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성장률 하향·금리 인하, 재정 확장 정책으로 경기 살리기 나서야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9일 ‘5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5%에서 0.8%로 0.7%포인트나 대폭 하향 조정한 것으로 잠재성장률(2.0%)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끝 모를 내수 부진에다 통상 환경 악화까지 겹치면서 3개월 새 전망치가 거의 반 토막이나 줄었다. 내년 성장률도 1.8%에서 1.6%로 0.2%포인트나 낮췄다. 석 달 전인 2월 전망치 1.5%에서 0.8%로 0.7%포인트나 낮춘 것은 코로나 19가 대유행한 2020년 8월 그해 성장률을 -0.2%에서 -1.3%로 1.1%포인트 낮춘 이후 처음이다.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성장 절벽’에 맞닥뜨리면서 한국은행으로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머뭇거릴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발(發) ‘관세 충격’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내수 부진도 빠르게 회복될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으면서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올해 ‘0%대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기준금리도 2.75%에서 2.50%로 ‘스몰컷(Small-cut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을 전격 단행하며 경기 떠받치기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3년 2개월 만에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에 나선 뒤, 지난해 11월, 올해 2월에 이어 네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달 환율 상승 등의 여파로 금리 동결했지만, 1분기(1~3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재차 금리 인하에 나섰다. 올해 1분기에 1분기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46%로 역(逆)성장한 데다 수출마저 불안하다고 보고, 가계 빚·환율·물가 부담에도 경기 침체를 막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탈진 상태에 빠진 경기를 되살리는 데는 통화정책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음 달 출범하는 새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전혀 새로운 건만은 아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14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0.8%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전망치를 지난 2023년 11월(2.3%) 이후 지난해 5월(2.1%), 11월(1.9%), 올해 2월(1.5%) 등으로 지속해서 낮춰왔다. 석 달 전 1.6%에서 반 토막이 된 이번 한국은행 전망치 0.8%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1.5%), 아시아개발은행(ADB │ 1.5%), 국제통화기금(IMF │ 1.0%) 등보다 낮은 수치다. 한국은행이 전망치를 대폭 낮춘 이유는 건설경기 침체 영향이 컸다. ‘건설투자’는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끌어내렸다. 민간소비 회복도 예상보다 더뎌 성장률을 0.15%포인트 낮췄다. 수출의 경우 지난 2월 전망 때보다 미국 관세율이 높아지면서 성장률을 추가로 0.2%포인트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다.
외국 투자은행(IB)들도 그 이전부터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지난 5월 11일 국제금융센터 집계를 보면, 주요 외국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 값은 4월 말 기준 평균 0.8%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말 평균 1.4%에서 한달 사이에 0.6%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전체 8곳 중 6곳이 1% 미만 성장을, 2곳은 1.0% 턱걸이 성장을 예상했다. 골드만삭스(1.5→0.7%)는 기존 전망 값의 절반 이하로 낮췄고 씨티(1.2→0.6%)와 홍콩상하이은행(HSBC·1.4→0.7%)은 반 토막을 냈다. 지난 2월 외국 투자은행 중 처음으로 0%대 성장률을 제시한 제이피(JP) 모건은 가장 낮은 0.5%를 예상했다. 내수 부진 장기화와 미국발 관세전쟁에 따른 수출 악화 때문이라는 진단도 대동소이하다. 현재 불확실성이 매우 큰 미국의 관세가 예상보다 낮아지더라도 한은은 올해 상반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만큼 성장률 상승효과는 0.1%포인트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목할 부분은 통화 당국이 이런 암울한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면서도 통화정책은 ‘빅컷((Big cut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이 아닌 ‘스몰컷(Small-cut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주택가격이 오르는 등 코로나 19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 19 때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사상 최저치인 0.5%로까지 낮춰 주택가격 폭등을 초래한 점을 고려하면 이 총재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유동성이 소비 진작이나 기업 투자 확대보다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 급등과 가계부채 급증을 야기(惹起)할 수 있는 탓이다. 그런 만큼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이어가되 통상 환경과 부동산 시장 등 추이를 봐가며 인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한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가 모두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가계의 소비 부진도 심화하고 있다. 우리 가계의 올해 1분기(1∼3월) 월평균 소비지출 증가율이 4년 만에 1%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내수 부진에 ‘12·3 내란사태’까지 겹치며 소비 위축이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9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5만 원으로 집계됐다. 소비지출 증가율은 1년 전과 비교해 1.4% 증가했으나,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소비지출은 0.7% 감소했다.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4.6%부터 둔화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는 3.5%, 4분기에는 2.5%로 낮아졌고, 올해 1분기에는 2021년 1분기 1.6% 이후 처음으로 1%대를 기록했다. 실질 소비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은 고금리·고물가가 가계를 짓누르던 2023년 2분기(-0.5%) 이후 처음이다. 소비지출은 가계 운영을 위해 소비한 상품·서비스 구입비를 뜻한다. 세금·연금·보험·이자·이전 지출(비소비지출)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소득만 유일하게 줄고, 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고물가가 몰아친 세상에서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마저 심해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도 기존 1.8%에서 1.6%로 0.2%포인트 낮췄다.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1% 안팎에 머무는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3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한국은행이 연내 1~3차례가량의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통화정책만으로 당장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새 정부 들어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나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재정이 나서야 한다. 현재 집행을 앞둔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은 성장률 제고 효과가 0.1%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 다음 달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곧바로 2차 추경을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금리 인하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지만, 그 여파로 가계 빚과 집값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강남 3구와 양천구가 오름세를 주도한 가운데 전 주 대비 0.16% 오르며 17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는 등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 오름세가 커지고 있고, 이런 오름세는 과천시 등 수도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도 늘면서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세를 보이며 국내 가계부채는 올해 3월 말 기준 1928조7000억원에 달했다. 무려 2%포인트까지 벌어진 미국(4.25~4.50%)과 한국(2.50%)의 기준금리 격차도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를 낳고 있음을 인식·통찰해야만 한다.
금리 인하가 가져올 부담과 부작용에 제 때에 제대로 선제적·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 전반의 취약성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음도 직시해야만 한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부자 감세 등으로 무너진 세수 기반을 조속히 복원해 재정 여력을 강화하고 부동산으로 쏠리는 유동성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경제를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일으킬 수는 없다. 경제를 회복시키고 취약계층을 보듬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나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서둘러 나서야 함은 물론 정부의 경기 부양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각별 유념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에 국가역량을 총력 집주(集注)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