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제로’ 최악의 중동 정세, 유가·환율·물가 비상한 총력 대응을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9일 만인 지난 6월 21일(현지 시각) 이란 핵시설 3곳(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을 ‘벙커버스터(Bunker Buster │ 지하 요새 파괴의 궁극 무기)’ 폭탄 등을 전격 투하해 타격하면서 중동 사태가 요동치며‘시계 제로’의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이란은 지난 6월 23일 미국의 핵시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미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 의회는 이에 앞서 지난 6월 22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반격에 ‘정권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며 강하게 압박했으나 이란이 실제로 해협 봉쇄에 나설 개연성은 커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속에 중동 지역이 일촉즉발 상황에 놓이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지난 6월 22일(현지 시각)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8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 모두 3%가량 올랐다. WTI 가격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13% 오른 상태다. 6월 23일 서울 시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8.07원 오른 리터(ℓ)당 1732.74원으로 3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새 정부 출범 3주 만에 한국 경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만났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실용적 정책 기조, 경기 부양 기대감이 맞물려 반등하던 경제 여건에 지정학적 암초가 돌출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유가 상승은 그 자체로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수입물가 전반이 상승하고, 이는 곧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인플레이션 심리를 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 중 하나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바닷길이다. 북쪽은 이란, 남쪽은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접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길이는 약 160㎞이며,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은 약 33㎞ 수준이지만 실제로 선박 항로로 사용 가능한 구역은 왕복 6㎞ 너비(각 방향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 산유국들의 수출 통로로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 액화천연가스(LNG) 소비량의 약 20%가 지나는 주요 수송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류(원유+석유제품)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지난 6월 23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동 원유 도입 비중은 작년 기준 71.5%로, 이 중 대부분인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수송된다.
지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호르무즈 해협 통항 위기는 있었지만, 전면 봉쇄는 없었는데 지금 상황은 다르다. 정부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대비해야만 한다. 현재 정부와 정유 업계가 200일분의 비축유와 법정 비축 의무량을 초과한 LNG를 확보하고 있다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만에 하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차단되면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망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와 JP모건은 최근 전망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을 때 국제 유가가 최악의 경우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배럴당 70달러 후반대인 국제 유가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뛸 수 있단 분석이다.
중동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우리 증시는 물론 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또 석유류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면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에너지 공급망과 재고 상황을 재점검하고 유가·환율·물가를 밀착 관리하면서 수출에 직결되는 물류 상황도 살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중동 정세와 관련해 “대통령실을 비롯해 전 부처가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우선으로 원유 수입 차질에 대비해 비축량을 점검하고, 수입국 다변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유가와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기 위축 속에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악재가 덮치면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질 수 있어서다. 정부는 대통령실과 거시경제금융회의(F4),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컨트롤타워(Control tower)’를 구성해 민간 기업과 함께 상황별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비상대응 체제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환율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제 정세 불안은 달러 강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강달러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전장 대비 18.7원 오른 달러당 1384.3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6월 21일 종가 1387.2원 이후 약 한 달 만의 최고치다. 환율 상승이 수입 제품의 원가를 추가로 끌어올려 또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당국의 적절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경기 부양을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카드도 환율과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선 쓰기 어렵게 된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면 가계의 소비심리도 의당 위축되기 마련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까지 겹치면, 정부의 1·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에도 올 하반기 성장률 회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기업도 불확실성 속에서는 투자나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코스피지수 3000을 돌파하며 달아오른 주식시장도 다시 식을 우려가 있다.
정부는 중동발(發) 리스크(Risk)가 우리 경제와 안보에 미칠 파장이 최소화하도록 만반의 선제 대비에 나서야만 한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미국은 이란의 정권 교체를 경고하고, 이란은 철저한 보복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와 당국은 중동 전쟁 확대와 장기화라는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와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실행하기 바란다. 원유 비축량을 수시 최대한 늘리고, 수입선(輸入先)의 다변화 등으로 에너지 불안에 선제 대비하고, 중동 전면전 확산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가 장기전으로 이어진다면 세계 경제는 예측 불허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당장 유가 상승과 운송비 증가로 국내 물가 상승과 수출·내수 동반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중동 정세의 판도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정부 대응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