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일 몰랐던 ‘대전 모자’의 비극, ‘위기 가구 지원 시스템’ 재점검을
복지 사각지대의 안타까운 죽음이 잊힐 새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에는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숨진 지 20 여일 만에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지방자치단체 긴급생계비로 월 125만 원을 지원받았으나 단전·단수 상태가 이어지는 등 고립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7월 14일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7월 9일 서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6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숨져 있었다.
경찰은 집 근처 CCTV를 확인하고, 시신 부패 정도를 볼 때 지난달 중순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타살 및 외부인 침입 흔적이 없고, 단전 및 단수 독촉장 등 우편물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미뤄 모자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745달러(한국은행 잠정치 │ 5,012만 원)에 달하는 한국 사회에서 생계의 위기로 일가족이 숨지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참담함을 금하지 못한다. 2014년 2월 월세·공과금 70만 원과 함께 ‘죄송하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11년이 지났지만 위기 가구의 비극은 여전히 되풀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5월 18일 전북 익산시에서 숨진 모녀의 참담한 극단적 비극이 발생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또다시 발생한 ‘판박이 비극’에 가슴이 아려지고 먹먹해진다.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쯤 익산시 모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 60대 여성이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는 집 열쇠와 함께 손바닥 크기의 쪽지를 가슴에 품고 있었고 쪽지에는 “하늘나라로 먼저 간 딸이 집에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집에서 발견된 20대 딸은 한 달여 전 사망한 상태였다. 우울증과 신경증을 앓던 딸의 사망을 슬퍼하다 어머니도 절망의 끝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수사 당국의 조사 결과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이들 모녀는 월 120여만 원을 지원받았으나 함께 살던 큰딸의 취업으로 생계·의료급여 대상에서 제외됐다. 큰딸이 나가 살게 되면서 다시 수급요건을 갖췄지만, 직접 신청하지 않아 급여 대상에서 누락이 된 것이다. 지난 4월에도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로 추정되는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 사회 위기 가구와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 선택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2014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도 위기 가구의 ‘참담한 비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같은 해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해 ‘신촌 모녀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최근까지도 2023년 9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4살 안팎 미등록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아들은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으나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었다.
특히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해소는 끊임없이 사회적 화두가 됐던 터, 긴급복지지원제도가 확대되고 ‘위기 가구 지원 시스템’이 구축됐다. 사회적 고립 문제에 관심이 커지면서 2020년 3월 31일에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다. 현재 한국전력·수자원공사 등 21개 기관으로부터 47개 지표를 받아 위기 가구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갖췄지만, 이 가정은 누락이 됐다. 이들은 가족이 함께 산다는 이유로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정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동거 가족이 있어도 가구 전체가 고립 상태라면 위험군으로 분류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1인 가구 위주 대응이 일반적이다. 현금 지원이 능사가 아니라 사후 점검의 중요성도 재확인된 셈이다. 생계비를 받고도 공과금 체납이 계속된다면 정신적 어려움이나 현금 관리 능력이 낮은 상태인지 살펴야 했다. 이번 대전 사건은 10여 년간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지망에 구멍이 훤히 뚫린 현실을 일깨워 준다. 보건복지부는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해 단전·단수 및 건강보험료·통신비 체납 등 위기 징후 정보를 늘려 왔지만,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원 증원과 모니터링 시스템 재정비·재정 지원 강화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구들이 생활고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양극화 심화와 성장률 저하, 고물가 지속으로 서민의 어려움은 날로 커지고 있다. 혹서기 폭염(暴炎)에서 냉방비 부담 여력이 없는 쪽방촌 주민들은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지금까지 복지제도가 국민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국가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먼저 찾아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긴급할 때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해 일가족이 삶을 마감하는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위기 가구 지원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긴급생계비부터 사후관리까지 곤경에 빠진 이웃을 사회로 다시 이끌어들 복지전달체계가 완성되려면 자치단체의 긴급복지 예산을 확대하고 과부하 상태인 위기 가구 지원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모니터링 시스템 재정비·재정 지원 강화도 놓쳐선 안 된다.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지원을 받는 ‘복지 신청주의’의 맹점을 개선할 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위기 가구 지원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양적 개선의 노력을 펴 왔다면 이제는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촘촘하게 안전망을 씌워 줄 수 있는 질적 향상의 노력을 가일층 더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