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트럼프 ‘상호 관세’에 첫 제동…백악관 “사법 쿠데타”
“IEEPA, 대통령 권한에 제한…무역 적자는 비상사태 아냐” 캐·멕·中 ‘펜타닐 관세’도 적용…‘안보 명분’ 품목 관세는 제외 “관세 정책에 극적 영향 미칠 것”…백악관, 즉각 항소 시사
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부여한 권한을 넘어섰다며, 이 법을 근거로 내린 관세를 무효화 하도록 했다.
2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재판부 3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부과한 상호 관세 조치를 무효로 했다.
재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이 사건 관세 부과 권한은 기간이나 범위 측면에서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다”며 “IEEPA에 따라 대통령에게 위임된 관세 권한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세계적 보복 관세는 법에 위반되고 초법적이다”라며 “이 관세 명령은 취소되며, 그 효력은 영구히 금지된다”고 판시했다. 지금까지 징수한 관세도 취소하도록 했다.
법원은 관세 부과 권한이 대부분의 경우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세 권한을 무제한 위임하면 입법 권한을 다른 정부 부처에 부적절하게 위임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경우는 ‘이례적이고 보기 드문 위협’이라는 제한적 상황에 한정되는데, 무역 적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관세 권한을 명시적으로 의회에 부여한 만큼 IEEPA가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관세 권한을 위임했다고 해석하지 않는다”며 “IEEPA 규정은 그 권한에 유의미한 제한을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정부에 최대 10일 내 관세 징수 중단을 위한 행정 절차를 완료하라고 명령했다.
상호 관세 외에도 IEEPA를 근거로 부과한 다른 관세도 무효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 유입을 문제 삼으며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할 때 이 법을 동원했었다.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 국가 안보 명분으로 부과한 품목 관세는 판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국제무역법원은 무역 분쟁에서 발생한 민사 사건을 담당한다. 이번 사건 재판부는 로널드 레이건, 버락 오바마,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로 구성됐다.
소규모 기업 단체와 오리건, 뉴욕 등 민주당 소속 주 검찰총장 12명은 각 상호 관세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명령이 헌법이 부여한 관세 부과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 측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비상사태는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허구”라며 “무역 적자는 수십 년간 지속돼 왔지만 경제에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명령이 합법적인지 여부에 대해 연방법원이 판결한 첫 사례다.
당장 어떤 조치가 유효하고 수입품에 어떤 관세가 부과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까지 체결됐거나 협상을 진행 중인 무역 협정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에는 상당한 제약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로 알려진 불공정 무역 보복 조항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는데, 이를 적극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조항을 동원한 관세 조치도 소송이 제기돼 향후 법원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국가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에버렛 아이젠스탯은 뉴욕타임스에 “관세 및 무역 의제를 둘러싼 단기 역학 관계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판결이 ‘사법 쿠데타’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부비서실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통제 불능 사법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다른 국가와 무역 협상을 위한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항소심은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맡는다. 이후 불복 시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원고 측은 환영했다.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성명을 내 “노동자 가정, 기업, 법치주의의 중대한 승리”라며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에게 막대한 세금 인상을 부과할 순 없다”고 반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50개국에 대한 상호 관세 및 광범위한 기본 관세를 발표한 이후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를 놓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ABC에 따르면 현재 6개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