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국가 차원 치유대책 나와야

2025-08-23     박두식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미증유(未曾有)의 최악(最惡) ‘10·29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해 구조 활동에 발 벗고 나선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참혹한 트라우마(Trauma │ 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던 소방관 2명이 잇따라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목숨을 끊고 스러지고 있다. 두 소방영웅 모두 심리상담 및 치료를 받았음에도 끝내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참극(慘劇)은 그들의 개인적 비극(悲劇)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우리 사회 모두의 비극으로 국가 차원에서 수습할 특단(特段)의 치유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인천소방본부 송도소방서에서 근무했던 고(故) 박흥준 소방교는 2022년 미추홀소방서 근무 당시인 그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현장에 지원 출동을 나갔다가 극심한 충격을 받은 뒤 마음의 병(우울증 │ 憂鬱症)이 생겨 8번에 걸쳐 ‘찾아가는 심리상담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고, 병원에서도 4차례나 치료를 받아 왔지만 별 차도(差度)는 없었다고 한다. 경남소방본부 고성소방서에서 근무했던 고(故) 남동혁 소방장은 2022년 용산소방서 근무 당시인 그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현장에 직접 출동했다가 트라우마를 얻어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신청했던 공무상 요양 승인신청마저 거부됐다고 한다. 치유 지원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트라우마를 개인 의지와 노력에 맡긴 낮은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이들 통한(痛恨)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재난 현장에 일상 반복적으로 투입되고, 그 후유증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소방관 등 수많은 피해자를 도외시하고 방기(放棄)한 한국 사회에 대한 추상같이 준엄(峻嚴)한 경고다.

소방관들은 일반인들이 평생 한 번 접하기 힘든 끔찍한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 │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으며 고통받는 소방관들이 적지 않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혹은 직접 겪은 후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소방관이 아무리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되었다고 해도 그 역시 사람인 이상 분명히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대형참사는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 장기간의 후유증을 수반한다. 각종 사고 현장 최일선에 있던 소방관들은 더하다. 우울증과 ‘PTSD’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자살이나 분노 등의 형태로 고통이 표출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증상이 지속하게 되면 일상생활에서 집중력 저하와 ‘수면장애(不眠症 │ Sleep Disorder)’와 같은 불편함을 겪기도 하고, 간혹 공황 발작과 같은 불안을 느끼거나 또는 환각을 경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심할 경우는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

소방청의 ‘이태원 투입 소방공무원 PTSD 상담 실적’을 보면, 참사 후 1년 동안 1,316명이 긴급 심리지원을 받았다. 이들 중 142명은 심층 상담을 받았었지만, 참사 이후 얼마나 많은 소방대원이 지속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두 소방관의 죽음은 단기에 그치는 현행 심리지원 체계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지옥 같은 참사현장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 트라우마로 나타날 수 있어 장기적인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당시 현장 구조인력뿐 아니라 자원봉사자까지 폭넓게 지원 정책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트라우마에 대해 심층 모니터링(Monitoring)을 하고, 필요한 치료와 상담 등 제공하는데 그 운영 기간은 2090년까지라고 한다. 참사 후유증을 겪는 이들의 치유에는 일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리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찍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고,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는 “가장 큰 죄는 무관심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구조적 미비점을 알면서도 방관(傍觀)하고 방치(放置)하며 방기(放棄)하는 행태야말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가장 엄중한 책임을 방임(放任)하는 해악(害惡)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란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선각(先覺)을 떠 올리고,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심정으로 거안사위(居安思危)와 초윤장산(礎潤張傘)의 지혜 그리고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상두주무(桑土綢繆)의 혜안으로 우리 사회에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물난리’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종적을 감추기 전 박흥준 소방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정작 미안해야 할 주체는 트라우마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외면한 국가와 우리 사회의 만성(慢性) 중증(重症)인 치둔(癡鈍)의 우(愚)가 아닌지 싶다. 또한, 공무상 요양 신청을 거절당한 뒤 국가에 대한 원망으로 남동혁 소방장의 정신적 고통이 배가된 것은 아닌지도 억장이 무너지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재난 현장에서 공무를 수행하다가 입은 트라우마가 죽음을 초래한 원인이 됐는지 ‘심리적 부검’ 등을 통해 반드시 밝히고 조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21일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법적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재난 현장에서 정신적 상해를 입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유와 회복을 앞당겨 줄 장기적인 지원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만 한다. 공무상 재해 인정 기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고인들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사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는 더는 개인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나서야 할 국가적 공통과제이다. 실제로 참사 트라우마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물론 소방관, 경찰, 응급구조사 등 재난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우울증과 PTSD 등 정신질환을 동반하기도 하며 개인의 감정과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비가역적(非可逆的)인 피해를 남길 수 있지만,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을 더는 돌보지 않고 방치(放置)를 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게 방기(放棄)하고 놓아둬서는 결코 안 된다. 이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재난에 대응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하는 것은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한 발판이자 첩경이며 마중물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고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직업 특성상 참혹한 현장을 자주 맞닥뜨리는 소방관은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향이 매우 짙다. 그만큼 소방공무원의 정신세계가 피폐(疲斃)하고 황폐(荒幣)해졌다는 방증(傍證)이다. 지난 8월 21일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 조사’ 결과 6만 1,087명 가운데 4,375명(7.2%)이 PTSD를 앓고 있었다. 3,937명(6.5%)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고, 자살 위험군도 무려 3,141명(5.2%)에 달했다. 소방청이 지난해 7월 발간한 ‘2024 소방청 통계연보’의 ‘연도별 소방공무원 순직 공상자 현황’에 의하면 최근 10년(2014~2023)간 40명이나 순직하고 7,927명이나 공상을 당해 무려 7,967명이나 숨지거나 다쳤다. 실제 지난 10년(2015~2024년) 동안 134명의 소방관이 자살했다. 비슷한 기간 동안 자살소방관의 숫자가 순직소방관의 숫자보다 3.35배나 많았다. 또한, 소방의 자살 순직은 2020년부터 인정되기 시작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전국 소방의 자살 순직 승인은 2020년 3명, 2021년 1명, 2022년 6명, 2023년 5명, 2024년 5명에 이른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참사 트라우마’는 육체적으로 강인한 소방관이나 구조대원의 정신마저도 무너뜨릴 정도로 파괴적이고 폭발적이다. 9·11 테러 수습에 투입된 소방·구조대원의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가 있고, 세월호 구조 작업을 수행했던 민간 잠수사 고(故) 김관홍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차제에 두 소방관의 가슴 아픈 사례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반면교사(半面敎師)로 거울삼아 참사현장에 투입한 소방관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세밀한 정신건강 관리에 나서야 하고, 참사 관련 공무상 재해 인정 기준도 재검토해 트라우마 치유의 획기적 기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확대 제공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차원 치유대책이 서둘러 나와야만 한다. 이런 노력이 쌓이고 모여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대안(代案)이자 첩경(捷徑)이며 마중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각별 유념 실행으로 옮겨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