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집값 잡기 대출 규제, 공급대책 병행하되 실수요자 피해 최소화를

2025-06-29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새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으로 초강력 대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집값 상승세를 잡기 위해 일단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드는 돈줄부터 죄기로 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6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고, 가계대출까지 빠르게 불어나자 드디어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대출 규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새 정부 출범 23일 만에 나온 사실상 첫 부동산 대책인 셈이다.

이번 6·27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6월 28일부터 수도권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용산 등 규제지역에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시행된다. 또 수도권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6개월 이내 전입 의무가 부과돼 실수요자가 아니면 사실상 금융권 대출이 어렵게 된다. 서울 집값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갭(Gap │ 전세를 낀 주택 구입) 투자’도 차단된다.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0%로 적용되고, 1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 기한도 6개월 이내로 단축된다. 아울러 은행권과 정책금융의 대출 총량 한도도 하반기부터 절반으로 줄여 대출 문턱을 한층 높이기로 했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 급등세가 심상치 않고, 가계대출도 급증하자 정부가 전방위 대출 억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2019년 투기과열지구를 대상으로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대출을 금지한 사례가 있지만 소득 수준이나 주택가격과 상관없이 대출 최대한도에 일괄제한을 두는 것은 전례 없는 초고강도 규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23일 만에 황급히 대책을 내놓은 첫 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세금 정책 대신 대출 규제를 선택한 것은 과도한 대출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와 무분별한 갭투자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가계 부채를 부풀려 온 데다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새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로 인한 유동성 확대 기대감까지 무주택자들의 ‘패닉바잉(Panic buying │ 공포 구매)’을 부추기고 있고, ‘지금 기회를 못 잡으면 또 쪽박’이라는 ‘포모(FOMO │ 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되살아나고 있으며, 싼 집 여러 채보다 ‘똘똘한 집 한 채’에 대한 수요자들의 과도한 선호가 촉발한 고가 주택 매입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 전격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돈줄을 막아 시장을 진정시키고 가계대출 관리에도 나서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야심 찬 포석이다. 연내 금리 인하가 예고된 데다가 시중 통화량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 상승세를 지금 차단하지 못하면 통제 불능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이번 대책으로 거래가 줄어들고 호가가 꺾이는 등 당분간은 시장이 진정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요 억제책은 집값을 잠시 눌러놓는 역할을 할 뿐, 부동산 시장의 근본적 안정 대책이 될 수는 없다. 현재의 시장 과열은 공급 부족에 기인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이 충분하지 않다면, 기대심리는 꺾이지 않고 집값이 언젠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신호만 시장에 줄 뿐이다. 이번 규제는 고가 주택 비중이 높은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 벨트’가 주요 타깃이다. 그러나 강남 3구와 용산구는 이미 규제지역으로 지정돼 대출 한도가 낮고, 토지거래허가제까지 적용돼 전세를 낀 ‘갭투자’가 차단돼 있다. 자칫 고가 주택을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자산가에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중저가 주택을 노리는 실수요자만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염려다. 디딤돌, 버팀목 등 정책대출 한도가 줄어든 것도 부담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3억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가격대가 낮은 지역으로 이동해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까지 끊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 수준이나 주택가격과 무관하게 대출 총액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이번 조치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7월부터는 수도권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까지 적용될 예정이다.

최근 집값 상승의 가장 큰 배경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이에 따른 대출금리 하락 및 시중 유동성의 증가가 꼽히는 만큼 새 정부가 첫 대책으로 대출 규제를 내놓은 것은 방향을 잘 설정한 것으로 보여 환영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이 기업 투자나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 시장 불안과 가계 부채 증가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도 대출 관리는 필수적인 조치로 보여 두 손을 들어 반긴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초강수를 둔 배경은 지나치게 가팔라지는 부채 증가속도를 감안한 조처다.

올해 1분기‘가계대출 잔액’은 1,810조 3,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 1,805조 5,000억 원 대비 4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지난 6월 2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6월 넷째 주(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43% 올라 6년 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성동구의 아파트값은 0.99%, 마포구는 0.98% 오르며 2013년 1월 시작된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정부는 필요하다면 규제지역 추가 지정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과거 정부의 뼈아픈 교훈이었음 각별 유념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공급대책 없이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점을 새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R114’와 ‘한국부동산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내 공동주택 입주 예정 물량은 올해 4만 6,710가구에서 내년 2만 4,462가구로 2만 2,248가구나 급감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공사비 분쟁이나 행정심의 지연 등을 고려하면 실제 입주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서울 주택 공급의 정비사업장 442곳 중 착공에 들어간 곳은 14%뿐이다. 서울 주택 공급의 80~90%를 정비사업이 차지한다는 점에서 민간 주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실질적 공급확대 조치가 필요하다. 신규 공급뿐 아니라 기존 주택이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대출 규제 강화가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차거나, 서민과 현금 부자 사이의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불씨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와 배려도 긴요하다.

결국, 집값 안정의 핵심은 수요가 집중되는 서울의 공급확대로 귀결된다. 사업이 정체된 태릉골프장, 용산 캠프킴 등 유휴 국공유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일정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용적률·건폐율 완화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철폐도 전향적·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공원이나 학교부지를 과감히 주택 용지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택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는 어느 정도 과밀 개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번 대출 규제가 새 정부의 의도대로 ‘급한 불’을 제대로 끌 수 있게 하려면 실수요자의 반발과 거래 경색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다 정교한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강력 수요 억제책을 내놓은 만큼 공급확대를 포함한 세부적 종합대책 마련에도 속도를 내야만 한다. 당국은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실수요자 보완 대책을 서둘러 내놓을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하락과 공급 부족 상황 속에서 급속히 내놓은 대출 규제는 집값 상승 속도를 다소 늦추는 정도에 그칠 뿐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대출을 조이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부는 실수요자를 보호하면서도 투기 수요를 근본적으로 억제하는 종합적인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적기에 시장 상황에 맞는 대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면 더 큰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과거 정부가 무려 23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결국 집값 폭등을 막지 못한 뼈아픈 치둔(癡鈍)의 우(愚)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새 정부는 집권 초부터 지혜를 모으고 국가역량과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집값 안정을 위한 고차방정식을 잘 풀어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