과정에서 투명한 성과 관리와 면밀한 분석으로 선택과 집중의 과감한 우선순위 설정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난 예산을 ‘갈라먹기식’으로 나눠 갖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파이가 클수록 공정한 배분과 적재적소의 효율적 공정 배분이 필요하다. 35조 R&D 예산은 다시 한번 ‘과학기술’을 토대로 국가 발전을 이끌겠다는 각오이자 다짐이며 강력한 의지다. 그에 부응하는 창조의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최근 중국의 스타트 기업이 내놔 세계를 놀라게 한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Deep Seek)’는 중국이 ‘과학기술’에 인재와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물로 그 충격은 많은 사람에게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를 실감 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AI 분야에서만 기술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우리나라의 제조업 대부분이 중국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반도체처럼 한국이 가까스로 격차를 유지하는 분야도 있지만, 과거 ‘대륙의 실수’라고 웃어넘기던 일이 이제는 ‘대륙의 실력’으로 우리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하던 미국 제조업은 일본에 주도권을 넘겼고, 일본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한국에 많은 분야를 내어주었는데, 이제 한국이 중국에 제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에 봉착한 상황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우위마저 빼앗긴다면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문제는 중국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 정답은 기술력 향상을 통해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기술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즉 제조업 경쟁력은 연구개발 인력의 우수성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유능한 연구개발 인력은 이미 노령화하고, 젊은이들은 ‘과학기술’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AI 3대 강국 도약’이니 ‘혁신으로 도약하는 산업 르네상스’ 같은 국정과제는 허울 좋은 공염불이 되기에 십상이다. 우선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인구 감소로 인해 청년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앞으로 5~10년 후에는 이른바 명문이라는 SKY 대학도 이공계 대학원 학생 수를 채우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이미 서울대 일부 이공계 전공은 정원을 겨우 채우는 실정이다. 다음으론 극심한 ‘의대 선호’ 현상으로 인해 적성과 관계없이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에 들어가려고 하고, 심지어 사교육 시장에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 생기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쫓아 서울대 이공계에 들어간 학생조차 ‘의대 입학에 실패한 루저’라는 주위의 시선에 자긍심이 꺾일 정도라고 한다. 또한, 양질의 이공계 일자리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우수인재 육성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응 더욱 중요한 국가적 책무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지금처럼 국내의 이공계 출신 전문가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이를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고 국내에서 활용하는 데 많은 제약과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한국에서의 정착 지원, 대학원생의 경제적 지위 보장,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는 대입제도 등이 제안된 바 있다. 또한, 배출된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 마련, 자유로운 연구 환경, 예측 가능한 정부 정책 등이 조속히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유관부처와 민간기업이 함께 공동 노력해야만 하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고 찾아보기조차 힘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거 슬로건으로 유명한 1992년 미국 제4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들 수 있다. 걸프전의 승리로 지지율이 하늘로 치솟던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낙관했지만, 미국의 불황과 경기침체로 인한 민심 이반을 정확히 꿰뚫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우리도 “문제는 인재 확보야, 바보야”라는 데 공감하고 인식의 공유를 바라본다.
작금의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을 뛰어넘어 미래 혁신산업의 메카(Mecca)로 군림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사회가 급변하는 ‘초(超) 가속 시대’에 ‘과학 기술’로 성장한 한국이 그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고, 당연코 묵과해서도 안 된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 인재들이 국내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번 R&D 예산 증액은 지난 정부의 무리한 예산 삭감이 낳은 인재 이탈과 연구 중단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선언이기도 하다. 2024년 4조 6,000억 원의 예산 삭감으로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만 무려 949명의 연구 인력이 떠났다. 고용 안정성이 낮은 박사후연구원과 비전임교원 등 청년 연구자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기초연구 과제만 1만 4,000개나 감소하면서 연구 생태계 자체가 근본부터 송두리째 흔들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하면 2013년부터 10년간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간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가 무려 9만 6,000여 명에 이른다. 과거에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더라도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거꾸로 역전된 것이다. 한국의 미래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8월 22일 “역사적으로 보면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나라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나라는 흥했고 ‘과학기술’을 천시하는 나라는 대개 망했다.”라고 강조하며,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R&D 예산 증액에 머물지 않고, 한국이 ‘이공계 중심’ 국가로 변신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최우선을 두 힘을 쏟고 서둘러 현실이 되도록 추진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