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 붕괴’ 닮아가는 한국 민간부채, 허리띠 졸라매고 줄여야

2025-06-09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 붕괴 전후 일본 경제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과 함께 구조개혁 없이 이대로 간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고도 구조개혁을 통한 ‘부채 다이어트’ 없이 부동산으로 자금 쏠림이 지속한 탓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지난 6월 5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제하의 보고서에서 “한국은 과거 일본 ‘버블경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정밀한 거시건전성 관리와 신속한 구조개혁이 없다면 장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와 기업의 민간부채(가계+기업) 비율은 버블 시기의 일본을 놀랍도록 빼닮았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 시기에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자산 거품이 터졌고 이후 은행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며 장기불황으로 진입했다. 당시 일본은 자산시장 발(發) 부채 급증, 인구 고령화, 생산구조의 글로벌 분업화라는 삼각 파고가 중첩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도 지금 과도한 부동산 발(發) 가계부채, 인구 고령화, 글로벌 통상질서 급변이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테면 일본의‘버블경제’ 붕괴 직전인 1990년 208%, 1994년 214%로 최고치를 찍었는데, 우리나라도 이 비율이 2023년 207%로 치솟았다. 제조업보다는 비생산적인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린 것도 비슷하다.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한국의 민간부채 중 가계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로, 일본의‘버블경제’ 붕괴 직전인 1994년 일본의 32%보다 더 높다. 한국 민간부채가 일본과 비교해 부동산에 너무 쏠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부동산 업종에 대한 대출집중도 역시 한국이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의 3배에 달했다. 부동산 대출잔액을 부동산 분야 GDP로 나눈 대출집중도 역시 2023년 3.65로 1992년 일본의 1.23을 크게 웃돌았다. 민간부채 절반 정도를 가계가 짊어진 데다, 생산성이 낮은 건설·부동산 업종으로 쏠림이 심해 부채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민간대출의 부동산 쏠림은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이 충격을 받으면 과거 일본처럼 금융 전반의 위기를 부르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일본이 먼저 겪은 빠른 고령화 추세와 산업 경쟁력 약화 등도 데자뷔처럼 따라가고 있다. 인구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오히려 더 빠르다. 노동 투입 감소는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된 요인이다. 일본에선 15~64세 생산연령인구가 1995년, 총인구는 2009년을 정점으로 각각 감소했고 한국은 생산연령인구가 2017년, 총인구가 2020년 각각 정점을 찍었다. 한국은행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다가 산업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도 닮았다고 꼬집었다. 과거 전자 등 일본 제조업이 한국의 추격에 고전한 것처럼, 지금 한국 주력 산업의 시장점유율은 중국 공세에 밀려 낮아지는 추세다. 인공지능(AI)이나 휴머노이드 등 신산업 육성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경제주체 모두가 부채 의존도를 낮추면서 과감한 구조개혁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가계, 기업 모두가 힘들더라도 부채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한 고품질 제품을 수출해 급성장했으나, 1990년대 들어 한국 등 신흥국에 제조업을 조금씩 내주던 일본은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대표되는 버블 붕괴와 이에 따른 소비 침체, 초고령화 등이 한꺼번에 덮치며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한국은 글로벌 분업체계에 기민하게 대응을 해 고성장을 했으나, 이제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산업 고도화 및 자급률 제고에 따라 기존의 성공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다. 일본에서도 당시 위기를 감지하고 구조개혁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성공 경험과 이해당사자의 강한 정치적 반대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결국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일본의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1985년까지만 해도 162%였다. 그러나 ‘부동산 불패’처럼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리라는 기대와 일본은행의 금리 인하가 겹쳐 민간 부문이 급격히 빚을 늘리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구조와 급증하는 가계 빚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는 국내외 기관의 경고가 쏟아진 지 벌써 오래지만 달라진 게 없다. 부동산 관련 민간부채는 2014년 이후 최근 10년간 해마다 100조 원 이상 늘어 지난해 말 1932조원을 넘어서 전체 민간부채의 절반가량에 이른다. 금융회사의 대출이 생산성 낮은 부동산 부문에 집중될 경우 경제의 중장기 성장 동력은 떨어진다. 만약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 담보 가치가 하락하고 연체율은 오르며,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망가진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버틸 체력이라도 있었다지만,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 여력이 소진된 한국은 ‘빚의 덫’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에 봉착했다.

저성장에서 탈출하고 혁신 기업과 신산업으로 돈이 돌게 하려면 부동산발 ‘가계 빚 폭탄’에 정면 대응해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과거 일본이 앞선 경제 호황기 때 ‘부동산 불패 신화’가 확산하며 제조업이 아닌 부동산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됐고, 이로 인해 쌓인 부채가 버블 붕괴 후 한꺼번에 부실화하면서 은행과 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졌음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만 한다. 1970년대까지 연평균 7%를 넘나들던 일본 경제성장률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해 30년간 0%대 ‘제로 성장’에 갇힌 배경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사람들이 생계형 빚을 내고, 부동산 가격이 자꾸 오르니 ‘더 늦으면 못 산다’라는 조급한 생각에 빚으로 집을 사게 된다. 따라서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성장을 촉진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90.7%로 조사 대상 44국 중 다섯째로 높았다. 미국(70.5%), 일본(65%) 등 G20이라는 주요 20국 평균(61.2%)을 웃돌았다. 한국의 민간부채는 일본보다 악성일 수 있다. 우선 민간부채 중 가계 부채 비율이 절반에 육박고 있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 전 일본의 가계부채는 전체 민간부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었다. 기업의 빚은 투자 자금 성격도 있는 반면에, 가계의 빚은 소비 여력을 줄여 경기 침체를 부르기 쉽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임금과 소득이 낮아지고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도 명심해야만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90.7%로 조사 대상 44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미국(70.5%), 일본(65%) 등 G20이라는 주요 20국 평균인 61.2%를 웃돌았다. 한국은행은 “한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64%에 이를 정도로 높아 부동산 가격 급락은 가계 경제에 매우 큰 충격을 미칠 수 있고, 바로 부채의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지난 6월 6일 임명된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라인은 성장과 재정 역할 확대, 안정적 국정 운영에 방점을 둔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수석을 ‘경제성장수석’으로 명칭을 바꾸고 재정기획관리관을 신설한 것도 주목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경제라인은 통상·부동산·가계부채 등 잠재적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과 새로운 성장모델 구축에 주력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고용·소득·자산 등의 격차 확대는 경제 불평등과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경제체제의 기반을 만들어내길 기대하고 바란다. 가계와 정부 부채는 절대 규모와 증가 속도에서 빨간불이 켜진 지 이미 오래다. 올해 성장 쇼크를 이겨내기 위한 2차 추경을 하더라도 빚내서 지출을 늘리는 것이 습관화되어서는 결단코 아니 된다. 무엇보다 일본의 ‘버블 붕괴’ 닮아 가는 한국의 민간부채, 최우선해 허리띠 졸라매고 줄여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