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브’ 약진하는 대만, ‘변방 미아’ 전락 한국···글로벌 AI 생태계
국가 대항전으로 번지는 인공지능(AI)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변방의 미아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했다.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Jensen Huang │ 黃仁勳)’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19일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에서 “대만 정부와 TSMC, 폭스콘 등과 손잡고 대만 최초의 대형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연구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라고 밝히고 “대만을 ‘AI 허브’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대만에 엔비디아의 제2의 본사를 짓겠다는 계획과 함께 AI 칩 설계와 양자컴퓨팅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을 AI 생태계 허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은 가히 위협적이다. 거대한 AI 생태계 조성과 인프라 확충을 통해 AI 주도권을 더 확고히 해나가겠다는 ‘대만 연합’의 야심 찬 선언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미래 AI 중심지로 대만을 낙점한 건 그가 이곳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AI 산업 생태계와 아시아 및 중동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실제로 대만은 촘촘한 AI 공급망을 자랑하고 있다. 수퍼컴퓨터 구축에는 엔비디아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 아이폰 등을 만드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기업 폭스콘,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참여한다. ‘인공지능(AI)의 심장'으로 약진하는 범국가 차원의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반도체 제작부터 AI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센터 등도 모두 현지화해 대만을 자생적인 AI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런 계획이 그저 장밋빛 포부만은 아니다. 대만은 최첨단 부품 설계와 생산까지 독자적인 AI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AI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세계 1위인 미디어텍과 AI 서버 시장을 장악한 콴타·위스트론 등도 모두 대만 기업이다. ‘젠슨 황’조차 “150여 개 대만 AI 기업이 없다면 엔비디아의 설계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다. 엔비디아가 오랫동안 공들여온 그래픽처리장치 구동 소프트웨어인 쿠다(CUDA)도 대만의 AI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풍부한 AI 인재 또한 대만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인재 육성 정책에 따라 국립대학들은 매년 500명 이상의 석·박사급 AI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향후 4년간 10만명의 대만인 포함한 해외 유학생을 영입해 총 20만명의 AI 인재를 양성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의 강력한 출사표에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사실 대만이 이러한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단초(緞綃)는 1973년 ‘공업기술연구원(ITRI)’ 설립으로 마련됐다. 이는 2년 앞선 1971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연구중심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참조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우리가 대만을 배워야 할 옹색한 처지다. 엔비디아와 대만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만 납품하는 하청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까지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메모리 반도체는 점점 범용 상품이 되고 있어서다. 반면 AI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최첨단 칩을 설계하는 능력은 엔비디아를 필두로 하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압도적이다. 대만은 첨단 칩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그 제조 공정에 필수인 노광장비를 독점하고 있으며, 일본은 소재·부품 분야의 강자다.
한국이 낄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위기상황이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이 AI 시대의 낙오자가 되면 국가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은 HBM 같은 일부 메모리반도체 기술력만 앞설 뿐, 설계나 소프트웨어·패키징 등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과 데이터센터 및 전력공급 등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AI 경쟁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납품 하청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결코 기우가 아니다. AI는 미래 패권이 달린 핵심인프라가 아닐 수 없다. 과학은 국적이 없지만 과학자는 국적이 있다. 글로벌 경영인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공계 인재 공급난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서둘러 인재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AI·반도체 길목을 장악한 대만 인프라는 이미 막강하다. 미국·대만은 AI·반도체 산업을 고리로 긴밀해지고 있다. 일본 또한 막대한 국고지원을 통해 TSMC 공장을 유치하는 등 필사적으로 ‘AI 3각 동맹’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형 AI 동맹 전략’을 정비하고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네트워크 편입 전략이 필요하다. AI 패권에서 소외되면, 한국 경제는 구조적 쇠퇴의 길로 밀려날 것은 자명(自明)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글로벌 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략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선주자들의 AI 관련 공약은 구호만 난무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그림은 없어만 보인다.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막대한 재원 투입만 언급할 뿐, 산업 전략 및 에너지 정책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제대로 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장기 계획과 로드맵을 추진해야만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예우로 AI 인재를 모으고 길러내는 게 급선무다. AI 시대의 치열한 생태계 주도권 각축에서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는 한국 경제에 AI 산업과 같은 신성장 동력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국가 진운(進運)의 명운(命運)이 걸린 숙명(宿命)이다. 국가 경쟁력과 안보 강화 등을 위해서도 결단코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지다. 경쟁국들이 잰걸음을 질주하는 만큼 주저하거나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기업이 혁신 및 투자와 연구개발(R&D), 고급인재 양성과 전문 기술인력 확보에 나설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서둘러 과감히 풀고, 전력공급을 위한 송전망 구축 등 인프라 확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포함한 범국가 차원의 AI 생태계 구축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 적극적·공격적으로 강력히 추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