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노·사·공 합의통과, 노동 존중 아쉽지만 노·사 상생 출발점 돼야
매년 파행을 거듭거듭 반복하던 최저임금 인상 협상이 17년 만에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3자 간의 극적 합의로 마무리돼 다행이다. 내년 2026년도 최저시급이 올해 1만 30원보다 290원(2.9%) 오른 1만 320원으로 정해졌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급 환산액은 주 40시간, 월 209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월 215만 6,880원이다. 이번 인상률은 2.9%로 최저임금 제도가 시작된 1988년 이후 출범한 정권 중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결정된 2.7%를 제외하면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로는 가장 낮다. 무엇보다 2008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표결 없이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의 합의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7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6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올해 합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애초 노동계는 14.7% 인상,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는데, 수차례 협의 끝에 지난 회의 때 공익위원이 ‘1.8~4.1%’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했다. 이후 10차 수정안에서 근로자위원은 4.0%, 사용자위원은 2.0% 인상으로 입장을 좁혔다. 이날도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 구간’으로 ‘1.8~4.1% 인상’을 제시하자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들은 상한이 너무 낮다고 반발하며 집단 퇴장했다. 하지만 한국노총 측 위원들과 사용자 대표들이 주장하는 인상률 격차를 좁히면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표결 없이 노·사·공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8번째이자 2008년 이후 17년 만이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저력이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규정할 만큼 어려운 경제 여건에 대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정년 연장 등 노사 간 이견이 큰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가 뒤따른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물가상승에도 미치지 못한 실질임금 삭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찔끔’ 인상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률 억제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 내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 존중’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의 집권 첫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측면이 크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2.5%와 2024년 1.7%의 인상률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서 결정된 게 사실이다.
좀 더 시계열을 넓게 잡아 살펴보면, 2021년 대비 2024년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4%,였는데 최저임금 인상률은 9.5%(결정 연도 기준)에 그쳤다. 무려 1.9%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만큼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깎인 셈입니다. 그간 내핍과 고통으로 실질임금 삭감을 감내해왔는데, 이번에 또다시 노동계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로 비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는 월 265만 원으로, 내년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215만 6,880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50만 원가량 벌어진다. 더군다나 집권 첫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윤석열 정부 때 5.0%보다 2.1%포인트나 차이가 크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성장률을 기준으로 보면 결코 낮다고 보기 힘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한국의 GDP갭(격차)률이 올해 -1.1%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2023년(-0.4%↓), 2024년(-0.3%↓)에 이어 2025년(-1.1%↓)로 3년간 마이너스(-) 행진이다. 그래서 노동계, 경영계도 모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동시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 노동자의 생계 보장을 강화하는 후속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 정부 첫해의 최저임금은 향후 노동정책의 방향을 점칠 가늠자로 꼽힌다. 문재인(16.4%) 노무현(10.3%) 등 진보 정부에서 인상률이 높았고, 박근혜(7.2%) 이명박(6.1%) 윤석열(5.0%) 등 보수 정부에선 낮았다. 그런데 이번엔 진보 정부에서 인상 폭이 크지 않았다. 지난 7월 11일 대통령실은 “객관적 통계와 취약 노동자, 소상공인 여건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라며 “노사 간 이해와 양보를 통해 결정된 만큼 최대한 존중한다”라고 했다. 경기가 나쁘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본래 기능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결단코 안 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과당경쟁 등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자꾸 최저임금 의사결정 과정에 대입시키게 되면 결국에 이르러서는 ‘을과 을들의 대립’만 부추기고 조장할 뿐 사회통합은 요원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했다곤 해도 여전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수년간 누적된 인건비 인상 여파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을 정도다. 폐업 이유로는 ‘사업 부진’이 50만 6,198명으로 전체의 50.2%를 차지했다. 서둘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결단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함에도 이번에 노사가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뤘다는 점은 향후 노동시장 개혁 해결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노동 현안 역시 노사정의 숙고와 협의로 답을 찾아 나가길 기대한다. 역대 정부의 첫해 인상률 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데 급격한 경기 위축과 자영업자의 어려움 등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노사 현안이 합의로 매듭지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요 경제단체들도 “우리 사회가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라며 긍정 평가했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임금 체계 개편,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 확대 등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나같이 노사 합의 없인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시급한 사안들이다. 오랜만에 성사된 사회적 현안에 대한 노사 합의가 반가운 이유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타협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번 최저임금 합의 정신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복합 위기 극복과 노동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의 대립적 노사 관계와 경직된 노동시장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려 온 게 사실이다. 노동의 유연성이 높아져야 기업들이 채용에 부담을 덜 갖게 되고 그 결과 고용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올 3월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2025년 경제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187개국 중 100위(56.4점)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기준으로 집계한 국가별 시간당 노동생산성 순위에서도 한국은 37개 회원국 중 26위에 머물러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 개혁은 역대 모든 정부가 마주한 핵심 과제였다.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 모델의 한계에 부딪히며 노동 부문의 혁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 사용자와 노동계 양측의 눈치를 보면서 미적거리는 바람에 결국 개혁은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등 고용 유연화 시도는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고,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노동계에 기울어진 정책을 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도 고용 유연화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낡은 노동 규제들을 혁파하지 못하면 저성장 장기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노동계 그리고 경영계가 계속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소통과 대화를 지속 이어간다면, 장기화하는 저성장 궤도를 탈출할 묘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용적 시장주의’와 ‘노동 존중’을 내건 이재명 정부가 경기침체 및 저성장 고착화 등의 복합 위기를 극복하려면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노동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끌어내었던 ‘노사정 대타협’처럼 노·사 간 빅딜(Big deall)을 추진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노·사 양측을 만나 IMF 사태에 따른 고통 분담을 호소해 그 결과 1998년 1월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는 한 달도 안 돼 구조 조정과 실업 대책 등을 포함한 10개 의제를 채택해 결국 한국 경제는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정부는 말로만 ‘성장 우선’을 외치지 말고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고 직무·성과 중심 임금 체계를 확산시키는 등 노동시장 전반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 후 28년 동안 한국의 노동 개혁은 멈춰 서 있다. 앞으로도 주 52시간제 개편과 계속 고용 제도 마련 등 노사정이 마주해야 할 사안은 많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처럼 합의 정신은 계속 살려 나가야 하는 이유다. 당면한 작금의 복합 위기를 극복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생산성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고용, 해고, 임금, 근로 시스템 전반을 유연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사회 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해 노·사가 공생할 수 있는 해법을 서둘러 도출해야 한다.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 경영을 이해하는 노동’과 ‘노동에 쏟은 정성이 경영의 영혼이 된다’라는 가치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모처럼 어렵사리 합의를 이룬 만큼 노동계와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최초 제시안에 못 미치더라도 무조건 반발하고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보다 포용과 배려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내핍과 고통을 분담하고 장기 저성장의 늪에서 서둘러 탈출해야 한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번 합의를 계기 삼아 상생의 길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