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나라 살림 61.3조 적자, 성장 엔진 가동하고 구조 개혁 나서야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막대한 부채 통장을 넘겨받아야 할 것 같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5월 15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5월호’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 잔액은 1,175조 9,000억 원으로 지난 연말 결산 시점 1,141조 2,000억 원보다 3개월 만에 무려 34조 7,000억 원(3.04%)이 늘었다. 재정적자가 쌓여 빚을 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1~4월 국고채 발행량은 81.2조 원(개인 투자용 국채 3,800억 원 포함 시 81조 6,000억 원)으로 연간 발행 총한도의 41.1%에 달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세·세외·기금 수입을 합친 1~3월 총수입은 159조 9,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2조 5,000억 원 늘었다. 하지만 재정 씀씀이가 커져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쓰는 나라 살림 지표인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 – 사회보장성기금수지)’ 적자 규모가 1~3월 61조 3,000억 원으로 역대 2번째로 집계됐다. 1~3월 통합재정수지는 -50조 원 적자, 사회보장성기금수지 11조 3,0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13조 8,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까지 반영하면 역대 최고였던 작년 1분기 적자 규모(-75조 3,000억 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은 앞으로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건지 묵묵부답이다.
나라 살림 적자가 예산 조기·신속 집행으로 통상 상반기 불어나고, 하반기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 규모는 위기감(危機感)을 느끼고 대처해야 마땅하다. 이미 재정 건전성엔 적색 위험신호가 켜졌다.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 이후 나라 살림 적자는 매년 100조 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고, 주먹구구식 예측으로 2023년 56조 4,000억 원에 이어 2024년에도 30조 8,000억 원이 예산보다 덜 걷히는 대규모 ‘세수 펑크’가 2년째 이어지며 지난 2년간 무려 87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이 발생한 가운데 올해도 내수 부진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세입 여건 악화로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렇듯 재정적자가 쌓이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5월 11일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 │ 2025년 4월)’를 통해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4.5%로 올라 비기축통화 선진국 평균(54.3%)을 처음으로 넘어설 것은 물론 5년 후에는 59.2%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증가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는 평가다. 성장이 잘 이뤄진다면 재정적자를 버틸 재간이라도 있다. 하지만 내수 침체와 미국발(發) 관세 전쟁 등의 여파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국가채무 중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증가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추경 편성으로 인해 올해는 더 큰 폭으로 늘 것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적자성 채무가 885조 원 이상이 돼 지난해 792조 3,000억 원과 비교하면 약 9조 2,700억 원(12%) 증가하게 된다. 전체 국가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내수 진작과 경기 부양 등의 필요성으로 차기 정부 출범 후 2차 추경까지 편성되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내외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때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긴축 운용 기조와 역대급 세수 결손, 감세 정책으로 인한 재원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나라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성장 엔진을 돌리고, 고비용·저효율 구조 개혁에 나서는 게 정상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감안하면, 경기 부양 정책과 미래 세대 부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정부가 지금 씀씀이를 유지해도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오는 2040년에 잠재성장률이 0%로 추락하고 2040년대 후반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망하고 있다. KDI는 지난 5월 8일 밝힌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성장률)이 올해 1%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2030년대 1% 초반, 2040년대 0% 내외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국은 대외 악재 못지않게 내수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대내 악재도 극복해야만 한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확실성마저 커지면서 기업 투자와 정부 지출도 위축되고 있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지 못하면 소비와 투자 위축은 물론이고 금융 시장에도 불안감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재정 건전성 제고는 어느 때보다 시급한 현안이다. 재정은 국가신인도 유지와 경제 위기 대응 등 국가 운영의 근간이자 방파제로써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방만한 나라 살림을 막을 수 있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새 정부는 서둘러 「재정준칙」 도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과잉 규제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구조는 개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빚내서 재정 퍼주기 정책으로만 내달리는 나라에는 어떤 미래도 없다.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 건전성이 국가 경제를 지키는 양대 보루임을 각별 유념하고 재정 긴축과 지출구조조정의 고삐를 확실히 죄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만 한다. 신시장 개척을 통한 수출 다변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서둘러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성장 엔진을 재가동하고 구조 개혁에 적극적·공격적으로 나서야만 할 때다.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과 규제 개혁이 회복의 열쇠”라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IMF 총재의 조언도 귀담아들어야만 할 것이다.