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신고에도 살해된 납치·살인 피해자…"현행범 체포 요건 완화해야"
입법조사처, '가정·교제폭력 대응체계 개선방안' 보고서 발간 경찰, 한 달 넘게 고소인 조사도 안 해…총체적 부실수사 사과 가정폭력처벌법에 교제폭력은 포함 안돼…접근금지 신청 불가 미국·영국은 교제관계 포함…가해자 의무체포·접근금지 가능 "현행범 체포요건 완화하고 실질적인 감시 수단 도입해야"
지난달 12일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30대 여성 A씨가 살해되기 전 9번의 경찰신고를 했음에도 전 남자친구로부터 납치·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과 별도로 교제폭력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입법조사처는 '동탄 납치·살인 사건으로 본 가정·교제폭력 대응체계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지난 19일 발간했다.
앞서 A씨는 전 남자친구인 B씨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겪다 지난달 12일 살해됐다. 그런데 A씨가 생전 9번의 경찰 신고, 고소장 제출, 변호사의 고소이유보충서 제출 등에도 관할서인 화성동탄경찰서는 한 달이 넘도록 고소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에게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고,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는 A씨에게 '안전조치가 곧 종료된다'고 통보했다. A씨는 지인이 마련해준 임시 주거지에서 숨어지냈으나, B씨가 이를 알아내 결국 납치·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법조사처는 ▲가·피해자 분리 실패: 의무체포 제도 부재 ▲반의사 불벌 적용과 경찰의 위험감지 능력 미흡 ▲교제관계 규율 법률 미비 ▲접근금지 감시제도 부재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우선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은 현행범 체포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가정폭력 사건에서 체포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이 요구하는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 범인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형사처벌보다는 보호처분이 우선되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미 폭력이 종료되거나 쌍방폭력으로 판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히 가정폭력 범죄에 교제관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가정폭력 관련 법률에는 혈연, 법률혼, 사실혼 관계로 규율 대상이 한정돼 있어, 교제폭력에는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 폭행·협박 범죄에 대해서는 반의사불벌이 적용되고 접근금지를 신청할 수 없다.
반면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가정폭력 범죄에 교제관계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가해자를 반드시 체포하는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영국과 호주도 각각 '체포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피해자 신청이나 법원 판단에 따라 영구적인 접근금지가 가능하며, 가해자가 피해자와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할 경우 경찰에 경보가 울리는 GPS 위치추적 전자감시도 도입돼 있다. 영국 역시 최근 법률 개정으로 법원이 가정폭력 보호명령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간을 정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발령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입법조사처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가정폭력범죄 특수성을 감안해 '폭력 발생 시점부터 24시간 이내'를 현행범으로 간주하고 현행범 체포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가정폭력 전력, 행위의 목적과 의도, 정당방위 여부 등 쌍방폭행 판단 기준을 마련해 경찰의 현장 판단 일관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해자와 마주친 상황에서 스마트워치를 눌러도 사건 발생 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가정폭력처벌법상 임시조치에 'GPS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포함해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할 경우 즉시 위치를 확인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감시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교제관계도 가정폭력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은 "우리나라는 해외와 달리 현재 교제 중인 자, 이전에 교제했던 자가 가정폭력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은 친밀성,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유사성이 있으므로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을 교제관계까지 확대해 신속하고 실효적인 피해자 보호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