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없는 고용’시대, 민간 중심 ‘양질의 새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우리 경제의 내수 회복 지연과 수출 둔화 여파로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데도 고용률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2025년 4월 우리나라 15세 이상 고용률은 전년 동월보다 0.2%포인트 오른 63.2%로, 같은 달 기준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실업률도 2.9%로 낮다. 숫자만 보면 고용 상황이 개선된 듯 보이지만, 정작 1분기 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은 전기 대비 0.246% 줄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경기가 침체하는데도 고용률은 높은 이른바 ‘성장 없는 고용’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는 일자리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다. 과거 경제 위기 회복기엔 국내총생산(GDP) 증가에도 고용이 개선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문제가 됐는데, 최근엔 반대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14일 발표한 ‘2025년 4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888만7000명으로 1년 전 2869만3000명보다 19만4000명이나 늘어 최근 1년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하지만 증가분 대부분이 고령층에서 나왔다.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2024년 4월 656만6000명에서 2025년 4월 690만6000명으로 34만명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9.4%로, 10년 전보다 7.6%포인트 뛰었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성 노인 일자리가 고용률을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제조업 분야의 취업자 수는 439만7000명으로 1년 전 452만1000명보다 되레 12만4000명 감소하면서 2019년 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이자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 연속 줄고 있다. 이렇듯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고용이 줄어들면서 20대(20~29세) 취업자 수는 347만5000명으로 1년 전 365만4000명보다 17만9000명이나 감소했고,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3%에 머물러 1년 전 46.2%보다 0.9%포인트 줄어들었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2021년 4월 43.5% 이후 동월 기준으로 가장 낮다.
무엇보다도 지난달 15세 이상 전체고용률이 63.2%로 전년 4월 63.0% 대비 0.2%포인트 늘면서 같은 달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1%포인트 하락한 2.9%였다.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9만4000명 늘며 최근 12개월 중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용지표와 달리 올 1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0.246%나 감소하며 역(逆)성장을 했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감소하며 경제성장 동력 자체가 약해질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성장 없는 고용’은 일자리가 저임금·저숙련 위주로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표면적인 고용지표만 선방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주력 산업인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정부 재정에 기댄 일자리만 늘어난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의 안정적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서비스업 위주의 정부 일자리 등만 늘어나는 고용형태는 지속성이 가능하지 못하다. 정책형 노인 일자리는 경제 활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 일자리도 저임금·저숙련 단기 일자리만 늘다 보니 일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라고 응답하는 청년(15~29세)도 지난달 41만5000명으로 전년도 40만명보다 1만5000명(3.7%↑) 늘면서 12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청년이 선호하는 신산업의 질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야 하는데,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거꾸로 ‘성장 없는 고용’이 문제다. 고용은 늘었으나 성장은 멈췄고, 고용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산업·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그나마 지금은 정부가 고용을 떠받치고 있지만, 수출·내수가 부진한 상황이 계속되면 고용마저 흔들릴 수 있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발(發) ‘관세 충격’으로 성장률을 0.5%포인트 깎았고, 내수 부진도 0.3%포인트 끌어내렸다. 수출은 연간 기준 0.4% 감소, 건설투자는 -4.2%로 2년 연속 역(逆)성장, 민간소비 증가율은 1.1%로 전망했다. 사실상 내수, 수출, 투자가 모두 얼어붙었다는 말이다. 관세 영향이 더 커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총체적 위기상황에서도 고용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산업구조 변화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근인(根因)이란 게 중론이다.
악화일로(惡化一路)의 청년, 제조업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혁, 고용시장의 유연성 확대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고용시장 악화는 성장률 하락과 직결돼 있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14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0.8%로 전망했다. 올 2월 1.6% 전망에서 대폭 하향 조정된 것으로 석 달 전 1.6%에서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고용마저 무너지며 ‘성장도 없고, 고용도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고용지표는 경기 흐름에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경기 후행지표라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은 ‘일자리의 질’이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청년과 여성이 진입할 수 있는 신산업 분야의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 첨단산업 육성과 산업구조 전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완화, 세제 인센티브 등으로 민간이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인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지만, 고령층 3명 중 1명은 단순 노무직이고, 절반이 비정규적이다. 생애 주된 일자리와 무관한 단기·저숙련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생계를 위해 다시 일터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산성과 노후 안정성을 위해 직무 전환, 임금체계 조정을 통한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초고령사회를 맞은 우리에게 양질의 고령 일자리 창출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지난 5월 27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인구·고용 동향 &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은 3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높은 고용률과는 달리, 재취업한 고령자 다수가 영세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저숙련·육체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렇듯 절반 이상이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장기간 쌓은 경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死藏)시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노인들이 열악한 상황을 감수하고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드는 건 느슨한 사회안전망을 비롯해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3년 기준 38.2%로 OECD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연금 소득자의 월평균 연금 소득은 80만원가량으로 2024년 1인 가구 월 최저 생계비 134만원에도 못 미쳤다. 고령층 삶의 질은 그 사회의 품격과 복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제도 보완과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령층과 청년층의 일자리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사회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의 근원적 뿌리인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사상 최악 수준의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2024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2만7703원이고 비정규직은 1만8404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11.7%, 4.7% 증가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6.43%에 그쳤다. 전년 70.9% 대비 4.5%포인트 하락했는데 2008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낙폭이다. 이는 정규직이 100만원을 벌 때 비정규직이 받는 돈은 66만4300원 정도로 무려 33만5700원이나 덜 받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추세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청년 실업도, 저출산도 정규직 기득권과 과보호의 틀을 깨트리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정규직을 과잉보호하는 구조를 서둘러 타파해야만 한다. 연차만 쌓이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부터 깨고, 성과와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청년 실업 문제의 근본 해법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鼓吹)시키고 경제 활력을 높여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急先務)다. 특히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획일적, 경직적 노동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은 물론‘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 해소와 함께 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 개혁’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규제 개혁을 서두르고 인공지능(AI), 로봇,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이 번성하는 나라로 탈바꿈해야만 한다. 특히 기업이 다시 역동적으로 뛸 수 있도록 규제 족쇄를 제거하고 세제·예산·금융 전방위적으로 지원에 나서는 한편 건설경기 부양 등 정책적 지원에 박차를 가하는 특단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피크 코리아(Peak Korea)’ 위기를 서둘러 극복해 나가야만 한다.
이렇듯 ‘성장 없는 고용’이 지속 이어지면 그 끝은 ‘고용 없는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산업 고도화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한편, 신성장 동력을 발굴·육성함으로써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이 마음껏 뛰도록 규제를 풀고 지원하는 게 고용과 성장을 살리고 양립과 병존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첩경임을 각별 유념하고 명심해야만 한다. 관제 일자리를 넘어 민간 중심의 ‘양질의 새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