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방직공장 통한 日 '위안부' 강제동원·유언비어 판결 첫 확인

일제 당시 노동·교통 중심지 광주, 위안부 취업사기로 대구 야마다 공장 사례 등 전국적 사안, 광주서도 확인 기반 약한 여성들 전쟁 공출 위기의식, 소문으로 확산

2025-08-17     박두식 기자
▲ 가수 김민정씨가 13일 오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열린 2025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기념행사에서 여는곡 '죽어서도 살아있을테니'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현재까지 파악된 광주·전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상당수가 지역 방직·제사공장과 연관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광주가 전남지역 노동·교통의 중심지였던 탓에 일제가 이를 노려 취업을 미끼로 지역 여성들을 강제동원했다는 분석으로도 이어졌다.

일제가 '지역에서 처녀 또는 과부를 공출한다'는 내용의 '유언비어'를 유포한 지역민을 처벌한 자료도 발굴, 주변 지역 사례와 엮이면서 후속 연구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취업사기 이뤄진 광주지역 방직공장, 왜?

17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광주여성가족재단을 통해 광주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조사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연구용역은 시 차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 기획과 후속 연구 차원에서 이뤄졌다.

시와 재단은 여성가족부와 국가기록원, 정의기억연대 등 기관과 기타 지자체·민간인 발행 증언집 등 자료들을 통해 광주·전남에 연고를 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현재까지 13명 파악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숨진 상태이고 고(故) 곽예남씨가 지난 2019년 숨져 광주·전남 마지막 생존자로 기록돼있다.

특히 피해자 13명 중 4명(곽금녀·진화순·최양순·최복애(가명))이 광주지역 방직·제사공장에서 취업사기로 일본군 '위안부'에 강제동원된 내용이 확인됐다.

이는 전국적인 사안이기도 했다. 대구지역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는 1943년 대구지역 방직 공장인 야마다 공장 직공으로 취업하기로 했다가 속아 일본군 '위안부'에 강제동원됐다. 취업사기로 연행된 김씨는 서울과 하얼빈, 내몽고를 거쳐 중국 북경까지 갔다가 1946년 귀국했다.

연구는 일제가 당시 여성 노동력을 활용한 방직·제사공업이 발달한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집단 동원했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일제는 호남 일대에서 광주가 비교적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대도시였던 점, 농촌 지역에서 이주해온 여성들이 공장에 추로 취업한다는 점을 노렸다고 봤다.

◆지역 일본군 '위안부' 동원 유언비어 판결문, 7건 확인

광주지역에서 확인된 일본군 '위안부' 동원 유언비어 판결문은 1938년부터 1944년 사이 7건이 확인됐다. 혐의는 일본 육군형법상 유언비어 유포 의율이 적용됐다.

1938년 9월28일 광주지법에서 금고 4월 형을 선고받은 김금례씨는 화순에 사는 과부 지인 김필순씨를 찾아 "요즘은 전쟁을 하고 있는 곳에 큰 건물을 지어 그곳에서 과부를 끌고 가 창녀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가 처벌받았다.

광주지법은 같은해 10월7일 임자근이씨와 송규녀씨에게도 금고 4개월 형을 선고했다. "최근 각지 주재소에서는 혼기에 있는 아가씨의 씨명, 연령 등을 조사하고 우리 육군이 출정해 있는 중국의 전쟁터에 수송해 병사의 위문, 취사 및 세탁물의 시중 등에 사역시키려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한 혐의다.

1941년 10월23일 날품팔이 업을 하던 김송죽 씨도 유언비어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집을 빌려 살던 정점례씨가 "최근 호구조사 하러 온 순사가 내 딸의 씨명과 연령을 상세히 조사해갔다"고 하자 김씨가 "조선총독부에서 일선 군대의 위안에 충당하기 위해 14세부터 18세까지의 조선인 처녀를 강제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딸을 숨기라"고 조언하자 처벌받았다.

연구는 이를 포함한 '처녀 공출' 관련 소문을 유포하다 처벌된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처녀 또는 과부를 공출해 전쟁터로 보낸다는 소문을 과부·행상·날품팔이 여성들이 주고받는 모습에서 '기반이 약한 여성들이 동원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더 강하게 느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전남 영암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한 유언비어 판결문 2건이 발굴된 만큼 일제가 실제 알려진 사실에 대한 조직적인 통제를 진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여성들의 불안감이 담긴 유언비어는 뜬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소문이 미치는 것까지도 법을 만들어서 통제, 동원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는 것은 실재한 내용에 대한 일제의 조직적인 입단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국가권력이 관여해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한 사례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또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조직적 위안부 동원에 대한 후속 연구도 절실하다. 전남·일신방직공장 내 시민역사관 조성과 같은 사업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애를 녹여내 일본의 전쟁범죄를 다각도로 규탄하고 후대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이끈 이정선 조선대 교수도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집단 동원된 전남방직 공장, 여성들이 실려 간 광주역, 남광주역 등 지역의 현존하는 공간을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과 역사는 그들이 살아온 지역의 기억과 서사, 그리고 지역적 정체성과 연계해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숙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