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부, 94조 적자 건전성 확보 딜레마…“210조 확장 재정”

국정위, 5년간 210조원 투입…“재원 마련 구체성 부족” 나라살림 적자 94조원 돌파…빨간불 켜진 재정 건전성 ‘국민부담’ 적자국채 90조 넘어…“구조적 지출개혁 병행” 李 “무조건 빌리지말라 하면 국가농사 못해”…확대재정

2025-08-17     이광수 기자
▲ 진성준 국정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과 저출생 문제 해결 등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5년간 2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반기에만 나라살림 적자가 94조원을 넘어서면서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씨앗을) 빌려 뿌려서 가을에 (쌀을) 한 가마니 수확할 수 있으면 당연히 빌려다가 씨 뿌려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국채 발행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정부는 경기 부양과 재정 악화 사이에서 딜레마에 놓였다.

17일 관계부처와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국정 설계를 맡은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재정지출 177조원과 교부세(금) 33조원을 순증해 123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300여개 사업에 총 210조원을 추가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5년 동안 210조원을 확보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매년 약 42조원의 추가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올해 전체 정부 지출(673조원)의 6%를 넘는 수준으로, 기재부가 올해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했다고 밝힌 27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이기도 하다.

국정기획위는 세입기반 확충과 강도 높은 지출 효율화를 통해 동일 규모 재원을 마련하는 등 추가적인 재정 부담은 없도록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정기획위는 전(前) 정부 감세 정상화, 비과세·감면 정비, AI 기반 조세행정 효율화, 세외수입 확대 등을 통해 94조원을 확보하고, 지출 구조조정·기금 활용·민간 재원 유치를 통해 추가로 116조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시된 재원 조달 계획은 ‘세입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큰 틀만 있을 뿐, 항목별·연도별 세부 재원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 ‘공약가계부’를 통해 투자·재원 조달 계획을 세분화했던 것과 비교하면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재정 적자가 94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처럼 구체성이 부족한 재원 조달 로드맵은 향후 재정 건전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8월호’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관리재정수지는 94조3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6월 한 달 동안만 40조1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관리재정수지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103조4000억원)보다 감소했지만 2020년(110조5000억원), 2024년(103조4000원), 2022년(101조9000억원)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큰 규모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편성된 31조8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 영향까지 반영되면 적자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재정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팍팍한 세수 여건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필요하다면 빚을 내서라도 민생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지금 (씨앗을) 한 됫박 빌려다가 뿌려서 가을에 (쌀을) 한 가마니 수확할 수 있으면 당연히 빌려다가 씨 뿌려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씨앗을 옆집에서 빌려오든지 하려고 그러니까 ‘왜 빌려 오나’ ‘있는 살림으로 살아야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조건 빌리지 마라’ ‘있는 것으로 살아라’ 이렇게 하면 농사를 못 하게 되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채무 증가를 감수하고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를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미 올해 국고채 총발행 규모가 20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인 데다, 이중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적자국채’는 90조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국채 발행이 늘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그만큼 미래 세대의 부담도 커진다. 또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서(채권값 하락) 시장금리 전반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가계·기업·자영업자의 대출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채권시장 내 자금 이동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한번 적자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지속적으로 빚에 의존하는 구조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이는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 신용등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무지출 구조조정 등 재정 건전성 강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정부는 결국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해 빚을 늘리는 것도 불가피할 수 있지만, 동시에 중장기적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과 지출 구조조정 청사진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