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교사 ‘교권 보호’는 요원한 숙제일 뿐인가

2025-05-29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지고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이 산다. 교육은 교사로부터 시작되고 교권 없는 교육은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부장교사가 학생 가족으로부터 반복된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2023년 7월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2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서이초 사건’과 닮은 꼴이다. 당시 교육부는 보호자가 교사 개인 연락처로 민원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대책’을 내놓고 적극 행정 우수 사례라며 자화자찬했지만, 실제 교육 현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들은 그가 학생 지도에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발견된 그의 유서에는 ‘학생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다’며 그간의 정신적 고통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번의 비보에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유족들에 따르면 숨진 교사는 지난 3월부터 민원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 학생이 잦은 결석을 하며 학교에 나오지 않자 교사는 여러 차례 설득하고 병가 처리를 위해 진단서를 요청했다. 유족이 공개한 교사 카카오톡에는 평소 결석과 흡연 등 교칙을 어기던 학생을 교사가 타이르는 대화가 남아 있다. 교사는 운동하다 다쳐 학교를 쉬겠다는 학생에게 “병원 갔다가 학교에 오라”며 “담임의 입장에서 학교 열심히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답이 없자 며칠 뒤 “아프면 병원 들러서 학교 오세요”라고 적었다. 학생의 흡연과 관련해서도 “담배 못 끊겠으면 줄였으면 좋겠다”라며 “항상 네 편에 가족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말씀 잘 들어라. (가족) 말만 잘 들으면 잘 될 거라 생각한다. 잘 자고 내일 보자”라고 보냈다고 한다. 이렇듯 교사는 숨진 날까지도 학생에게 출결을 독려하는 등 생활지도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은 문서 제출을 미루다가 끝내 내지 않았고, 무단결석과 흡연까지 했다. 학생의 가족은 교사가 학생 지도 과정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으며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하루에 10번 넘게 민원 전화를 했다고 한다. 통화 기록에는 학생 가족의 항의성 민원 전화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오전 6시, 자정을 가리지 않고 많게는 하루 12차례나 민원 전화에 응대해야만 했다. 학생 지도 과정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 가족은 최근 학교장과 제주교육청에 “교사가 무서워서 학생이 결석하고 있다. 교사가 언어폭력을 저질렀다”라고 민원도 넣었다. 교사는 이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부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순직 사건 이후 ‘교권 보호 종합대책’으로 학부모 민원은 교사가 아닌 학교가 대응하는 체계로 개선했다. 학교마다 교장·교감 등 5명 내외로 구성된 ‘학교 민원대응팀’을 만들어 모든 일차적으로 민원을 개별 교사가 아닌 학교가 대응하도록 했고, 해결이 어려우면 ‘교육지원청 통합민원팀’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민원 제기도 학교 대표 전화나 온라인 시스템을 통하도록 하는 이른바 ‘교원안심번호서비스’를 도입해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했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런 대책은 숨진 교사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내기 교사도 아니고 숨진 교사와 같은 부장급 교사가 학교에 민원 대응을 요청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성이 없다. 학교의 일률적 대응이 비교육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사명감이 강한 교사일수록 학생 지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일선 학교의 중론이다. 중·고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고학년만 해도 교사가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서울 양천구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 휴대전화를 쥔 손으로 여교사 얼굴을 가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것을 교사가 지적하자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28일에도 부산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친구와 다투던 고학년 남학생이 싸움을 말리던 여자 교사를 폭행했고, 지난 5월 9일 경기도 군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담임교사의 무릎과 손, 발목 등을 주먹과 발로 때리고, 이를 제지하던 교사의 손을 꼬집고 할퀴는 일이 벌어진 데 이어 제주서부경찰서는 지난 5월 27일 오전 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 교사를 주먹으로 폭행하는 일이 발생해 수사하고 있다고 5월 28일 밝혔다. 이러다 보니 교권이란 단어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교권 보호’ 는 요원한 숙제일 뿐인가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교육부가 지난 5월 13일 발표한 ‘2024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를 다루는 교권보호위원회가 4234건 열렸는데 2020년 이후 4년 만에 전체 건수는 줄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유치원이 5건에서 23건, 초등학교는 583건에서 704건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어린 유치원과 초등학교까지 교권 침해가 확산하여 가는 추세이다. 지난 5월 14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제44회 스승의 날( 5월 15일)을 맞아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8,25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직 생활에 대한‘만족(32.7%)’과 ‘불만족(32.3%)’ 응답률이 엇비슷하게 나왔지만, 교직 만족도에 대한 점수는 5점 만점에 2.9점에 불과했다. 교사 절반 이상인 58.0%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교단을 떠나는 교사도 해마다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교육부의 2020~2024년 초·중·고등학교 중도 퇴직 교원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 정년을 채우지 않고 중도 퇴직한 초·중·고 교사는 무려 3만6748명에 달했다. 2020년 6512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 7626명, 지난해엔 9194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교권 보호 대책에 관한 주의 깊은 관심과 철저한 점검이 필요한 현실이다. 교사들이 교육 활동 보호 대책을 호소하는 목소리와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보호장치가 미흡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 이후나 밤중이나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악성 민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악성 민원을 반복 제기하는 보호자에 대한 강제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지적된 지 오래다. 더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사의 심리적 안정과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재정비가 시급하다. 매일 민원이 반복되면 고통과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지만, 치료를 위해 상담을 받고 싶어도 직업의 특성상 이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 교원의 정신건강이나 심리상담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아무리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의 울타리만은 반드시 세울 필요가 절실하다. 특히 일부 학부모의 무분별한 민원과 고소 남발은 위기의 교권을 더욱 심각하게 멍들이고 있다.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며 고소되는 사례가 늘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일선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가중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을 하고 폭행하는 패악(悖惡)은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할 뿐만 아니라 사명감마저 떨어뜨린다. 학생들을 안심하고 가르칠 수 없는 교육환경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어 갈 뿐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건전하게 양립하고 건강하게 병존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