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퇴원한 날 증여계약 받아낸 자녀들…법원 '무효 결정'
심장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퇴원한 날 12시간 이상 쉬지 못하게 하면서 받아낸 증여 계약서는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문현호)는 A씨 등 3명이 아버지 B씨를 상대로 낸 증여계약에 따른 금원지금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A씨 등 세 남매는 심장 수술을 받은 아버지 B씨가 퇴원한 2023년 4월9일 B씨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한 회사의 창업주였던 B씨는 2022년 회사 주식 상당 부분인 160억원 상당을 자녀들에게 증여하고 사별한 아내와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A씨 등은 이 자리에서 B씨가 내연 관계에 있던 C씨와 함께 살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C씨와 동거해서는 안 되고 관계를 지속하려면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각자 인생을 살자"고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B씨의 운전기사에게 회사 컴퓨터를 가져오도록 지시해 재산 내역을 조회하고, 회사 고문을 불러 B씨의 차명재산 보유 여부를 확인한 뒤 다음 날인 10일 오전 1시께 B씨와 증여계약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아파트를 매도한 뒤 매도 금액을 자녀들에게 즉시 증여한다 ▲차명재산이 있거나 해외 재산이 1원이라도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일주일 내에 전 재산을 자녀들에게 증여한다는 내용들이 담겼다.
그러나 B씨는 계약 체결 후 해당 아파트를 29억원에 매각한 뒤 이 중 18억원을 다른 오피스텔 구입에 사용했다. 다만 오피스텔에 대해 A씨의 자녀 등을 수익자로 하는 유언대용신탁을 했다.
이에 A씨 등은 증여계약대로 아파트를 매도하고 취득한 매매대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법원은 증여계약이 체결 경위, 동기, 목적 등이 사회질서에 반해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는 수술 후 상당한 신체적 부담이 있었고, 진통제 등 복용하는 약물로 인해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퇴원 후 약 12시간 동안 어떠한 안정과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증여계약 요구를 받았고, 계약서에 날인을 하고난 뒤에야 상황이 종료된 점을 보면 자녀들은 B씨의 건강 상태가 취약한 시점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증여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 등은 B씨의 직원을 불러내 전 재산을 조사하기도 했는데 자녀가 부모의 재산 내역을 확인하고 차명재산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계약 체결 과정에서 자식으로서 도리를 벗어난 원고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B씨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A씨 등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상속재산이 포함된 아파트 매매대금이 B씨와 C씨 등에게 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고 주장한 내용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아내로부터 상속받기 전에도 B씨가 아파트의 2분의 1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매도대금 전액을 증여한다는 것은 위 동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또 B씨가 사망하면 아파트 매각대금 상당액을 이용해 구입한 오피스텔이 A씨 자녀 등에게 귀속되므로 증여계약 목적의 상당부분이 실질적으로 달성됨에도 이 사건 증여계약 전부이행을 청구하는 것은 B씨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동기 및 목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